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작] 닭집 여자

입력 : 2018-01-01 00:00 수정 : 2018-03-02 15:12

부용닭집 닭들이 울지 않는다는 푸념은 뻥튀기되는 부동산 개발 소문을 비집지 못했다

경자씨 허기가 머뭇거리는 것도, 유진이 글을 못 쓰는 것도 다 신축공사 탓인 듯했다

일러스트=이철원

닭장은 여전히 고요했다. 경자 씨는 기울였던 허리를 펴고 평상에 걸터앉았다. 사흘 내내 팔린 닭 한 마리가 없었다. 가을이 어느덧 깊어졌는데 파리들은 여전히 닭집 안에서 우글거렸다. 파리채를 들었을 때, 상자 안에서 보리가 몸을 세우고 컹컹 짖다가 경자 씨와 눈을 마주치자 그대로 빤히 바라보았다. 이것도 결국 힘들구나, 경자 씨는 보리의 누런 머리에 손을 얹었다. 보리는 몸을 낮추고 박스 아래 앉아 낑낑대었다.

파리채 휘두르는 소리가 멈췄을 때 쇠가 쇠를 때리는 소리가 부용닭집 앞을 다시 휘저었다. 경자 씨는 길 건너 크레인이 기다란 그림자를 만들 때 또 소름이 목부터 피어나는 것을 느꼈다. 새로운 부용, 새로운 도약이라는 슬로건이 붙은 철책이 언젠가 쓰러져 닭집을 덮칠 것 같았다. 한번은 옆집 미용실에서 영양펌을 받을 때 입을 열었다. 저기 건너편의 신축상가요, 소음이 어찌나 센지. 난 저거만 보면 언제 확 무너질 것 같기도 해요. 자네도 참, 별 것도 아닌 거에 신경쓰는 거 여전하네. 미용실 원장은 껌을 씹은 채 주말 드라마 재방송에 눈을 떼지 않았다. 경자 씨는 그때 여성지 안쪽의 부동산 광고를 읽고는 그대로 덮어버리고 거울 속의 자신을 보고 있었다. 자신의 눈도 벌게져 있는 것 같아 주름이 박힌 눈가를 훑었다. 2년 전부터 부용시장의 땅을 가진 사람들과 살고 있는 사람들은 없는 동네에 건물이라도 들어와야 부동산이 오른다는 말에 모두 눈이 벌게져 있었다. 번호판에 서울과 경기권 도시가 적혀 있는 차가 시장 주차장에 멈출 때 소문은 사람들 사이를 힐끔거리고 소곤거렸다. 경자 씨네 닭이 제대로 울지 않는 다는 푸념은 뻥튀기 되는 소문들 사이를 비집지 못했다. 홀로 양계장 안의 병 걸린 닭이 된 것 같았다. 결국 경자 씨는 영양펌을 마치고 원장이 내준 생강차에 손을 대지 못했다. 그날 장사를 마치고 셔터를 내리는 내내 오래 묵은 감기처럼 붙은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가 끊임없이 붙었다.

칠이 벗겨진 ‘부용닭집’ 입간판이 분홍색 네온 빛으로 ‘부용닭’을 어둑한 바닥에 쓰다가 사라지며 흔들렸다. 시월의 바람이 시장골목을 시어머니의 손매처럼 우악스럽게 할퀴다가 잦아들었다. 잦아든 바람 사이로 닭장 안의 닭털 몇 개가 아스팔트 위로 흩어졌다. 닭장 아래는 닭똥과 깃과 깨진 알과 쌀겨들이 섞여, 흡사 닭과 땅을 한꺼번에 실은 것 같았다. 주방 안쪽 빈 닭장들이 가게 안에서 먼지만 품었고 주방 안엔 닭털 뽑는 드럼통과 솥단지가 눌어붙어 있었다. 맞은편 부용약재상 미닫이 문 쪽에 놓인 빈 닭장 위에 고양이 몇 놈이 식빵처럼 앉아 닭장을 향해 눈을 깜빡였다. 고양이들은 언제나 맞은편으로 슬그머니 녹아들어 서로끼리 몸을 붙여 앉거나 핥아주었다. 경자 씨는 보리를 흘겨보았다. 5년 전에 들인 보리는 남편처럼 순해서 외상 잘 안 갚는 여편네들이 찾아와도 꼬리를 살랑거렸다. 분명 고양이가 코끝까지 와도 짖기는커녕 늘어져 하품이나 할 녀석이었다. 경자 씨는 보리를 향해 야, 야 라고 소리쳤지만 보리는 꼬리 끝도 움직이지 않았다. 경자 씨는 고양이들의 눈을 보며 이것들이 낡은 집이라고 무시하는 건가, 라고 입술을 달싹였다.

시장 북쪽 외곽에 있는 부용닭집은 부용시장의 북문 끝에 있는 닭집이었다. 30년 전만 해도 매일 해질 때면 애어른 할 것 없이 손가락으로 닭장을 향해 손을 뻗었고 금성세탁기를 분해해서 만든 닭털 뽑는 드럼통에선 닭털들이 정신없이 쏟아졌다. 복날이 다가오면 닭털들이 배출구를 막아 부지깽이로 긁어내도 깃들은 돈뭉치처럼 굴러 나왔다. 경자 씨는 고양이들이 앉은 자리에 놓인 부지깽이가 크레인 그림자에 삼켜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앞집에 햇살이 조그맣게 눌러앉아 그림자만 뒤틀며 뭉그적댔다. 그 안에서 고양이들 중 어린 두 놈이 닭집 앞으로 슬금거렸다. 오늘도 닭장 안의 어느 놈도 고양이를 향해 울지 않았다. 경자 씨는 찐득거리는 평상에 핸드폰을 두고 파리채를 집었다. 공중으로 휘두르는 파리채 소리에도 고양이들도 공사장 소음도 우두커니였다.

갑자기 깔깔거리는 소리에 고양이들이 부리나케 골목 안으로 사라졌다. 사진기 셔터 소리가 경자 씨 귀에 박혔다. 나 저렇게 닭이 큰 줄 몰랐어, 하고 누군가 호들갑을 떨었다. 오래 끓은 보리차색 코트를 입은 젊은 여자애 둘이 쪼그려 앉아 닭장 앞으로 핸드폰을 겨누고 있었다. 2년 전에 서울에서 힐링캠프인가 한다며 트레일러를 이끈 방송사 팀이 온 이후로 주말마다 젊은이들이 쏟아졌다. 대부분 시장 안쪽에서 여배우 셋이 살던 안채를 구경하며 깔깔대었는데, 시간이 남으면 시장을 돌며 금속 작대기에 핸드폰을 붙이고 셔터소리를 내었다. 셀카봉이라는 그 작대기는 전등 빛을 받으면 번쩍거렸고 그 위에서 간혹 플래시가 터져 나오면 경자 씨는 견딜 수 없었다. 계모임 사람들에게 불평을 해봐도 해결책은 뚜렷하지 않았다. 결국 작년에 플래시로 계속 닭장을 찍어대다가 닭장을 툭툭 치던 계집애에게 한소리 던져보기도 했다. 시장상인연합회장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요새것들이 다 그렇잖은가, 사장님이 좀 참으소. 어쨌건 시장에 사람이 많아야 이문이 붙고, 그래야 닭집도 잘 되지 않겄소. 그때 경자 씨는 말대꾸 하고 싶은 마음을 솔에 뿌리며 주문한 닭을 조용히 문질렀었다. 작년 이후로 젊은 축이 닭을 주문한 일도 전혀 없었다.

계집애들의 조잘거림이 멀어진 뒤에 앞집 자물쇠가 덜컹였다. 성기고 긴 파마머리를 한 여자가 넝마 같은 치마를 걸친 채 열쇠를 잡고 있었다. 경자 씨가 평상에서 일어나 맞은편을 보자, 여자가 황급히 몸을 돌려 고개를 숙였다. 눈매가 거무스름하고 얼굴 표면이 잔뜩 일어나 있었다. 자네 요새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같네, 경자 씨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여자의 귀에 꽂혔다. 여자의 주근깨 많은 뺨이 살짝 붉어졌다.

반년 전에 김유진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이 여자는 언제나 느지막이 부용약재상 간판이 달린 문을 서투르게 열었다. 유진이 온 후 감초와 황기 냄새를 풍기던 빈 약재상에서 향초 타는 냄새가 가끔 닭집으로 은은히 스몄다. 작년에 부용시장상인연합회장은 전체회의에서 타 지역시장의 청년활동 연계를 슬라이드로 보여주며 앞으로 인근 도시의 예술하는 청년들을 들여 시장 활성화로 수익을 올리자고 마른 목소리를 높였다. 읍장이 앞자리에서 박수를 치자 뒷줄까지 박수가 이어졌다. 점심으로 나오는 국수와 편육을 젓가락으로 집으며 미용실 원장은 꿈도 크다고 대놓고 깔깔댔다. 웃음 끝에서 경자 씨는 그래도 5년 동안 묵어왔던 먼지와 감초 냄새 사이로 사람 냄새가 섞이겠구나, 라는 생각에 궁금증과 함께 살이 잘 오른 닭을 눈여겨보았다. 페인트질로 약재 냄새를 지우던 건장한 도예공은 이웃에 인사드린다며 컵 두 개를 내밀었는데 막상 들어온 사람은 닭 한 마리 못 잡아봤을 비쩍 마른 아가씨였다. 그녀가 김유진이었다. 그녀는 재킷 어깨 앉은 파리를 황급히 털어내곤 창백한 얼굴로 랩이 덮여 있는 시루떡을 건넸다. 다음 날 튀긴 닭을 들고 문을 두드렸을 때 김유진이 비척이며 나왔다. 빈 바닥에 소주 한 병이 구르고 있었다.

얼마 못 버티고 나가겠구나, 하던 생각은 사흘 만에 사라졌다. 유진은 파리에 질색하면서도 어린 보리처럼 조심스럽고 가깝게 다가왔다. 다음 날엔 해장 잘 되는 국밥집을 묻더니 사흘 지나서는 믹스커피와 머그컵을 챙겨왔다. 닭집 문턱에서 보리가 신발께에 붙으면 대뜸 껴안고 머리와 등을 쓰다듬었다. 무엇보다 경자 씨의 느린 말씨 속에서 유진의 말은 통통 튀었다. 있죠, 경자 이모, 저는 사실 시인이에요. 재잘대던 유진의 말 중에 가장 먼저 또렷하게 들린 단어였다. 시인, 이라는 단어에 경자 씨는 중학교 시절이 뒤통수부터 번져왔다. 문예부 교실 바닥에 깔린 구겨지고 찢어진 원고지 사이에서 펜촉에 펜을 담가 필사(筆寫)를 하던 시간들이 어느새 깔렸다. 선생님이 목소리를 낮추며 ‘백석’이라 적힌 노트를 살그머니 열 때, ‘흰 바람벽이 있어’를 옮겨적는 펜이 사각거리는 가운데서 어린 마음이 조용히 밝아졌다.

그러나 밝은 소개와는 무색하게 닭집에서건 시장 골목에서건 유진이 받는 전화는 교열 교정의 독촉이었다. 작가님, 일단 글을 보내줘야 교열을 보죠! 도자기만 급한 줄 아세요? 그냥 멋대로 하나 써 놓으라고요? 아니 그렇게 저 계속 시킬 거면 돈을 더 주던가요! 닭집 문을 닫을 때 들려오는 유진의 짜증섞인 목소리는 벽을 타고 흘렀다. 봄날 밤에 유난히도 잠이 안와 문을 열었는데 정문 앞에서 쭈그린 그림자가 있었다. 유진의 목소리가 담배 연기 사이서 훌쩍였다. 나 이제 집에 갈래, 집에 가면 안돼? 경자 씨는 앞집 미닫이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다시 누웠다가 밖으로 나왔다. 미닫이문 앞에서 필터까지 타오른 담배꽁초 네 개에 운동화 자국이 짙었다.

경자 씨는 평상에 놓인 ‘사슴’을 조심스럽게 쓸었다 전부 유진이 빌려준 것이었다. 이전에 읽은 시인들을 띄엄띄엄 말했을 때, 핸드폰 화면에 부지런히 손가락을 놀리더니 사흘 후 책들을 챙겨왔었다. 전부 자기 꺼니 편하게 보라며 싱긋 웃는 유진의 얼굴이, 그때만큼은 어엿한 시인으로 보였다. 백석과 윤동주와 김종삼이 나란히 벽에 기대있었다. 하긴 숨어서 시 읽는 세상은 멀리 갔지, 경자 씨가 홀로 중얼거리는 도중에 기침소리가 들렸다. 백숙용 닭이 얼마냐고 묻던 할머니는 가격을 듣더니 얼굴을 찡그리고는 켜켜이 쌓여 있는 계란판으로 눈을 돌렸다. 특란 두 판을 집고 꼬깃꼬깃한 1만 8천원이 몸빼바지서 나왔다. 경자 씨는 주방 찬장을 열고 지폐를 손으로 펴서 티비 옆 종이상자에 담았다.

하품을 길게 한다 해도 시간이 짧아지지는 않았지만 빳빳한 입간판 그림자가 조금 더 동쪽으로 몸을 틀었다. 바람에 다시 입간판이 몸을 비틀다 멈췄다. 경자 씨는 황급히 닭장 앞의 벽돌 네 개를 들어 입간판 다리에 힘을 보냈다. 가게 앞에 놓인 선반에 계란판을 보았을 때, 플라스틱 덮개 위에 파리 두 마리가 누워 있어 휴지로 훔쳐내었다. 구월만 해도 파리가 5월의 꽃들처럼 우글거리며 사람과 닭을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는데, 바람이 불 때면 순식간에 널브러졌다. 평상 위에 '시간은 사랑하는 사람마저 빼앗아' 라며 장필순의 목소리가 흘렀다. 평상을 더듬어 전화를 받았다. 미용실 원장의 목소리가 저녁에 아들과 외식하기로 했다며 다음에 들러 닭을 보겠다고 요란하게 사과했다. 전화를 끊었을 때 보리가 몇 번 짖다 몸을 뉘였다. 닭장의 사료는 여전히 가득했다. 더깨 묻은 사료통을 보며 경자 씨는 헛헛함이 명치 아래서 고개를 세우는 것을 느꼈다. 자리를 비우고 시장 안에서 국수라도 빨리 해치울까 했지만 닭장 안에서 모이 쪼는 움직임도 보이지 않아 그만두었다. 건너편에서 둔탁한 소리가 다시 들렸다. 공사현장 쪽에서 누군가의 고함과 엔진소리가 섞이며 넘어왔다. 가게 안으로 파리 날개가 허공을 헤매는 소리가 멈췄다. 닭들은 두리번거리며 푸드덕댔고 보리가 다시 낑낑대었다. 그 때 넝마 같은 치마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저 공사 때문에 한 줄도 못쓰겠더라구요.”

쓰게 웃는 유진을 향해 경자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이 왼손에 든 믹스커피 두 개를 흔들었다. 안방서 컵을 챙기고 전기포트 전원을 꽂는 동안 유진은 평상에 엉덩이를 얹고 달려드는 보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그컵에 담긴 인스턴트 커피 분말 향기로 뜨거운 물이 담기고 나서 유진이 입을 열었다.

“뭐가 들어오기에 저렇게 크게 짓는대요? 병원?”

“병원이면 차라리 좋겠네. 종합상가라는데, 왜 시장 바로 앞에 상가를 지어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래도 정미미용실 원장님은 이제 땅값 더 오를 거라며 좋아하시던데.”

경자 씨는 윗입술과 아랫입술 사이로 머그컵과 커피를 물었다. 유진은 머그컵을 꼭 잡고 양 발을 천천히 들어올렸다.

“사실 전 싫어요. 저 소리 때문에 잠깐 눈 붙이던 낮잠도 못 자겠고. 좀 이상한 말인데, 담배도 못 우피겠어요. 제가 일이 막히면 부용닭집 닭 우는 소리에 맞춰서 담배 한 대만 딱 무는데, 그 땐 담배연기가 굉장히 맛있거든요. 그런데 공사 이후로는 줄담배를 피워도 맛있는 느낌이 살지 않아요. 맛있는 걸 입에 넣어야 글이 쑥 나올 텐데.”

“나도 지금 사흘 째 공쳤다니까. 닭들도 울지도 않고. 때 되면 우는 게 닭인데 도통 알 수가 없네.”

유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 공사장 소리에 망가지는 것이 부용닭집만이 아니라는 생각에 경자 씨는 유진이 갑자기 예뻐 보였다. 자신의 허기가 머뭇거리는 것도, 유진이 글을 쓰지 못하는 것도 다 저 신축공사 탓이라는 생각에 목소리가 높아졌다.

“저거 확 밀어야겠네, 우리 김 시인 글 쓰는 거 망치는 저 못된 크레인.”

유진이 깔깔거리는 소리가 오래 이어졌다. 이어 유진은 부용시장 가을 호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는지, 도예공과 네일샵의 새 상품 소개를 왜 자신이 전담하며 고통받는지 길게 늘어놓았다. 경자 씨의 커피가 완연히 싸늘해진 후에 유진이 붙인 엉덩이를 떼었다. 경자 씨는 시집들을 들어 유진에게 건넸다.

“그래도 담배 좀 줄이고, 술도 이제 줄여. 젊다고 막 들이키다 탈난다.”

“저 공사만 안하면 당장이라도 줄일게요. 정말 일할 맛이 안나요. 맛없이 죽어가는 기분이에요.”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라면서도 경자 씨의 턱끝은 위아래로 움직였다. 두 여자 다 땅으로 눈길을 내렸다. 들어갈게요, 라며 넝마같은 치마가 멀어졌다. 밥 꼭 챙겨먹고, 경자 씨의 말에 유진의 등이 잠깐 멈칫하다 미닫이문을 열었다.


“경자 이모, 닭 한 마리 얼마에요?”

삼십 분 뒤에 다시 들어선 유진의 말에 경자 씨의 눈이 커졌다. 유진의 양손이 입고 있는 치맛자락을 꼭 잡고 있었다.

“맛있는 닭 한 마리 먹으면 좋은 글 한편 딱 나올 것 같아서요.”

경자 씨는 유진의 얼굴 대신 유진의 손을 바라보았다. 이전에 유진의 손은 손톱마다 파란 나비가 붙어 있었다. 물집이라곤 오른손에 검지와 중지손가락에 혹처럼 박혀 있었다. 유진의 오른손이 치마를 더욱 꽉 쥐었다.

“사실 이때까지 닭을 요리해 본적이 없어요. 백숙은 얼마나 걸려요? 삼십 분이면 돼요?”

“정말 닭을 사겠다고?”

유진의 당황한 표정을 읽으며 경자 씨는 당황했다. 요즘 경자 씨의 닭을 사는 사람들은 옛 단골이 아니면 인근 공장에서 일하는 얼굴 검은 네팔 청년들뿐이었다. 그들은 모두 닭 한 마리는 야무지게 잡을 두 손을 가지고 있었다. 유진의 손은 그에 비해 칼이나 놓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었다. 나비 붙은 손톱에 칼이라도 박히면 어쩌려고, 경자 씨의 지레걱정에 답하듯 유진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경자 씨의 눈이 유진의 손에서 눈으로, 그리고 닭장으로 차례로 옮겨갔다. 몸을 일으켜 바짝 마른 고무장갑을 들었다.

“혼자 먹을 거면 백숙보단 닭도리탕이 낫지.”

닭장 위칸에는 오골계들이, 아래칸에는 장닭들이 담겨 있었다. 볏을 잘린 닭들은 경자 씨와 눈을 마주치자 싸늘해졌다. 개중에 몇 마리가 침묵을 못 참고 푸드덕거렸다. 유진이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며 얼마냐고 물었다.

“위칸이 만 이천원, 아래칸이 만 원. 어떤 걸로 할지 골라봐.”

유진의 눈길이 닭장 위칸과 아래칸을 오가며 아랫입술에 앞니를 살짝 박았다. 처음 닭을 고르던 소년 소녀들이 만들던 얼굴이었다. 경자 씨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얘는 집에 들어가 또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거나 노트에 뭔가를 적겠지, 닭이 고프면 배달을 부를 테고. 지난달에 경자 씨가 문을 두드렸을 때, 초에 비친 유진의 그림자가 허리를 낫처럼 구부리고 있었다. 유진아, 라는 말에 엄마, 왜 연락도 없이 와 라는 짜증이 새어나오더니, 안방 문이 확 열렸다. 유진이 당황해서 경자 씨를 맞이할 때, 의자 밑에서 치킨브랜드 포장지가 바스락거렸었다. 양념치킨처럼 붉어진 뺨으로 이모네 닭집이 닫혀 있어서, 라며 쩔쩔매던 유진 앞에서 경자 씨는 그저 희미하게 웃었다.

유진의 눈길은 여전히 닭에 꽂혀 있었다. 아랫입술에 박힌 앞니가 안으로 들어갔다. 경자 씨가 고무장갑 위쪽을 만지작거리는 동안 유진이 지갑에서 만원을 꺼냈다.

“만원인데 만 이천원 같은 걸로 한 마리요.”

경자 씨는 만 원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고 아래칸 닭장 문을 잡았다. 문을 열 때 닭들은 재빨리 바깥으로 붙었다. 문 앞에서 닭똥 부스러기와 깃이 퍼드덕거렸다. 유진의 동그란 눈이 짙은 닭 냄새에 감겼다. 경자 씨의 손에 걸린 암탉은 갈색이라기보다는 젖은 피가 햇볕에 오래 말라붙은 색 같았다. 닭을 집을 때 경자 씨는 닭의 다리 근육이 버둥거리는 것을 느꼈다. 바깥으로 뻗대는 닭털은 따뜻했다. 닭의 목이 허공에서 까닥거렸다. 목을 잡을 때 갑자기 경자 씨는 등 뒤에서 뭔가가 타고 올라오는 느낌에 살짝 떨었다. 국민학교 때 어머니의 목소리가 성기는 것 같았다. 난 닭 못 잡는다, 닭 좀 잡아 오너라. 경자 씨는 거꾸로 들린 닭의 목에서 어릴 적 자신의 손이 부들거리며 나타나는 것 같았다. 이것아, 빨리 잡으라니까, 니 오래비 굶는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닭의 신음소리처럼 부들거리고 간헐적이었다. 다시 목을 쥔 경자 씨는 살짝 눈썹사이를 구겼다. 항문에서 똥이 비실대며 쏟아지고 있었다. 경자 씨는 빈 닭장 위 선반에서 긴 식칼을 꺼내 닭의 가슴께를 찔렀다. 닭이 높은 비명을 낳는 동안 닭장 안은 푸드덕거림도 없었다. 널브러진 닭을 고무통에 던지자, 닭의 마지막 비명이 통 속에서 꺽꺽대며 새어 나왔다. 고무통 옆 솥단지에서 뜨거운 물을 바가지로 담고 드럼에 물을 붓는 동안 유진의 얼굴이 고무통으로 향해 있었다. 경자 씨는 고무통에서 닭을 꺼내 드럼통 안으로 던지고 손때로 검게 빛나는 스위치를 올렸다. 덜컹거리며 드럼통이 소음을 뿜었다. 유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양 손으로 깍지를 끼었다.

모터 소리 아래서 경자 씨는 수도꼭지를 열어 칼 위로 핏물이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날 저녁 닭다리를 먹은 것은 오라비와 어머니였고 경자 씨는 목을 꼭꼭 씹었다. 오도독 하는 소리가 밤새 목에 붙는 것 같아 경자 씨는 등 돌린 어머니의 등에 손을 뻗다가 주저했었다. 바람 소리도 없는 밤에 어머니의 등은 표정이 없어서 더 두려웠다. 오랜만에 닭 잡을 때 이 기억이 붙는가, 어째서 이렇게 끈질긴 것인가. 경자 씨의 입에서 한숨이 길게 새어나와 모터 소리 사이로 스며들었다. 고개를 돌리니 유진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드럼통에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순식간에 죽네요, 닭도…….”

유진이 엉거주춤 고개를 끄덕일 때 보리가 치마 위로 앞발을 올리며 낑낑대었다. 유진은 보리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렸지만 두 눈은 여전히 드럼통에 꽂혀있었다. 경자 씨는 스위치를 끄고 닭을 꺼냈다. 털이 반쯤 지워져 있는 닭은 먼지투성이 공 같았다. 대롱거리는 두 눈알을 떼어 싱크대 안에 던지곤 경자 씨는 솥을 열었다. 털 하나 없는 솥 안에서 수증기가 화투치는 사내들 방에 고여 있는 담배연기처럼 한꺼번에 쏟아졌다. 닭을 집어넣고 솥뚜껑을 닫자, 수증기는 가을 밤 도둑고양이처럼 재빠르게 사라졌다. 유진이 보리 머리에 손을 떼며 닭털이 묻은 신발을 보았다.

“이렇게 닭 잡는지 전혀 몰랐어요. 칼이 쑥 들어가는 것도, 기계에 들어가는 것도. 책에선 목 꺾는 것만 나왔는데.”

“책이나 방송하고는 완전 다르지. 그래도 옛날 보다는 나은거야. 목 꺾고 털 일일이 뽑는 거, 더 지독해.”

경자 씨의 가라앉은 대답이 천천히 유진의 턱을 붙들고 위아래로 움직였다. 치맛자락을 만지작거리는 유진은 발끝을 모았다. 경자 씨는 유진의 발끝에서 5년 전 읍사무소 문화교실에 앉아 치맛자락을 만지작거리던 때가 떠올랐다. 교탁 앞에 꽂힌 마이크에서 진 선생의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좋은 시 한 줄이 나를 바꾸고, 주변을 바꾸고, 세상을 바꿉니다. 우리 어머님들, 시 하면 어떤 거 생각나세요? 저기 뒷줄의 단발머리 어머님, 마지막으로 읽은 시가 언제였어요? 첫 번째로 쥔 마이크 앞에서 경자 씨는 솥 안의 닭처럼 땀을 많이 흘렸다. 진 선생의 마이크가 남편 가진 여자들에 차례로 멀어지고 나서도 경자 씨의 두 발은 수업이 끝날 때까지 곱게 모여있었다.

젖은 닭을 다시 드럼통에 넣었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에 오골계 몇 마리가 푸드덕댔다. 드럼통 위에서 떨어진 파리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경자 씨의 혀가 좁게 열린 입술 아래서 들썩였다. 사흘 공쳤다고 손이 벌써부터 헛헛하면 안되는데. 스위치를 내리고 나서 닭을 꺼내 놓으니 대가리부터 발까지 말갛게 분홍빛 살갗이 피어 있었다. 여전히 질린 얼굴로 앉은 유진이 경자 씨는 다시금 안쓰러웠다.

“막상 보려니까 힘들지? 집에 가 있어. 가져다 줄 테니.”

보리가 유진의 운동화에 발을 올렸다. 젖힌 유진의 고개가 기름때가 묻은 천장을 훑었다. 아니에요, 라는 말에 이어진 침묵이 닭집 안에서 눌어붙었다. 

경자 씨는 오른손으로 싱크대 오른편에 놓인 커다란 삼나무 도마를 싱크대로 가져와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남편이 들고 온 자신의 첫 도마였다. 고모가 양복집에서 사람 올 거라고 해 호리호리한 양복쟁이를 생각 생각했는데, 막상 러닝셔츠만 걸치고 닭집으로 찾아온 상고머리 사내의 팔근육은 불끈거렸다. 세비로 양복점에서 왔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사내는 도마와 땀 맺힌 이마를 끌고 왔다. 고모는 잠깐 나가셨어요, 라는 스무 살 경자 씨의 말에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싱크대에 도마를 올려놓았다. 사장님 심부름입니다, 라며 사내는 고개를 숙였다. 컵에 담긴 냉수와 안부를 묻는 대화가 오간 뒤 그는 텅 빈 컵을 내밀었다. 곧 계모임에서 돌아온 고모는 경자 씨와 사내를 번갈아 흘겨보았다. 저녁에 자전거를 끌고 가던 그가 닭집 앞에서 고모를 향해 다시 몸을 숙였고 앞으로 치마 태우지 말고 다림질 잘 하셔, 라는 퉁바리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녁을 비울 때 고모는 사내와 무슨 얘기를 했는지 요를 펼칠 때까지 꼬치꼬치 묻고 급기야 허리를 몇 번이고 찔렀다.

선반에서 꺼낸 중(重)식칼이 번뜩였다. 나무도마 위에 닭을 올려놓고 모가지를 치자 눈이 텅 빈 닭의 대가리가 싱크대 안으로 처박혔다. 닭 왼쪽 종아리에 칼집을 내자 피가 닭다리를 타고 흘렀다. 경자 씨는 닭 왼쪽 발을 잡고 돌아보았다. 닭발 잘 먹니, 유진의 눈이 경자 씨의 어깨에서 고무장화로 향했다. 그건 안 주셔도 괜찮아요, 라며 유진은 고개를 저었다.

경자 씨는 묵묵히 닭 오른쪽 종아리에 칼날을 넣었다. 세 갈래로 벌어진 발이 차례로 부딪쳤다. 물때가 낀 수도꼭지를 돌리자 물방울들이 앞치마에 튀었다. 경자 씨는 닭 머리와 닭발을 씻어 소쿠리에 나눠담고 칼을 들었다. 다시 닭의 앞가슴에 칼날이 스며들었다. 흠집이 확연히 피었을 때 식칼이 닭의 항문에서 아랫배로 쑥 들어갔다. 피가 닭가슴을 타고 잘린 목 사이로 흐르다 싱크대 아래서 가라앉았다. 번들거리는 껍질에 엄지를 넣고 칼을 들이밀 때 경자 씨는 남편과 처음으로 같이 보낸 밤을 떠올랐다. 시내 다방서 경리일 하는 여고 친구들과 맥주 한 병을 나눠 마시며 깔깔거렸는데 화장실 가는 길에 상고머리 사내가 담배를 물고 있었다. 어, 세비로 양복점. 부용닭집이시군요. 사내 옆에 있던 스포츠머리가 눈을 찡긋거렸다. 형규 아는 분이시구나. 우리도 세 명인데, 괜찮다면 저희랑 맥주 한 병씩 하시겠습니까. 여섯 명의 웃음소리와 함께 노오란 샹들리에 불빛이 번들거리며 흔들렸다.

맥주 반잔에 속이 울렁거려 다방에서 나와 달을 보는데 사내도 삶은 대추 같은 얼굴로 비틀거리며 나왔다. 빨개지셨네요. 네, 술 잘 못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에요. 달빛 아래 읍으로 걷는 내내 경자 씨는 사내가 강원도에서 홀로 내려왔다는 것과 양복을 입은 남자들을 동경했다는 것을 들었다. 양복 만들다 보면, 저도 언젠가 한 벌 지어 입을 것 같아서요. 전 닭 많이 잡아도 닭처럼 될 생각은 없는데요. 그날 처음으로 경자 씨는 자신의 고등학교 시절을 입에 담았다. 묵묵히 듣던 사내는 닭집 앞에서 환한 달빛 아래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제가 시는 잘 모릅니다만, 이건 외우고 있습니다. 며칠 뒤 경자 씨는 그 시가 모든 이발소에 밀레의 만종 모사품과 함께 붙은, 프랜차이즈 같은 시라는 것을 알았지만, 달빛 아래 상고머리 푸슈킨은 그날 밤부터 가슴이 헛헛할 때마다 들어왔다.

 

일러스트=이철원

 

남편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도중에 갑자기 트럭이 끼어들었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들 속에서 속이 손질한 닭처럼 텅 빈 것을 느꼈다

 

다시 칼을 들어 위를 건드릴 때 사료들이 쏟아졌다. 모래주머니를 왼손으로 집고 나머지 내장을 긁어내자 자궁만이 남았다. 자궁 안에서 반쯤 이지러진 노른자들이 번뜩였다. 5촉 알전구처럼 노른자들은 내장 아래서 고요했다. 싱크대에서 흐르는 물이 내장 안의 피를 좇아 함께 파고들었다. 노른자 같은 달빛 아래 서로 속삭이던 그 날로 2년이 지나서 알전구 아래 남편의 얼굴은 주름이 깊어져 있었다. 닭이 울고, 새벽하늘에 어둑한 푸른빛만 남을 때, 흐린 눈 사이에서 남편의 몸에 셔츠와 재킷이 차례로 덮였다. 눈을 비비는 경자 씨를 향해 남편의 작은 눈이 싱긋 휘어졌다. 소두방만한 손이 자신의 어깨를 두드릴 때 경자 씨는 포근함을 느꼈다. 왜 깼어, 좀 더 자. 이따 시다애 올 때 도시락만 챙겨줘. 재단사가 된 이후로 남편은 시다 시절보다 일찍 일어나 정신없이 일했다. 부용읍을 떠나자는 꿈은 남편과 경자 씨 품에서 토실토실 자라났다. 그날 아침에 지갑을 만지작거리다 큰 맘 먹고 쇠고기를 사러 가는 길에 미용실 원장이 여우에 쫓기는 닭처럼 급하게 달려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대학병원 응급실 앞이었다. 시다가 울먹이며 사모님, 이라고 손을 잡고 이끌었다. 자전거를 타고 원단을 살피러 가는 도중에 갑자기 트럭이 끼어들었다고 했다. 의사가 고개를 저을 때 경자 씨는 무릎 아래로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 어깨를 잡는 손과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들 사이 속에서 경자 씨는 자신의 속이 손질한 닭처럼 텅 빈 것을 느꼈다.


경자 씨는 내가 오늘 왜 이럴까, 되뇌며 작은 칼로 닭 안의 기름기를 겨눴다. 갈비뼈 쪽은 엄나무 가시처럼 날카로웠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번잡한 잡내와 똥내가 풍기는 창자가 삐죽거렸다. 칼질을 멈추고 솔을 들었다. 기름기는 인연보다는 쉽게 떨어질 것이었다. 결혼 할 때 시가 측 사람들은 한 명도 없었다. 오라비의 손을 잡고 온 어머니는 육개장 한 그릇을 비우고 재수 없는 년은 넘어져도 가시밭에 구른다며 이죽거렸다. 고모가 어머니를 이끌고 사라졌고 오라비는 담배 한 대 태우고는 화투를 든 패거리에 붙었다. 탈상을 끝내고 얇실한 통장잔고와 남편의 빚을 받고 나서 경자 씨는 젖은 자국이 남은 필사 노트를 꽉 쥔 채 골방에 잠겨 있었다. 고모의 독촉에 겨우 닭집으로 돌아 왔을 때 손님들 사이로 섞인 소문은 조류인플루엔자보다 빨랐다. 남편 잡아먹을 상이라는 말이 어디서 퍼졌는지 근원은 희미했다. 경자 씨는 늙은 고모가 평상에서 화투를 만지작거리는 동안 묵묵히 닭 목을 치고 배를 갈랐다. 눈알 빠진 닭대가리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깃털들이 드럼통 배출구에서 쌓일 때마다 경자 씨는 담담히 양 팔에 힘을 주었다. 힘을 쏟고 난 뒤 닭집 안은 어둑한 빈 방처럼 한갓졌다. 소주 반병이 비워지면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가 흐르다 흐느낌에 밟혔다.

경자 씨는 벗겨낸 닭 속을 손가락으로 닦았다. 기름기가 벗겨진 닭 안에 수돗물이 파고들어 형광등 아래 맑아 보였다. 물기를 털어내고 닭을 다시 도마 위로 올렸다. 날갯죽지와 가슴 사이에 칼날이 스칠 때마다 흰 속살이 촉촉하게 피어났다. 유진이 천장에서 부엌께로 눈을 돌렸다.

“제가 시를 쓰는 것보다 이모 일하시는 모습이 왠지 시 쓰는 것 같네요.”

“시인이라서 그런지 말이 듣기 참 좋네.”

“학교에서 배웠는데 노동의 과정에서 문학의 영감이 확 피어오르는 거래요. 그래서 시는 일상에서 일하며 쓰여야 마음으로 스민대요.”

“그럼 김 시인도 닭 좀 몇 번 잡으면 시 금방 쓰겠네. 오늘부터 배워볼래?”

경자 씨의 흐흐, 하는 웃음에 유진의 목소리가 허둥대며 높아졌다.

“물론 많은 작가들이 자연이나 일상 노동에 대해서 소재를 얻죠. 근데 이모, 저는 더 다른 걸로 쓸 거예요. 진짜 특별한 거죠, 딱 한줄이라도 충만한 거니까.”

유진의 긴 쌍꺼풀이 길게 깜빡였다.

“저는 적막에 대해서 쓸 거예요.”

경자 씨는 급하게 침을 삼켰다. 적막, 이 들릴 때 코끝에서 비린내가 소나기구름처럼 몰려오는 것 같았다. 구역질이 몸 깊은 곳에서 피어났다. 고모네 닭집에 온 날부터 피어나는 구역질 앞에서 파리하게 질린 날이면 고모는 주전자에 황기를 넣고 불을 올렸다. 황기 우린 물은 알싸하고 역했지만 일단 넘기면 구역질이 몸 깊은 곳에서 희미해지곤 했다. 마지막으로 마신 황기물이 알싸하게 떠올랐다. 어머니의 첫 기일에, 술에 취해 오래비의 얼굴을 한 사내가 닭집 앞에서 비틀거렸다. 어미 잡아먹은 잡년이라고 소리를 지르던 그 사내는 시장통에서 쫓겨났다. 그날 밤 부용닭집 정문엔 망치 자국이, 돈통엔 떼어낸 자국이, 바닥엔 술냄새가 배인 가래자국만이 남았다. 그 자국들 사이에서 마신 황기 우린 물도 언제나 영특했다. 적막, 이라는 단어에 당장 황기 우린 물을 들이켜고 싶었지만 그저 침을 한 번 더 삼켰다.

“어떻게 적막에 대해 쓰려고?”

 

요강을 안은 어머니를 보고 목 뒤로 만개하는 닭살을 느꼈다

상복을 다시 꺼내입을 때 그 속은 닭뼈보다 고요했다

 

네가 어떻게, 그 시간을 견딘다고, 라는 말을 삼키고 경자 씨는 닭을 든 채 유진의 눈을 바라보았다. 다시금 닭살이 목에서 피어났다. 남편의 탈상을 마치고 2년 후에 경자 씨는 요강을 안은 어머니를 보고 목 뒤로 닭살이 만개하는 것을 느꼈다. 오라비의 직장에 전화를 걸었을 때, 퇴직 한지 한 달 됐다며 무역회사 경리가 딱딱하게 뱉었다. 고모가 씁쓸한 눈길로 전화기를 부여잡은 조카와 요강을 붙든 올케를 번갈아 보았다. 어머니는 경자 씨가 안방으로 들어올 때마다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다. 어머니의 눈에 경자 씨는 맏언니였고 종년이었으며 어머니였다. 매일 욕을 들어가며 똥 묻은 벽을 닦은 걸레를 빠는 날이 이어졌고, 밤마다 마시는 소주는 어느새 한 병이 되었다. 두 늙은이의 코 고는 소리 사이를 피해 경자 씨는 겨울에도 평상 위에 요를 깔았다. 적막이 치밀하게 차오를 때 부용역에서 상행선을 타는 모습이 그려졌다. 기차 안에서 남편이 손짓을 했다. 요 위에서 뒤척일 때 품이 그리워 악문 윗니와 아랫니사이로 울음만 닭똥처럼 흘렀다. 다음 해 상복을 다시 꺼내 입을 때, 경자 씨의 안은 살 깨끗하게 바른 닭뼈보다 고요했다.

다시금 침묵이 닭집에 가득 찼다. 유진은 찐득한 평상에 손을 비볐다. 혼자서 이불을 덮고 있을 때 가볍게 사라지던 질문이 경자 씨의 입을 거쳐 나올 때 끈끈하게 붙었다. 경자 씨의 눈을 향해 유진은 눈을 들지 못했다.

“저 학교에서 여기로 올 때, 되게 막막했어요. 부모님도 교수님도 기회라고 하는데, 확신이 안 섰어요. 선배들 모두가 다시 생각해보라고 했거든요. 오고 나서도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요. 여기 처음 왔을 때, 남은 시루떡 먹고는 할 게 없어서 방 안에서 담배를 피웠어요. 흰 연기가 불이 꺼진 형광등 아래를 스치다가 쓱 사라지는데, 담배를 다 피니까 그 연기마저도 사라지더라고요. 그때 이모네 닭장 안의 닭이 길게 울었어요, 딱 한 줄로. 그 소리가, 세상을 향해 외치는 것 같았어요. 여기로 온 지 어느새 반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 순간하면 생각하면 그 첫날처럼 담배가 땡기고, 한 대 딱 피면 연필이 검지와 중지손가락에 딱 붙는 거예요. 그렇게 막막한 순간들이 맛있게 다가오는 것을 잊지 않으려면, 적막에 관한 시 한 줄이 있어야 해요.”

그런거니, 라며 경자 씨는 고개를 주억거리다 도마로 눈을 돌렸다. 우리 삶엔 시 한 줄이 있어야 해요, 라고 진 선생의 작은 입이 열렸었다. 5년 전 읍사무소에서 개설된 문화강좌에서 창작아카데미 소개문을 소리내어 읽을 때, ‘시(詩)’는 입 안에서 뾰족하고 높게 솟았다. 가장 먼저 서류를 접수하고 오랜만에 필사 노트를 펼쳤다. 진 선생은 파마를 먹인 긴 머리에 양장을 입고 들어왔는데, 고등학교 때 진로용지에 서툴게 적었던 ‘나의 장래희망’와 흡사해 경자 씨는 흠칫했다. 진 선생은 매번 마이크를 경자 씨를 향해 들이밀었고, 발끝과 말문은 언제나 더듬거렸다. 그러나 거창하게 시작한 창작아카데미는 말이 창작이지 무료 한글교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소학교도 못 다녔다는 노인들에게 가갸거겨를 쓰고, 받침을 잃어버린 문장들에 빨간 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진 선생은 교탁에서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 당황한 표정을 머금은 진 선생을 도우며 둘은 4월 말까지 바빴다.

직유와 은유에 간신히 이른 5월께에, 경자 씨는 진 선생의 뾰족구두가 읍사무소 주차장으로 향할 때 불쑥 나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어머, 경자 씨, 아직 안 들어가셨어요? 시장하시죠, 오늘 저녁이라도 대접해드릴까 하고. 닭 내장처럼 삐져나온 시장 골목을 지나 부용닭집 앞에서 들어섰을 때 경자 씨는 아차, 싶었다. 먼지 묻은 아크릴 간판과 닭똥내 나는 바닥에 진 선생이 눈썹을 찌푸렸다. 빈 닭장마저 조심하며 진 선생은 겨우 평상으로 올라왔다. 진 선생을 안방 아랫목에 앉히고 경자 씨는 닭도리탕을 슴슴하게 끓여 상을 차렸다. 닭고기 맛이 깊다며 술이 당긴다고 진 선생이 농담을 던졌는데 경자 씨는 슬리퍼를 걸치고 부리나케 점빵으로 향했다. 식사로 시작한 읍사무소 불평은 소주 반병이 사라지자 산불처럼 일었다. 가벼운 반주만 걸치기로 했는데 평상에 소주병이 차례로 늘어났다. 짙은 소주 냄새 속에서 진 선생이 심야라디오방송처럼 속삭였다. 경자언니 봤을 때 느꼈어요. 뭔가 딱 느껴지는 게 있어요. 역시 고등학교 때 백일장을 그렇게 많이 휩쓸어서 그랬구나. 정말 아까워, 이런 인재가 여기 있는데. 서울로 왔으면 대박일텐데. 지방이라도 늦깎이라도 기회는 열려있대요. 그날 밤 경자 씨는 진 선생이 그대로 쓰러져 코를 골 때까지 홀로 술잔을 들이키며 엷은 미소를 멈추지 못했다.

유진은 닭을 바르는 경자 씨의 얼굴을 읽었다. 그 고요함이 언뜻 평상 위에서 '사슴'을 천천히 넘기는 모습과 흡사했다. 유진은 경자 씨의 허리께에 묶인 앞치마끈을 향해 소리 없이 달싹였다. 일할 때 이모의 칼질은 단정하네요. 벗겨내고 드러내는 살갗과 근육 앞에서 저는 분명 주저했을텐데, 청년예술인 회의장에서 서 있듯이. 저는 담배와 술로 제 주저함을 한번에 토막 내고 싶었는데, 언제나 손에 상처만 입히면서 썩어있는 것 같아요. 홀로 있는 시간마다 단숨에 쓰러져 썩어가는 느낌, 이모도 알고 있나요? 전 그때마다 고무통에 담긴 닭처럼 꺽꺽댔어요. 그 시간을 펜으로 잡아 가르면, 시 한 줄이 가지런히 드러날까요?

도마 위에서 방금 무슨말 했니, 라는 말이 들렸다. 유진은 경자 씨의 칼이 가볍게 닭을 절반 가르는 것을 보았다.

“별 거 아니에요. 닭도리탕 할 때 어떻게 하면 맛있어요?”

닭을 토막 내던 손이 멈췄다. 잘라낸 타원형의 닭가슴살에서 진 선생의 큰 두 눈이 떠올랐다. 유진이 방금 꺼낸 말을 똑같이 읊으며 진 선생이 닭집으로 들어왔었다. 닭을 잡는 내내 진 선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덤덤히 경자 씨의 손놀림을 보았다. 보리는 진 선생 발치로 붙으려다 반짝거리는 에나멜 구두의 헛발질에 박스로 몸을 말았다. 발라낸 닭을 봉지에 싸서 건네줬을 때, 진 선생은 들어올 때 말한 질문을 반복하며 한 마디 더 붙였다. 기왕이면 우리 집에 와서 닭도리탕 만드는 법 좀 알려주면 좋겠어요. 진 선생의 아반떼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흘렀고 낡은 빌라 아파트 안은 꼼꼼하게 손질한 닭처럼 단출했다.

경자 씨는 닭다리에 간신히 손을 대었다. 부드럽게 미끈거리는 이 감촉이 처음으로 진 선생의 머리를 쓸었을 때와 비슷했다. 그날 밤 진 선생은 술상 앞에서 경자 씨의 짧은 단발을 향해 먼저 손을 뻗었다. 오직 나만 언니를 인정해. 언니는 고생 많이 한 사람이라서, 그래서 세상 모든 아픔에 민감한 거야.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에 손을 뻗다가 멈칫댔을 때, 진 선생의 크고 하얀 손이 경자 씨의 낡은 도마 같은 손을 가져갔다. 서로의 머리를 쓸던 손이 멈췄을 때, 그녀가 귓불 가까이 숨을 뱉었다. 경자 언니도 시인이 될 거야. 시인은 시인을 알아보고, 시인이라고 부르거든. 닭 돌보고, 잡고, 요리하는 게 다 한 권의 시 쓰는 일인 걸. 뜨거운 숨소리가 닫히고 나서 경자 씨는 병든 암탉이 기침하듯 중얼거렸다. 난 그냥 고졸이어요, 선생님. 무슨 소리야, 언니가 얼마나 은유를 잘 하는데. 내가 언니 노트 딱 펼치고 말했잖아. '닭집 아래 울음은 도마자국마다 피었다' 그거 아무나 쓰는 거 아니라고. 부용읍에 갇혀있기 아까운 사람이야. 진 선생의 기다란 손가락 10개가 경자 씨의 양손을 힘 있게 감쌀 때, 진 선생의 맑은 눈과 경자 씨의 눈이 마주했다. 갑작스럽게 입술에서 뜨거운 것이 피어, 경자 씨는 그대로 숨을 멈췄다. 소주 냄새를 피우며 널브러진 진 선생을 보며 한참 동안 가슴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다. 흡사 가슴 속에 커다란 식칼이 휙 떨어져 자국을 내는 느낌이었다. 그날 밤 경자 씨는 코를 고는 진 선생 몸에 이불을 얹고 문을 열었다. 빌라 계단을 내려오는 내내 가슴이 뛰었다. 다음 날 가게를 간신히 열었지만 경자 씨는 읍사무소를 향해 고개만 돌려도 뺨이 화끈거렸다. 결국 노트는 은유 몇 줄을 삼킨 채 그대로 책장에서 긴 잠을 잤다. 한 달 후에 진 선생은 수업을 마치고 서울행 기차를 탔다며 미용실 원장이 닭집에 와서 달걀을 살 때 조잘거렸다. 경자 씨는 그날 저녁 가게를 닫고 나서 필사 노트에 적힌 자신의 문장들을 소리 내어 읽다가 덮어버렸다.

경자 씨는 다시 천천히 도마를 보았다. 삼나무 결 아래로 칼집들이 한가득 꽂혀 있었다. 칼을 내려놓자 닭의 형태를 어설프게 갖춘 고기조각들이 거리를 둔 채 오롯이 누워 있었다. 수도꼭지를 돌리자 물이 칼과 솔에 남은 닭피를 하수구로 끌었다. 경자 씨는 왼손으로 벽에 달린 검은 비닐봉지를 잡아당겼다. 닭고기들을 쓸어담고 유진을 향해 검은 봉지를 내밀었다. 봉지 손잡이에 맺힌 수돗물 몇 방울이 아래로 흐르다 맨 밑에서 맺혔다. 유진이 양 손을 모아 봉지를 받을 때, 봉지에 맺힌 물이 바닥에 떨어져 바닥에 자국을 냈다. 가느다란 두 손목이 살짝 흔들렸다.

“생각보다 무겁지? 좋은 놈이라서 그래.”

유진이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닭을 받아든 그녀는 경자 씨의 그림자에서 앞치마 그림자가 슬그머니 빠져나와 벽에 박힌 못에 걸리는 것을 보았다. 유진이 그 앞치마에 손을 대고 싶다고 생각할 때, 짙은 담배 냄새와 늙은 수컷의 냄새가 섞이며 물씬 다가왔다. 등산복을 입은 사내 둘이 안으로 들어섰다. 백숙용 다섯 마리를 주문하고 그들은 평상 위에 걸터앉아 껄껄대었다.

경자 씨는 허겁지겁 다시 앞치마를 챙겨 입었다. 유진은 몸을 세우며 매달린 보리를 박스 아래 내려놓았다. 사내들은 새로 들어설 건물이 부용시장 서문 앞인지 남문 쪽인지 두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진이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나갈 때 경자 씨가 닭 한 마리의 몸에 칼을 꽂으면서 소리를 높였다.

“유진아, 닭도리탕 할 땐 간 많이 잡지 말고, 슴슴하게 해.”


소음 사이로 닭장은 여전히 고요했다. 보리의 컹컹거리는 헛짖음이 경자 씨 발치서 맴돌았다. 크레인의 그림자가 동쪽으로 완연하게 기울었다. 사내들이 땅값과 시세로 옥신각신 하다가 받은 닭을 들고 나간 후에 다른 단골들이 대문을 넘었다. 닭도리탕과 백숙을 주문받는 내내 공사장 소음은 바람에 죽은 파리처럼 고요했다. 싱크대 안의 13개의 닭 머리 위로 파리 몇 마리가 꿈틀댔다. 싱크대에 남은 닭피 냄새가 남아 진하게 풀어졌다. 경자 씨는 남은 닭털과 버릴 부위를 비닐봉지에 따로 담았다. 파리 몇 놈이 닭머리가 담긴 비닐봉지를 기웃거리다 바람이 불 때마다 바닥을 기었다.

 

홀로 닭집을 지키는 내내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닭을 사러 오던 이들은 혼자 또는 가족과 상행선을 탔다

 

어느새 하늘은 짙어져가는 닭벼슬색으로 풀어졌다. 늘어진 구름이 서서히 밀렸고 바람이 시장 골목 안쪽을 따라 흐르며 닭똥내를 훔쳤다. 경자 씨는 평상에 앉은 채 기지개를 펴고 왼손으로 어깨를 천천히 어루만졌다. 피곤은 매일 새롭고 규칙적이었다. 석양 속에서 닭들은 정물화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적막만이 경자 씨 옆에 기대어 천천히 어깨를 비볐다.

홀로 닭집을 지키는 내내 부용읍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엄마 심부름으로 닭을 사러 온 애들은 어느 사이 홀로, 또는 부모와 같이 부용역에서 상행선을 탔다. 빚을 안고 돌아오던 이들도 찢어진 지로용지처럼 종적을 감췄다. 참 오래도 닭들과 함께 남아 있었구나, 라며 입술이 멋대로 달싹거렸다. 떠난 이들은 많았는데 정작 나만 닭처럼 남았네. 눈가에서 시큰한 게 올라와 경자 씨는 소매를 들었다. 길 건너 소음이 멈추더니 닭 몇 놈이 꼬꼬댁, 우는 소리가 고막에 닿았다. 안채로 들어가 필사 노트를 꺼냈다. 닭 우는 소리가 닭장 사이에서 삐죽거릴 때 노트 표지서 남편이 죽기 전날 밤 품 안에서 속삭이던 소리가 맴돌았다. 이전에 당신 고모님 입원하셨을 때 기억나? 당신 혼자 가게 지킬 때, 왠지 걱정 돼 일 끝나자마자 닭집 앞에서 서 있었는데. 도마에 식칼을 놓고 당신이 평상에 걸터앉는데, 닭들은 한 놈도 울지 않고, 고개 숙인 당신이 중얼거렸지. '가장 귀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때 생각했네, 당신은 내게 귀한 사람이라고. 지금 이렇게 있어줘서 고맙네.

당신 보내고 헛헛하게 살았지요. 난 이곳을 뜨지도 못했고, 시 한 줄 손대기도 힘드네요. 앞으로 적막과 엎치락뒤치락하며 견디겠죠. 팔자가 사나운 년, 이라는 말이 이제 실감이 가요. 시 한 줄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늙어가는 머리로 남아 있는게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네요. 이 한 줄만 내 속에 깊게 남았네요. 경자 씨는 얼룩진 소매를 간신히 내렸다.

보리가 몸을 세우고 꼬리를 흔들었다. 늘어진 닭장 그림자 사이로 훨씬 늘어진 치마 그림자가 짙게 펼쳐졌다. 유진의 목소리가 먼저 닭집으로 들어왔다. 빨간 국물이 잔뜩 묻은 치마를 털며 유진이 더듬거렸다.

“이모, 말씀한대로 슴슴하게 간 잡았는데요. 저랑 같이 드실래요? 저 혼자 먹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이모가 잡아준 닭이고, 제가 요리했는데, 그럼 우리가 함께 만든 거잖아요. 그렇죠? 그리고 혼자 먹기에 너무 큰놈으로 주셨어요.”

유진의 눈이 경자 씨의 눈 안에서 반짝였다. 유진의 눈 안에서 부용닭집은 고요하게 빛이 났다. 부용닭집 안으로 들어온 두 눈동자에서 경자 씨는 문득 오늘의 적막함이 노을빛에 섞여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경자 씨의 두 눈이 노을 건너편 낮달처럼 슬그머니 휘었다.

유진이 씩 웃으며 얼른 몸만 오라고 재촉했다. 맞은편 미닫이문이 한 번에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경자 씨는 신발에 두 발을 담았다. 문을 나설 때 닭 한 마리가 갑자기 길게 울더니, 닭 우는 소리가 닭장마다 이어졌다. 목이 꺾인 크레인 그림자 사이로 맞은편 빈 닭장 안의 햇볕도 길게 울었다. 보리가 몸을 일으켜 컹컹 짖었다. 개의 울음에 닭 울음의 끝자락이 섞여 석양 아래를 거닐었고 부용닭집 입간판 네온사인이 비척이며 천천히 등을 깜빡거렸다. 네온빛 ‘부용닭’에서 ‘집’이 깜빡거리더니 완연하게 ‘부용닭집’을 비추었다. 이 모든 것이 거대한 은유처럼 느껴져, 경자 씨는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목에서 피어난 웃음이 닭장 사이로 흩어지다 낮달처럼 휘어지며 사라졌다. 앞집 미닫이문 그림자 사이로 경자 씨의 그림자가 천천히 미끄러졌다.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소감]

펜 놓게 될까 두려웠던 삶 더욱 정진해 좋은 작품 쓸 터

이휘빈씨.


당선 통보 전화를 받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올랐던 건 ‘산월기(山月記)’였습니다. 나카지마 아쓰시가 다시 해석한, 달밤에 시를 읊으며 장원급제한 친구에게 시인의 꿈을 울먹이던 창백한 호랑이는 스무살부터 제 마음을 깊게 찔렀습니다. 언젠가 펜을 놓고 산속에서 범으로 말라비틀어질까 두려웠던 제 삶은, 간신히 사람으로 남아 펜을 잡을 허락을 얻은 기분입니다.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는 드문드문 닭집들이 남아 있습니다. 닭똥내와 파리 속에서 닭이 어떻게 닭고기가 되는지 궁금해하는 더벅머리를 두고 닭집 주인들은 너털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리며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꼼꼼히 글을 읽어주신 블로그 이웃들과 모임 사람들, 동한 형, 이근형, 정호, 이경호, 동원씨와 신철씨, 강봉호 사장님, 광섭이 형, 진영 누나, 제오, 아카네에게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저를 포기하지 않은 두분, 제 가능성을 잊지 않아주시고 지난(持難)한 자학을 꾸짖어주신 안도현 선생님과 스물아홉해 동안 문제 많은 아들이 작가가 될 거라 굳게 믿어온, 제 어머니 소채남님께 큰절을 올립니다. 살아가겠습니다, 바람이 불어도, 바람이 불지 않아도.

이휘빈 ▲1989년 전북 전주 출생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전 전북중앙신문 편집기자 ▲전주 산책자

 


 

[신춘문예-단편소설 심사평]

닭 잡는 과정의 구체적 묘사 삶으로 승화되는 지점 놀라워

이순원 소설가(왼쪽), 김인숙 소설가(오른쪽).

한때 시인이 되기를 꿈꿨던 닭집 여자가 있다. 가난한 살림살이, 쇠락한 가게, 속절없이 늙어가는 나이, 그 속에서 삶을 삶답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게다가 삶다운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 소설의 묘사는 놀랍다. 닭을 잡는 과정의 구체적인 디테일이 놀랍기도 하지만, 그 묘사가 우리 모두의 누추한, 그러나 끝내 포기할 수 없는 삶으로 승화되는 지점이 더욱 그러하다. 마침내, 모든 것이 거대한 은유 같아지는 지점. 삶도, 시도, 적요도.

최종심에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하는 데는 이론이 없었다. 다만 닭집 여자에 비해 시인에 관한 묘사가 지나치게 감상적인 것이 아쉬웠다. 다음 작품이 더욱 기대된다는 말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를 드린다.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농촌 생활의 살림살이들을 다루고 있다. 최근에 벌어지고 있는 시사적인 문제를 다룬 작품도 있고, 전통적인 농촌의 정서를 다룬 작품도 많았다. 농촌은 늘 우리 모두의 마음의 고향이라 그 풍경을 잔잔하게 다룬 작품들은 읽는 이의 마음을 울리고, 또 따듯하게 한다. 어머니의 임신과 소의 출산을 겹쳐서 다룬 ‘소’는 굉장히 오래된 농촌 풍경을 다루고 있었음에도, 여전히 사랑방 얘기처럼 따듯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오래된 이야기로만 머문 건 아닌지 하는 지적이 있었다. 조류독감 사태를 다룬 ‘하얀 거짓말’은 시사성이 주는 이야기의 힘이 있기는 하지만 소설적인 구성에까지는 미치지 못했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역시 비슷한 소재를 다룬 ‘닭’도 결말이 흐지부지했다는 느낌이 짙었다.

농민신문사 신춘문예이니만큼 농촌의 삶이 배경이 되는 소설이 많이 투고가 되는 것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상상력이 농촌이라는 무대로만 국한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 신춘문예가 농민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더군다나 농민소설을 뽑기 위한 신춘문예가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내년에는 새로운 감각의 소설들이 많이 투고되기를 기대해본다.

사진=김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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