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농 열전 백년농부] “아버지를 따라 하기보다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찾았죠”

입력 : 2022-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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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근씨(오른쪽)가 아버지 양관직씨의 토마토 하우스에 들러 영농기술 향상 방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증평=현진 기자 sajinga@nongmin.com

[가족농 열전 백년농부] ⑤ 딸기·토마토 농가 양창근씨 

도시서 직장생활하다 고향 돌아와 SNS에 일상 공유하고 농산물 홍보

온라인 판매로 수익 내며 재미 느껴 토마토농장 돕다 독립해 딸기농사

가족이라고 무조건 단합하기보단 세대간 차이 인정하는 편이 나아

부자끼리 선의 경쟁하며 함께 성장 농촌이 더 많은 기회 제공 깨달아

 

전화위복(轉禍爲福). 걱정ㆍ근심이 복으로 바뀐다는 뜻이다. 충북 증평에서 토마토ㆍ딸기를 재배하는 양창근씨(40)는 15년 전 고향에 돌아와 농사꾼이 된 것이 이와 같다고 말했다.

양씨는 대대로 밭농사를 짓던 집안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부터 곧잘 아버지를 도왔지만 결코 농부가 되진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 바람대로 학교를 졸업하고 도시에서 건축회사에 다니며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꿈은 이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월급봉투는 얇았고 도시 물가는 높았단다. 호기롭게 시작한 장사도 얼마 못 가 망했다. 빚만 남은 스물다섯살, 아버지 양관직씨(66) 권유에 이끌려 돌아왔다.

등 떠밀려 아버지 토마토농사를 돕기 시작한 양씨. 당연히 마음잡기가 쉽지 않았다. 농사에 대한 지식도, 열정도 없었다. 구속받기 싫어하는 자유분방한 성격 탓에 아버지와 사사건건 부딪혔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경험이 쌓이니까 제 눈에 아버지 방식이 비효율적으로 보이더라고요. 예를 들어, 멀칭을 덜 팽팽하게 해도 지장이 없는데 아버지는 그걸 못 참고 작업하시느라 30%는 더 공력을 쏟으시는 거예요. 풀 뽑는 것도 지나치게 신경 쓰시느라 힘은 힘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들고요. 그걸 지적하면 아버지는 펄쩍 뛰시죠. 알지도 못하면서 말한다고요. 갈수록 눈치 보지 않고 제 식대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세대 갈등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건 외로움이었다. 농촌은 오래전부터 고령화가 심각했다. 양씨네 동네도 마찬가지라 주변엔 50∼70대 어르신들뿐이었다. 사람 좋아하고 모임 좋아하던 호방한 양씨에겐 시골생활이 참 무료했다.

농촌에 살면서 또래와 소통할 수 있는 창구는 ‘인터넷’이었다. 외로움을 달래려고 온라인 활동에 매달렸다. ‘블로그ㆍ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농부 일상을 공유했다. 이에 인지도가 쌓이게 되고 차츰 농산물 판매도 수월해졌다.

“아버지는 크기가 작거나 흠집 난 못난이 토마토를 버리셨어요. 그걸 받아다 온라인 직거래로 판매했습니다. 첫해 500여만원을 벌었어요. 3년차 되는 해엔 3000만원을 웃돌 정도로 소득을 올렸습니다. 돈을 벌기 시작하니까 농사가 재밌더라고요. 그제서야 신이 나서 열정과 정력을 더 쏟아붓기 시작했습니다.”

지방자치단체가 제공하는 교육ㆍ공모전에 빠지지 않는 것도 도움됐다. 농장 밖을 벗어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기회가 있다면 어디든 찾아갔다. 그런 노력은 경력이 됐고 자신만의 강점으로 자리 잡았다.

“부모님의 영농기술을 뛰어넘기 어려워요. 똑같이 되기보다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으려고 힘썼습니다. 또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한 덕에 홍보 방법과 그것의 중요성도 알고 있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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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근씨가 하우스에서 친환경으로 키운 딸기를 수확하고 있다.

양씨의 친환경 딸기하우스는 3966㎡(1200평) 규모를 자랑한다.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보려고 직접 재배해보는 방법을 선택했다.

“똑같이 토마토를 재배했다면 지금도 아버지 잔소리를 듣고 있을 겁니다. 갈등을 피하기 위한 일이지만 결국엔 윈윈한 셈이죠.”

딸기를 택한 건 오롯이 양씨의 판단이었다. 증평에서 흔치 않은 터라 경쟁력이 있을 거라고 봤다. 또 소통에 목말랐기에 소비자와 대면하는 농장체험교육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싶었다. 그 구상에 적합한 것이 바로 딸기였던 것이다.

양씨는 비슷한 고민을 지닌 후계농에게 “가족이라고 무조건 단합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한다. 세대 갈등은 결코 피할 수 없고 억지로 봉합하려고 하기보다는 다름을 인정하는 편이 낫단 것이다.

“제게 아버지는 이기고 싶은 경쟁자입니다. 증평군에서 처음으로 유기농사를 하셨고 지금도 하고 있죠. 그런 아버지를 앞서가고 싶습니다. 아버지 역시 저를 보고 자극을 받는다고 하세요. 슬쩍 방법을 물어보시기도 하고요. 부모와 자식이 선의의 경쟁자가 된 셈인데 시너지 효과도 있답니다.”

곡절 깊은 20∼30대를 보낸 양씨. 방황이 길었지만 되돌아보면 증평에 오길 잘했다 싶다. 농촌에 훨씬 많은 기회가 있다는 걸 이젠 안다. 농사야말로 오롯이 제힘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미래 사업이라고 믿는다.

“앞으로는 영농기술을 향상하고 싶습니다. 농부라면 제대로 된 농산물을 생산해야죠. 지금까지 품질 좋은 토마토를 내놓는 아버지를 보고 배우는 게 많습니다. 좋은 경쟁자가 바로 곁에 있으니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겁니다.”

증평=지유리 기자 yuriji@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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