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농 열전 백년농부] 명품농장 가꾸며 배즙 가공…“아버지같은 농사꾼 될게요”

입력 : 2022-09-21 00:00

[백년농부] ‘아름답게그린배’ 김영순 대표

할아버지부터 3대 잇는 배농사 명가

고시공부 실패…떠밀려 내려와 정착  

노력 만큼 탐스런 과실로 보상 ‘매력’ 

직접 재배 가공한 배즙 연매출 13억

풍경좋은 ‘카페 밭뷰’는 동네 사랑방

어느새 부친과 닮아가는 모습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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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키운 배와 계약재배한 한라봉·도라지 등의 농산물로 만든 가공식품을 들어 보이는 김영순씨. 매출 확대를 위해 홈쇼핑 홍보 등 적극적인 마케팅 노력도 자랑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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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밭이 내려다 보이는 카페 밭뷰 테라스.

전남 영광군 군서면의 한적한 도롯가. 주위가 온통 논밭인 이곳에 세련된 2층짜리 카페가 들어섰다. ‘카페 밭뷰’란 이름처럼 배밭을 바라보는 자리가 그림이다. 카페 말곤 동네에 별다른 놀거리나 즐길거리가 없지만 주말이면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특히 배가 열리는 철이면 빈자리를 찾기 어렵다. 평범한 과수원을 사람들이 찾아오는 명품농장으로 탈바꿈시킨 이는 ‘아름답게그린배’ 농장의 주인장 김영순씨(41)다.

김씨 집안은 할아버지 때부터 나주·영광 지역에서 배를 잘 키워온 명가다. 3대를 잇는 고품질 재배기술 덕분에 그는 2018년 농림축산식품부가 선발한 신지식농업인에 선정됐고 전남도로부터 받은 상도 여럿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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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을 따라 농업에 매진할 것을 다짐하는 김씨.

사실 김씨는 등 떠밀려 농사꾼이 됐다. 공대에 진학해 고시공부를 했는데 거듭 시험에 낙방하자 보다 못한 아버지가 그를 불러들였다. 마지못해 시작한 가업이지만 열정을 불사른 끝에 금세 틀이 잡혀갔다. 수년씩 노력을 해도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 공부와 견줘 농사는 노력한 만큼 탐스런 과실로 보상해주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농작물은 시간과 정성을 쏟은 만큼 건강하게 자라주더라고요. 한두달이면 수확해서 상품으로 내놓을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적성에 딱 맞았습니다.”

흥미를 찾으니 의욕도 솟았지만 문제는 아버지였다. 영농기술을 배워야 하는데 불 같은 성격을 지닌 아버지와의 이견 때문에 매번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다. ‘일찍 일어나라’ ‘가지치기에 신경 써라’ ‘제때 시비해라’ 하며 역정이 이어졌고 혼나지 않고 하루를 넘기는 날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진종일 일하는 아버지 밑에서 그는 늘 주눅이 들었다.

“사실 아버지와 같이 일하기 싫어 배즙 가공사업을 시작했어요. 아버지는 배를 재배하고 저는 가공하는 거죠. 분업하면 덜 부딪칠 거라고 생각했어요. 나름 잔소리를 듣기 싫어 요령을 부린 건데 의외로 갈등 해결에 도움이 됐습니다.”

적극적인 마케팅 노력도 돋보였다. 농사는 기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장마나 가뭄이 오면 속수무책이다. 수익이 들쭉날쭉하다. 그에 비해 가공사업은 잘만 하면 수익도 높고 연중 안정적이다. 게다가 김씨의 화려한 이력을 전면에 내세워 홈쇼핑에 출연하면서 적극적인 제품 홍보로 경쟁력을 높였다. 덕분에 이곳에서 나온 배즙은 프리미엄 상품으로 높은 값을 받고 판매된다. 가공식품으로만 13억원가량 연매출을 올린다.

집안을 호령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아버지의 빈자리는 온 가족이 함께 메우고 있다. 김씨가 가공시설을 책임지고 영농은 어머니 한양임씨(66)와 동생 김영조씨(40)가 도맡는다.

“가족이 곁에 있어서 든든합니다. 사업 규모가 커지면 절대 혼자서 모든 걸 할 수 없어요. 남이라면 믿고 맡길 수 없을 텐데 가족이 도와주니 맘 편하게 일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영농환경 조성을 위해 아내도 거들었다. 카페 구상은 사실 아내 정혜미씨(36)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과수원을 일터로만 여긴 김씨네 가족과 달리 도시 출신인 아내는 이곳이 바로 ‘풍경 좋은 곳’이란 걸 직감했다. 흥미로운 볼거리가 될 거라고 판단했고 사업계획에 따라 1년 동안 각종 교육을 받는가 하면 시장조사도 마쳐 리스크를 줄였다. 그 결실로 탄생한 곳이 ‘카페 밭뷰’인 셈이다. 2층은 카페공간이고 1층은 아내가 직접 진행하는 체험공방으로 운영하며 방문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요즘 그는 새로운 직함을 달았다. 바로 ‘농업교육인’이다. 지역 내 농업고등학교와 지방자치단체 산하기관에서 강연 요청이 쏟아진다. 그를 본보기로 삼겠다며 찾아오는 이들도 많다.

“다들 영광을 바닷가 마을로 알고 있지만 배농가가 꽤 많습니다. 나주가 혁신도시가 되면서 이곳으로 밀려난 이들이지요. 앞서 안착한 선배로서 돕고 싶습니다. 지역 농업이 잘돼야 저도 따라 잘될 테니까요.”

김씨는 요즘 부쩍 아버지 생각이 난다. 함께 일할 땐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썼는데 어느새 스스로 아버지와 닮은 모습을 발견한다.

“일하다 막힐 때면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합니다. 피는 못 속이는구나 싶죠. 일평생 농사꾼으로 산 아버지를 좇아 저 역시 농업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영광=지유리 기자, 사진=김원철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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