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농 열전 백년농부] 차인부자(茶人父子)...변화 도모하는 父, 전통 고수하는 子

입력 : 2022-05-04 00:00

[가족농 열전 백년농부] ⑦ 차농가 오재홍씨

17세부터 제다 도맡아…‘차는 문화’ 자부심 자연에 둘러싸인 차실, 1년 만에 핫플 등극

“이웃 농가와 합심해 관광명소로 만들고 싶어 하동 천년차 함께 이어갈 청년농 많아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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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실을 운영하느라 바쁜 오재홍씨(왼쪽)가 오랜만에 아버지 오시영 명인을 찾아 찻잎 따는 일을 돕고 있다. 보통 곡우(양력 4월20일)와 입하(양력 5월5일) 사이에 처음 난 어린잎을 따 덖은 차를 ‘세작’이라고 하며 명품으로 친다.

‘곡우’는 여섯번째 절기로 양력 4월20일경이다. 우리 선조는 이 무렵 못자리를 마련하고 한해 농사를 시작했다. 그런데 차농사는 이맘때가 수확철이다. ‘곡우’ 전에 딴 찻잎을 우전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덖은 차를 최상품으로 쳤다.

하동은 우리나라 차 시배지(始培地)로 알려졌다. <삼국사기>에 신라시대 사신인 대렴 공이 중국에서 차나무 씨를 들여와 지리산에 심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천년을 뛰어넘는 역사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17년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하동 차농업 역사와 함께해온 다원이 있다. 지금은 고사한 천년차나무와 그 후계목이 있는 ‘도심다원’이다. 제다(製茶) 명인인 오시영씨(70)와 그의 아들 재홍씨(42)가 8대째 차밭을 지키고 있다.

“이래 봬도 차를 다룬 지 25년입니다. 제가 열일곱살 때 저희 집 솥을 잡았거든요.”

차는 말린 잎을 250∼300℃로 달군 솥에 덖어서 만든다. ‘솥을 잡았다’는 말은 차를 만들었다는 뜻이다. 오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도심다원의 제다를 도맡았다. 농사 경력은 그보다 앞선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차밭을 놀이터 삼았다. 숨바꼭질 대신 찻잎을 따며 놀았다.

젊은 혈기에 한번쯤 도시생활을 꿈꿔봤을 법도 한데 그는 단연코 다른 진로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가업을 잇는 것이 당연한 꿈이었다. 그가 나고 자란 화개면엔 논보다 차밭이 훨씬 많았고 이웃도 모두 차를 생산하는 이들이었다.

“주변에서 보고 듣는 것이 모두 차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커서 차인(茶人)이 된다는 것에 의심 한톨도 없었어요. 무엇보다 일이 재밌었습니다. 차는 농산물이잖아요. 그런데 기르기만 한다고 끝이 아니거든요. 잘 키워 수확해, 말리고 덖어야 합니다. 방법에 따라 녹차가 되기도, 홍차나 흑차가 되기도 하고요. 또 예법에 따라 마시는 것도 중요합니다. 모든 과정을 배우고 익히는 게 힘든 줄 몰랐습니다.”

오씨는 우직하게 한길만 걸었지만 늘 꽃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느 후계농이 그렇듯 아버지와의 갈등을 피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신기술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늘 새로운 방식을 연구하고 직접 시도해보기도 하세요. 그러곤 제게도 해보라고 권하시는데 저는 전통을 고수하려고 합니다. 둘다 고집이 만만치 않았어요. 이제는 저를 인정해주시지만 어릴 땐 말도 못하게 싸우기도 했습니다.”

갈등은 오씨가 1년 전 차 체험 공간을 열면서 끝을 맺었다. 각자 맡은 일이 나뉘면서 오히려 서로를 이해하게 됐다. 도심다원은 ‘하동의 아름다운 다원’으로 뽑힐 만큼 풍광이 아름답다. 그걸 그저 두고 보기 아깝다고 여겼던 그가 다원 앞에 차실을 지은 것. 농사는 아버지에게 맡기고 자신은 이곳을 운영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차실은 철제 폴딩도어를 설치해 도시 카페처럼 꾸몄다. 메뉴도 다양하다. 엽차뿐 아니라 티백으로 우린 홍차와 냉녹차를 판다. 말차를 넣은 피낭시에(직사각형으로 구운 구움과자) 같은 서양식 디저트도 있다.

“아무리 품질이 좋은 차라도 팔리지 않으면 소용없잖아요. 이곳에 와서 차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차를 마시고 싶다는 마음을 품는다면, 그걸로 성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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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씨가 손님에게 내줄 녹차를 우리고 있다.

오씨는 손님에게 피크닉용으로 애용되는 라탄 바구니에 차와 다기를 담아 내준다. 그럼 손님은 그걸 들고 차밭에 있는 정자에 올라 여유를 즐긴다. 라탄 바구니는 그가 오래전 일본을 여행할 때 본 것을 기억해낸 것인데 호응이 뜨겁다. 덕분에 도심다원은 금세 하동의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오씨는 발품 팔아 얻은 아이디어를 주변 농가와 적극적으로 나눈다. 다른 차실이 문을 열도록 독려하는 데도 열심이다. ‘하동차’가 널리 사랑받으려면 화개면 차농가가 더불어 잘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멋스러운 카페가 즐비한 골목이 ‘카페거리’라 불리며 명소가 되듯 화개면도 사람이 끊이지 않는 관광지가 되길 바란다.

“차는 농산물이자 문화예요. 차를 생산하는 농민이 제다·다례까지 한다면 더욱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겁니다.”

아쉬운 건 청년농부가 준다는 것이다. 25년차인 오씨는 여전히 화개면 차농가 가운데 막내 축에 속한다. 인건비를 비롯해 생산비는 매년 치솟는데 원물값은 그대로니 젊은이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다.

“밭에 새순이 잔뜩 있지만 일손이 달려 따질 못해요. 하동의 천년차가 이어지려면 열정 있는 젊은 농민이 많아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무려 8대를 이어 차밭을 지키는 오씨. 그에게 차농사는 단순한 가업이 아니다. 자신이 나고 자란 지역의 역사고 문화다. 그렇기에 오늘도 그는 흔들림 없이 차를 만든다.

하동=지유리 기자 yuriji@nongmin.com, 사진=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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