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회 영농·생활수기] <일반부문> 당선작 : 농업, 청춘 투자할 만한 가치 있다

입력 : 2017-08-11 00:00 수정 : 2017-08-25 18:29
이성규씨(33·오른쪽)가 부인 김보라씨(28·가운데), 아버지 이정열씨(61)와 함께 인삼밭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이성규(33, 충남 금산군 금성면) 제34회 영농·생활수기 <일반부문> 당선 

힘든 노동에도 윤택하지 않은 삶 흙 묻은 손·옷 싫어 농사일 외면

농촌에서 자라며 좋은 추억 많아

20대 도시에서의 도전 실패 후 부모님 곁에서 꿈 펼치기로 결심



나는 농촌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까지 그곳에서 자랐다. 계절별로 과일 서리를 하며 낄낄대기도 했고, 어두운 밤하늘에 찬란하게 빛나는 별을 세어보며 아득한 거리를 상상하기도 했다. 이러한 추억 때문일까. 마음 한편에 ‘많은 사람들과 이런 좋은 추억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다른 한편으로 철없던 나는 농촌에 산다는 사실과 농사일 자체가 창피하기도 했다. 흙 묻은 손과 옷이 싫었고, 농촌 특유의 보수성이 나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대다수 농민들이 고되게 일을 했지만 주변을 둘러봐도 삶이 윤택해지는 농가를 찾기 힘들었다. 힘든 노동의 대가치고는 참으로 고약하다고 생각하며 ‘나는 절대 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했다.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내가 20대에 도전했던 대부분의 일은 성공하지 못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귀향이었다. 내가 농촌에 대해 가지고 있던 추억의 양면성 중에서 좋은 기억만이 자석처럼 나를 시골로 끌어당겼다. 좀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이미 부모님이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숟가락을 얹어보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렇게 나는 절대 농사를 짓지 않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농사일을 업으로 삼게 되었다.

이쯤에서 집안의 버팀목인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아버지는 노동의 대가를 고스란히 인정받을 수 있는 농사일을 평생의 업으로 선택했다. 먹고살기 위해 십대부터 간간이 농사일로 품팔이를 했다고 하니 대충 계산해도 경력이 40년은 훌쩍 넘은 베테랑 농민이다. 벼농사를 시작으로 차근차근 성장해 당귀와 지황이라는 특용작물을 거쳐 지금은 인삼농사를 짓고 있다. 2008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인삼을 이용한 홍삼가공사업을 시작했고 나름의 성공을 거뒀다.

눈치를 살피며 부모님께 귀향을 선택했노라고 말을 했다. 아비가 성공한 것처럼 아들도 성공할 수 있는 노릇이니 부모님의 반대가 심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은 보란 듯이 빗나갔다. 당신들은 누리지 못했지만 “아들인 너라도 번듯한 직장에 취직해 깔끔한 양복 입고 멋있는 자동차로 출퇴근하기를 원했다”면서 억장이 무너진다고도 했다.

나는 속으로 농사로 꽤나 성공한 분들이 반대하니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예상보다 거센 반대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라는 옛말을 가슴속에 새기며 나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부모님이 반대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홍삼가공사업으로 성공한 아버지 번듯한 직장생활 원했으나 아들 선택에 온라인판매 맡겨

제품 디자인 바꾸고 쇼핑몰도 정비 큰돈은 들었지만 희망 갖고 추진


부모님이 반대하셨던 이유를 몸소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첩첩산중’이라는 단어가 그때 나의 상황과 딱 맞는 단어였다. 하루의 시작을 새벽 5시에 하는 것부터 적응되지 않았다. 평소 부모님이 하던 생활양식을 봐왔으니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일과였지만 쉽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땡볕에서 힘쓰는 일을 하는 것도 힘들었고, 풀숲에 대충 앉아 새참을 먹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내가 귀향을 하면서 세웠던 계획이 하나씩 수포로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었다.

부모님은 다른 사람을 통하여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했다. 20대 청년의 눈에는 쇼핑몰의 구성과 그곳에서 판매하던 제품의 디자인이 촌스럽고 시대 흐름에 뒤처져 있었다. 그것을 조금만 세련되게 바꾸면 매출은 쉽게 늘어날 것으로 생각했다. 공부를 하면서도 간혹 아버지께 건의했지만 아버지는 웃기만 했을 뿐 바꾸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버지는 특유의 고집과 나름의 방법으로 농업과 사업을 성공적으로 병행했다. 그러나 인생을 건 자식의 선택에는 마지못해 백기를 들었고 ‘알아서 해봐’라는 말과 함께 아들이 진행하는 일을 애써 외면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갔다.

부모님의 허락이 떨어졌으니 나는 물 만난 고기가 됐다. 내가 평소에 생각한 대로 제품 디자인을 바꾸고 쇼핑몰을 정비했다. 다양한 분야의 쇼핑몰을 가능한 한 많이 둘러보며 벤치마킹하는 등 나름 열심히 노력했다. 제품 디자인을 바꾸고 쇼핑몰을 정비하는 데 예상보다 큰 목돈이 필요했다. 살면서 처음 접하는 큰돈의 무게 때문에 때로는 두렵기도 했지만 잘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붙잡고 한걸음씩 어려운 발걸음을 뗐다. ‘성공할 것이고 모든 일은 계획대로 잘 풀릴 것’이라고 애써 괜찮은 척을 했고 부모님 앞에서는 늘 당당하게 행동하려 노력했다.

시간 지날수록 떨어지는 매출에 버릇처럼 스마트폰만 살펴봐 몸은 건강해도 마음은 피폐해져

실망·안타까움 섞인 부모님 눈빛 보고 비겁하게 물러서지 않겠다 다짐


한달이 지나고 어느덧 반년이 흘렀지만 매출은 점점 떨어졌다. 부모님을 볼 면목이 없었다.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인삼파종을 하고, 지주목을 세우고, 차광막을 설치하는 꽤나 힘든 노동을 하면서도 온 신경은 스마트폰에 있었다. 굵은 땀방울을 흘리다 잠깐 쉴 때도 버릇처럼 스마트폰을 살폈다. 언제나 그렇듯 오늘 판매금액도 0원이다. 규칙적인 생활과 적당한 노동으로 몸은 점점 탄탄하게 변해 갔지만 마음은 피폐해졌다. 귀향 후 자주 만나게 되는 동네 어른들은 나를 반겨주기보다는 혀끝을 찼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만 같았다. 부모님이 귀향을 반대했던 이유가 명확해졌을 때쯤 실패의 그림자도 바짝 다가와 있었다.

‘그래, 원래 농촌은 나랑 맞지 않았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고, 동시에 20대 초반의 화려했던 도시 생활이 그리워졌다. 이번에는 농촌에 대한 좋지 않았던 추억이 나를 도시로 밀어내려 했다. 그런데 이때는 조금 달랐다. 실패를 깨끗하게 인정하려는 순간, 나 자신에게 했던 합리화에도 불구하고 자존심에 생채기가 났고 도리어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부모님의 눈빛, 믿었던 아들에 대한 실망감과 자꾸 실패만 하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의 안타까운 마음이 절묘하게 섞여 있는 듯한 그 야릇한 눈빛이 발단이었다. 이번에는 비겁하게 물러서지 않겠다고, 꼭 성공하겠다고 다짐했다.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사업체의 기준이 되고 싶다. 고민 많은 청춘이 선택할 수 있는 하나의 선택지가 되고 싶다.’

이렇게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새로 세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전략이 필요했다. 전략은 간단했다. ‘먼저 농사가 기본이니 우선 농사일에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무엇이든 공부한다.’ 이러한 전략 아래 새벽과 낮에는 열심히 농사일을 하고, 밤에는 경영·경제·마케팅 등 사업과 관련된 책을 읽으며 인삼·홍삼과 관련된 논문을 찾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다보니 점점 시장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제품 디자인과 쇼핑몰에 어울릴 수 있도록 기업이미지(CI·Corporate Identity)와 브랜드이미지(BI·Brand Identity)를 수정하고 포지셔닝을 명확하게 했으며, 그에 맞게 스토리텔링을 진행했다. 간절하게 공부를 하고 나니 마케팅 포인트가 눈에 들어왔다. 흐릿했던 길이 점점 뚜렷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설레는 마음 때문인지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농장과의 직거래에 긍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비교적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마케팅 수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을 노렸다.

농업기반 사업체 기준 되고자 새 목표 세우고 전략도 변경

새벽·낮엔 농사에 매달리고 밤엔 홍삼 관련 논문 정독…경영 공부도 시장 흐름 보며 마케팅 핵심 익혀


먼저 쇼핑몰에 ‘농장일기’라는 게시판을 만들고, 블로그·인터넷카페와 페이스북을 시작했다. 이런 것들을 시작하고 나니 그곳에 올릴 사진이 필요했다. 스마트폰으로 무작정 농사와 관련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어설프게 찍은 사진이 오히려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삼씨 개갑 과정부터 파종과 지주목·차광막 등을 설치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수해(水害)를 당한 모습도 진솔하게 찍어 고객들과 공유했다.

텃밭에 자라고 있는 상추와 고구마, 농장 주변에 심은 사과나무에 핀 뽀얀 사과꽃과 사과나무 아래에서 자란 민들레 사진도 찍어올렸다. 그렇게 나에게 가장 필요한 농기구는 삽이 아닌 스마트폰이 됐다. 그리고 2008년부터 농장에서 받은 농산물우수관리(GAP) 인증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정부 인증만큼 소비자 신뢰를 얻기 좋은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다.

점점 매출이 상승하기 시작했다. 하루하루 늘어나는 판매량은 그동안의 노력에 대한 보상인 것 같아서 좋기도 했지만, ‘실패’라는 피해의식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인지 더욱더 노력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단 한명의 고객도 정말 소중하게 대했다. 정성껏 직접 손으로 쓴 엽서를 제품과 함께 보내드렸고, 가끔 불만 전화를 거는 고객에게는 최선을 다해 응대해 전화를 끊을 때는 오히려 고맙다는 인사말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SNS에 농장 사진·이야기 올리며 GAP 인증 적극 홍보…신뢰 얻어

진심 담은 상품 재구매율 70% ‘훌쩍’ 귀향 3년만에 매출 5배 이상 성장 성공농업 모델 보여주고 싶어


순간의 이익보다는 미래를 생각하며 모든 일에 임했고, 택배를 보내기 위해 제품 포장을 할 때는 ‘이렇게 주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하며 포장을 했다. 이런 나의 진심이 고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현재 운영하고 있는 쇼핑몰의 재구매율은 70%가 훌쩍 넘는다. 이러한 성과는 고객을 향한 진심이 온전히 전해진 결과라고 생각한다.

귀향 후 만 3년 만에 부모님이 운영했던 당시의 매출보다 5배 이상 성장했다. 2015년에는 개인사업자에서 농업회사법인으로 사업의 형태를 변경했고, 아버지께서는 기꺼이 대표 자리를 나에게 내어주셨다. 올 하반기에는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해썹·HACCP)과 우수건강기능식품제조기준(GMP)에 적합한 공장도 신축할 계획이다.

이제 부모님은 아들에게 ‘대표님’이라고 부르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고맙다는 말씀도 종종 하신다. 처음에는 그렇게 아들의 귀향을 반대하더니 이제는 주변 사람들에게 “요즘 애들 못 따라간다”면서 자녀의 귀향을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있다.

귀향을 선택하면서 가슴속 깊은 곳에 막연히 가졌던 질문이 있었다. ‘사업과 장사의 차이는 무엇일까?’라는 것이다. 최근에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추구하는 철학과 체계가 함께 명확히 잡히는 순간 장사는 사업이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돈을 좇는다면 아무리 큰 대기업이라도 사업이 아닌 장사를 하는 것이고, 추구하는 철학이 탄탄하게 잡혀 있다고 하더라도 회사에 체계가 잡혀 있지 않다면 그것 역시 사업이 아닌 장사를 하는 것이다. 나는 장사가 아닌 사업을 하고 싶다. 실패를 딛고 다시 세운 목표, 나는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체계를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주 5일 근무, 월차 보장 등은 근로기준법에 정해진 당연한 근로자의 권리다. 그러나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소규모 회사에서 그것을 지키기는 좀처럼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9시30분에 출근하고 일이 끝나면 자율적으로 퇴근하는, 한발 더 나아간 근무 형태를 실험하고 있다. 농업 하면 떠오르는 폐쇄적이고 보수적일 것 같다는 편견을 없애고 싶다.

지금까지 농업은 젊은 청춘들에게 철저히 외면받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대기업들은 농업을 유망산업으로 판단하고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고, 세계적인 투자가인 짐 로저스는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과정을 밟고 있는 학생들에게 “당장 농대로 가라. 여러분이 은퇴할 때쯤 농업은 가장 유망한 사업이 될 것”이라고 말해 화제가 된 적도 있다. 나는 나와 같은 젊은 청춘들이 다양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농업을 사업아이템으로 선택하고 스토리텔링을 통해 브랜드화하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당선소감] “인삼농사에 스마트팜 접목…6차산업 완성할터”

언제인지 기억하지 못할 때부터 아버지는 <농민신문>을 보셨고, 저도 자연스럽게 <농민신문>에 대한 애착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농민신문>에서 주최하는 수기공모에 당선되니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2016년 11월에 결혼한 아내가 인터넷을 통해 얻은 공모 소식을 전해줬고, 바쁜 일과에도 시간을 쪼개 글을 썼습니다. 투박한 글에 좋은 점수를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요즘 농촌 현실이 녹록지 않습니다. 예전부터 차곡차곡 쌓여왔던 어려움이 한꺼번에 표출된다고 느껴질 정도입니다. 해결책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일단 제가 그 변화의 물결을 한걸음 앞에서 맞이하고 있겠습니다. 많은 농민들이 저와 함께하길 기대합니다.

저는 인공지능(AI)·정보통신기술(ICT) 같은 첨단기술을 농업에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인삼에 스마트팜을 접목하고 체험시설을 확충해 6차산업을 완성하고자 합니다. 그 꿈을 이뤄 다시 한번 인사드리길 바라봅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글을 쓸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준 가족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특히 직업을 농부라고 소개하는 남자를 끝까지 믿고 선택해준 아내에게 이 자리를 빌려 특별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사랑합니다.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추천광고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