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회 영농·생활수기] <다문화부문> 당선작 : 나주배! 미얀마 여인의 끝없는 도전

입력 : 2017-08-11 00:00 수정 : 2017-08-25 18:29
배농사를 짓는 산산윈씨(51·왼쪽)가 구기자농사를 짓는 최신숙씨(46)를 만나 ‘구기자배즙’을 만들었다. 사업이 쉽지 않지만 둘은 희망차게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산산윈(51·전남 나주시 대호동), 제34회 영농·생활수기 <다문화부문> 당선

미얀마 도시에서 많은 형제들과 성장

일본 유학 시절 한국인 남편 만나 28세에 전남 나주로 시집와

친척 땅 빌려 배나무 심어 서투른 수박농사로 어려움 겪기도



올해 제 나이 만으로 51세. 이제 모국인 미얀마에서 산 세월보다 한국에서 산 세월이 더 길어졌습니다. 저의 고향은 미얀마 옛수도 양곤입니다. ‘론지’라는 전통 여성 의상을 만들어파는 가정에서 많은 형제자매와 함께 자랐습니다. 저는 양곤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지금의 한국인 남편을 만났지요.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고 했나요. 걱정하는 부모님을 설득해 1994년 제 나이 28세에 대한민국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이란 곳으로 시집을 왔습니다. 제가 인종적으로는 인도계에 속하기 때문에 마을에서는 저를 ‘인도댁’이라고 불렀습니다.

미얀마에서는 도시에서 살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나주의 시골생활에 적응이 잘 안됐습니다. 당시 나주에는 저 같은 결혼이민여성이 전혀 없었고, 마을에는 나이 많은 할머니들뿐이었습니다. “시골에 가본 적도, 논밭에 들어가본 적도 없는 네가 어떻게 농사를 짓느냐”며 걱정하던 언니의 말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결혼 초 집안 친척의 감나무밭 2.3㏊(7000평)를 빌려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감만으로는 생계가 어려워 1.3㏊(4000평)에는 감나무 사이에 배나무를 심었습니다. 지금은 배 15㎏ 한상자에 3만원도 못 받을 때가 있지만 24년 전에는 8만원이나 했으니 어마어마하게 비싼 값이었습니다. 배농사로 한밑천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배나무가 자라면 감나무를 캐낼 생각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큰아이를 임신했으니, 아이와 배나무를 같이 키운 셈이지요.

배를 수확하려면 심고 3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감나무밭에 여름에는 수박을, 가을에는 무를 심었습니다. 당시 나주 봉황에서는 노지수박과 노지가을무가 주작목이었습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저희 부부는 남들 따라 2.3㏊나 되는 밭에 수박과 가을무 농사를 지었습니다. 2.3㏊는 축구장 두배가 넘는 면적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이없습니다.

남들은 수박 모종을 집에서 알뜰히 키웠는데 저희는 농사를 지을 줄 모르니 사서 심어야 했습니다. 당시 모종 하나에 300원으로, 1만개를 심었더니 모종값만 300만원이 들었습니다. 하루 인건비 2만원을 주고 인부들 손도 빌려야 했습니다. 수박은 순이 여러개 솟는데 다 없애고 세줄기만 키워야 하고 곁순은 나오는 대로 따줘야 합니다. 수박은 10~13번째 잎과 줄기 사이에서 나오는 열매 하나만 키우고, 그 전후로 나오는 것은 다 따냅니다. 한포기, 세줄기에서 수박 하나만 키우는 것이지요.

남편 혼자 축구장 두세배 되는 수박밭의 순을 치려니 감당이 안됐습니다. 그런데 순을 칠 때는 사람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들 배 과수원에서 열매 솎고 배 싸는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순 치는 일은 하루 일당이 2만원이지만 배 봉지를 싸면 7만~8만원을 받았거든요. 당시 저는 임신한 몸으로, 한국말도 한국 음식도 못하는데 밥을 해서 밭으로 날랐습니다.

남편 혼자 하려니 농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습니다. 수박 줄기는 엉키기 일쑤였고, 순도 제때 못 쳤지요. 수박이 몇번째 잎에서 생겼는지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어설프게 농사를 지었는데도 6월이 되자 수박이 커졌습니다. 잘 자란 것도, 그렇지 못한 것도 있었습니다. 크게 자란 수박을 보면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6월 말께 장마가 오면서 탄저병이 생겼습니다. 수박 표면에 검은 점이 생겼고 열매가 쩍쩍 갈라졌습니다.

농사 첫해 4천만원 빚더미에 올라 3년 후 7천만…배 열리며 나아졌지만 돈 조금 벌어 이자 갚기도 빠듯

배농사로 승부하겠다 결심 교육 있는 곳 어디든 달려가


24년 전, 농사 지은 첫해에 빚을 4000만원이나 졌습니다. 3년이 지나니 7000만원으로 늘었습니다. 1년 농사지어 700만원 버는데 대출이자만 1000만원이었습니다. 수박농사로 빚을 지고 있는 사이 배나무가 자랐습니다. 배가 열리면서 수박농사는 그만뒀습니다. 하지만 배농사도 역시 초보인지라 조금씩 돈은 벌었지만 여전히 이자 갚을 만큼은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발을 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전남대에서 배 마이스터 교육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남편에게 교육받을 것을 적극 권했습니다. 남편뿐 아니라 저도 재배기술을 정확히 알아야 했습니다. 배 과수원 인부반장에게 농사를 잘 짓는 과수원에 갈 때는 저를 데려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주로 밭떼기거래를 하는 과수원에 끼어들어가 시키는 대로 일하면서 기술을 배웠습니다. 농사를 잘 짓는 농장의 배를 중간상인이 밭떼기로 사가기 때문이었지요.

그렇게 기술은 익혔지만 이론이 너무 부족했습니다. 왜 배나무 잎이 노랗게, 파랗게 되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농협에서 하는 배 재배 강의을 들으러 다녔습니다. 교육을 받으러 가보면 결혼이민여성은 저 혼자였습니다. 한국말을 잘 몰라도 맨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열심히 들었지만 교육내용의 20%밖에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이때 운 좋게도 다문화가정에 관심을 가진 목사님을 알게 됐습니다. 그분에게 한국어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니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예전보다 알아듣는 교육내용도 많아졌습니다. 몇년 뒤 저는 배 재배에 관해 실전과 이론을 모두 갖춘 농부가 됐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배농사를 잘 짓긴 했지만 농사 자체에 대해 너무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주시에서 여는 기초 농사교육도 받았습니다.

기술·이론 갖춘 배 전문가로 우뚝 확률 높은 인공수분법도 스스로 터득 특품 비율 70~80% 된 적도

열심히 배워 유기농기능사 자격증 취득 ‘구기자배즙’ 생산에도 도전


배 농사에서는 인공수분이 가장 중요합니다. 수정이 안되면 그해 농사는 끝이니까요. 인공수분은 사람이 배꽃에 꽃가루를 묻혀주는 작업입니다. 꽃가루는 중국산도 국산도 있지만 20g에 12만원이나 할 정도로 비쌀 때도 있습니다. 꽃가루 양이 너무 적고 비싸니 ‘석송자’라는 분홍색 증량제를 섞어씁니다. 인공수분을 하고 나면 꽃가루와 증량제 때문에 기침도 나고 목구멍이 갈라져 목소리가 안 나오기도 했습니다.

2000년대 초반엔 극심한 서리피해로 배꽃 수정이 너무나 안됐습니다. 당시 배꽃 수분은 타조털이 달려 있는 기계로 석송자 섞은 꽃가루를 뿌려주는 방법을 썼습니다. 그러면 꽃가루가 너무 많이 들어갑니다. 어느 날 인공수분 작업이 끝나고 우연히 통에 묻어 있는 꽃가루 원액이 너무 아까워 면봉으로 닦아 한나무의 배꽃 전체에 한두번씩 대줬습니다. 벌이 앉듯이 말이지요. 그런데 얼마 뒤 보니 그 나무만 수정이 너무 잘돼 있는 것이었습니다. 알이 굵고 기형과도 없었습니다. 수확할 때 보니 특품이 많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증량제를 섞지 않고 꽃가루 원액으로만 수정을 시작했습니다. 꽃가루를 면봉으로 찍으니 꽃가루가 날리지 않아 기침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꽃가루 원액으로만 수정하면 일단 증량제 비용을 아낄 수 있고, 수정 확률이 매우 높아집니다. 대량으로 뿌리지 않으니 비싼 꽃가루도 덜 쓰게 됩니다. 한가지 단점이라면 분홍색 증량제를 쓰지 않으니 인공수분 작업할 때 표시가 잘 안 나 인부들이 답답해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몸으로 기술을 익히고, 직접 이론교육도 받고, 스스로 실험도 하니 배농사가 점점 나아졌습니다. 다른 농사는 다 접고 배농사에만 매달렸습니다. 빚도 점점 줄었습니다. 이렇게 농사지은 배의 특품 비율이 70~80%나 된 적도 있습니다. 농사를 잘 짓는다는 말을 들으면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낍니다. 남편도 배농사에 대해서는 저의 경험을 인정하고 늘 제게 물어봅니다. 밭에 붙어사니 무슨 병징이라도 생기면 가장 먼저 발견하고 대처할 수 있어 남편과 손발이 잘 맞았습니다.

유기농기능사 자격증을 땄던 때도 잊을 수 없습니다. 농업용어는 한문이 많습니다. 한국말도 잘 모르는데 한문은 얼마나 더 어렵겠습니까. 사전을 여러개 놓고 공부했습니다. 그래도 모르는 것이 나오면 아이들에게 묻거나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물었습니다. 저는 남에게 물어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공부해 자격증을 따니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슴에서 솟구쳤습니다.

24년 배농사 경험을 바탕으로 한가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구기자농사를 짓는 지인과 <구기자배즙>이란 제품을 만든 것입니다. 아직은 기대만큼 잘되지 않지만 희망을 가지고 펼쳐나가려 합니다. 농사는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는 일입니다.


[당선소감]“내가 가장 잘하는 일은 농사…인생상 받은 듯”

우선 이렇게 상을 받게 되어 너무너무 기쁩니다. 제 인생에 대해 상을 받은 듯합니다. 음식대회 등 몇몇 대회에 나가 상을 받기는 했지만 이렇게 큰 상을 받은 적은 없습니다. 영농수기로 상을 받으니 제가 가장 잘하는 일이 ‘농사’임을 인정받은 것 같습니다.

수상 소식을 들으니 한사람이 떠오릅니다. 부모님도 아니고 남편도 아닌, 바로 시아버지입니다. 잘 교육시켜 놓은 아들이 외국 여자를 데리고 시골로 들어왔을 때 얼마나 실망이 크셨는지 모릅니다. 시집온 다음날, 배과수원에서 가지치기한 배나무 가지를 주워모으는 일부터 제 농사가 시작됐습니다. 말은 하나도 안 통하고, 큰소리로 혼만 내시는 시아버지 밑에서 농사지으며 겪은 고생은 말도 못합니다.

그런데 모든 일에 열심히 따르는 저를 시아버지는 어느새 받아들이시고 큰며느리로 대우하기 시작하셨습니다. 10년쯤 지나고 남들로부터 배농사를 인정받을 즈음 그 기반이 시아버지의 엄격한 교육 덕분임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제가 상을 받은 것도 무서운 시아버지 덕분이지요. 성공한 모습을 다른 누구보다 돌아가신 시아버지께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이 상의 영광을 시아버지께 바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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