[할매 할배 이야기] “장에 나오면 돈도 벌고 사람도 만나고 재미진게…”

입력 : 2018-03-14 00:00 수정 : 2018-03-14 09:10

[할매 할배 이야기] 박옥순 할머니<광주 광산구>

냉이 캐다가 오일장에 내다 팔아

힘들지만 사람 사는 재미에 밤새 다듬은 나물 들고 장으로 향해
 


“이리 오씨요. 와서 냉이 잠 사가시요. 한바구니에 2000원이요.”

설 쇠고 ‘야든다삿’살이 된 박옥순 할머니는 어제 새벽밥을 해먹고 집을 나섰다. 겨우내 ‘손구락이 옹구라들게 춥더만’ 요 며칠 해가 반짝하더니 집 앞 배추밭이며 마늘밭에 냉이가 지천이었던 것이다. 마침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장날이 코앞이니 캐다가 팔아야겠다 싶었다.

굽은 허리를 더 깊숙이 굽히고 종일 캤더니 제법 많았다. 집에 돌아와 전깃불 켜놓고 밤이 깊도록 다듬었다. 흙도 털어내고 검불도 떼어내는데 눈은 왜 이리 침침한지, 자꾸 방바닥을 향해 굽는 허리 때문에 머리가 냉이에 닿을 판이다.

‘그래봤자 니눔들이 냉이제. 평생 농사일에 부엌일하고 산 난디, 눈 감고도 다 따듬을 수 있어야.’

손으로 눈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냉이와 싸움 아닌 싸움을 하는 동안 눈은 더 침침해졌고 밤은 더 깊어졌다. 그래도 이놈들을 가지고 내일 장에 갈 생각을 하니 없던 힘도 생겼다.

날이 밝자 장으로 향했다. 항상 그랬듯이 좋은 목은 이미 큰 장사꾼들 차지였다. 손님을 붙잡으려는 장사꾼들의 목청을 피해 장 한쪽 구석에 자리를 편 할머니는 밤새 다듬은 냉이를 알아봐줄 사람을 기다렸다.

“아이고 이걸 혼자 다 따듬었소? 돈이 더러버도 상전이시!”

“하믄, 그랑께 돈 벌라고 나가 이눔을 밤새 따듬었제. 한바구니 가져가시요. 된장 풀어서 국도 낄이(끓여) 묵고, 삶아서 무쳐도 맛있구만.”

오가는 사람들과 말을 섞어가며 틈틈이 냉이를 팔다보니 점심때가 훌쩍 지났다.

“할매, 밥은 묵었다요?” 냉이 한바구니 청하고 기다리던 손님이 물었다.

“인자 다 팔믄 집에 가서 묵어야제. 나는 늙어갖고 이가 안 좋아서 나물은 못 묵은게 된장 풀고 푹 낄이서(끓여서) 냉이가 흐물흐물해지믄 후루룩 마실라네.”

“할매, 담 장에도 나오요?”

“이, 나오제. 배추밭이랑 마늘밭에 뭐시든 올라온 놈들만 있으먼 다 캐갖고 나오제. 장에 나오믄 돈도 벌고 사람도 만내고 재미진게.”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할머니가 힘들다 주저앉지 않고 나물을 캐고 다듬는 이유는, 굽은 허리로 먼 길을 걸어서 기어이 장에 나오는 이유는 바로 이 ‘사람 사는 재미’ 때문이리라.

광주=이상희 기자 montes@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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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 할배 이야기] 박옥순 할머니<광주 광산구>

냉이 캐다가 오일장에 내다 팔아

힘들지만 사람 사는 재미에 밤새 다듬은 나물 들고 장으로 향해
 


“이리 오씨요. 와서 냉이 잠 사가시요. 한바구니에 2000원이요.”

설 쇠고 ‘야든다삿’살이 된 박옥순 할머니는 어제 새벽밥을 해먹고 집을 나섰다. 겨우내 ‘손구락이 옹구라들게 춥더만’ 요 ë©°ì¹  해가 반짝하더니 집 앞 배추밭이며 마늘밭에 냉이가 지천이었던 것이다. 마침 광주광역시 광산구 송정동 장날이 코앞이니 캐다가 팔아야겠다 싶었다.

굽은 허리를 더 깊숙이 굽히고 종일 캤더니 제법 많았다. 집에 돌아와 전깃불 켜놓고 밤이 깊도록 다듬었다. 흙도 털어내고 검불도 떼어내는데 눈은 왜 이리 침침한지, 자꾸 방바닥을 향해 굽는 허리 때문에 머리가 냉이에 닿을 판이다.

‘그래봤자 니눔들이 냉이제. 평생 농사일에 부엌일하고 산 난디, 눈 감고도 다 따듬을 수 있어야.’

손으로 눈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냉이와 싸움 아닌 싸움을 하는 동안 눈은 더 침침해졌고 밤은 더 깊어졌다. 그래도 이놈들을 가지고 내일 장에 갈 생각을 하니 없던 힘도 생겼다.

날이 밝자 장으로 향했다. 항상 그랬듯이 좋은 목은 이미 큰 장사꾼들 차지였다. 손님을 붙잡으려는 장사꾼들의 목청을 피해 장 한쪽 구석에 자리를 편 할머니는 밤새 다듬은 냉이를 알아봐줄 사람을 기다렸다.

“아이고 이걸 혼자 다 따듬었소? 돈이 더러버도 상전이시!”

“하믄, 그랑께 돈 벌라고 나가 이눔을 밤새 따듬었제. 한바구니 가져가시요. 된장 풀어서 국도 낄이(끓여) 묵고, 삶아서 무쳐도 맛있구만.”

오가는 사람들과 말을 섞어가며 틈틈이 냉이를 팔다보니 점심때가 훌쩍 지났다.

“할매, 밥은 묵었다요?” 냉이 한바구니 청하고 기다리던 손님이 물었다.

“인자 다 팔믄 집에 가서 묵어야제. 나는 늙어갖고 이가 안 좋아서 나물은 못 묵은게 된장 풀고 푹 낄이서(끓여서) 냉이가 흐물흐물해지믄 후루룩 마실라네.”

“할매, 담 장에도 나오요?”

“이, 나오제. 배추밭이랑 마늘밭에 뭐시든 올라온 놈들만 있으먼 다 캐갖고 나오제. 장에 나오믄 돈도 벌고 사람도 만내고 재미진게.”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할머니가 힘들다 주저앉지 않고 나물을 캐고 다듬는 이유는, 굽은 허리로 먼 길을 걸어서 기어이 장에 나오는 이유는 바로 이 ‘사람 사는 재미’ 때문이리라.

광주=이상희 기자 montes@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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