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농 열전 백년농부] “온라인서 소비자 만나며 ‘경산묘목’ 널리 알릴 것”

입력 : 2022-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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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에서 3대째 묘목농사를 짓고 있는 이광열씨(맨 왼쪽)가 할아버지 이태호옹(왼쪽 두번째부터), 아버지 이일권씨와 함께 2년생 체리나무를 살펴보며 가족애를 다지고 있다. 경산=현진 기자 sajinga@nongmin.com

[가족농 열전 백년농부] ④ 묘목농가 이광열씨

기자로 활동하다 1년 전 농사일 시작 밤낮으로 기술 익히고 인터넷 교육

70년간 접붙이기·묘목 재배 일궈와 농사 있어선 무조건 선대 의견 따라

과수묘목 소비자 판매용 상품 만들어 SNS통해 홍보…큰 수익 거두기도

지역 묘목농사 역사 함께하며 성장…경험·기술에 마케팅 더해 판로 확대

 

‘접붙이기’는 서로 다른 두 식물의 줄기 부분을 잘라내고 절단면을 이어 하나로 만드는 기술이다. 뿌리가 달려 영양분을 공급하는 바탕 나무가 대목(臺木), 대목에 연결하는 나뭇가지를 접수(椄穗)라고 한다. 접붙이기가 성공하려면 대목이 튼튼해야 하고 접수 역시 건강해야 한다. 둘 가운데 하나만 약해도 온전한 나무로 자라지 못한다. 두 가지가 잘 어우러져야 하는 것이 바로 접붙이기인 셈이다. 경북 경산시 하양읍에서 3대째 묘목농사를 짓는 이광열씨(35)네 상일농원은 마치 접붙이기처럼 세대간 어울림을 보여주는 농가다. 선대의 접목 기술과 이씨의 젊은 감각이 더해져 시너지 효과를 톡톡히 거두고 있다.

상일농원의 역사는 무려 70년에 달한다. 그 시작은 열일곱살에 처음 접칼을 쥔 이씨의 할아버지 이태호옹(88). 이어 아버지 이일권씨(60)가 고등학교를 마치자마자 가업을 이었다. 할아버지·아버지와 달리 이씨는 돌고 돌아 농사꾼이 됐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농사를 지을 줄 몰랐지만, 운명처럼 고향땅을 일구게 됐다.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지역신문 기자가 됐어요. 취재하러 농촌·농업 현장을 다니다보니 자연스레 농사에 관심이 생기더군요. 직장생활을 하며 주말마다 아버지를 돕다가 1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묘목농사에 뛰어들었습니다.”

이씨는 농사를 늦게 시작한 만큼 조바심을 느낀다. 그래서 지난 1년을 누구보다 바쁘게 보냈다. 낮에는 할아버지·아버지 곁에서 접목 기술을 익혔고 저녁에는 인터넷으로 교육을 듣고 논문을 찾아 읽었다. 틈틈이 블로그와 유튜브 채널도 운영했다. 언젠가 농산물을 생산해 가공사업에 도전하고 싶어 직접 대추나무 1000주를 길러 대추즙을 생산하기도 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달린 터라 팔다리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을 정도다.

이렇듯 이씨가 몸 바쳐 일하는 이유가 있다. 가업을 잇는 것을 넘어 ‘내 사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서다. 처음 농사에 관심이 생겼을 때부터 농산물을 가공하고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일을 꿈꿨다. 접목 기술을 배우면서 동시에 블로그를 개설해 농장 홍보에 나선 이유다. 그동안 묘목 판매는 과수농가에 도매로 파는 것이 주를 이뤘다. 이씨는 반려식물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것을 보고 과수묘목도 소비자 직거래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아버지 반대에도 고집대로 밀어붙였고 묘목을 포트에 심어 소비자 판매용 상품을 개발했다. 이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홍보·판매해 수익을 꽤 거뒀다. 자신만의 시각으로 선대의 활동 무대를 뛰어넘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것이다. 그저 집안일을 돕는다고 생각했다면 하지 못했을 일이다.

“아버지가 제 사업 파트너라고 생각해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제가 가진 강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예컨대 홍보·판매는 제가 할아버지·아버지보다는 앞선 편이죠. 즉 동등한 입장에서 함께 일하는 관계입니다. 가족이 함께 일하려면 각자 잘하는 부분을 맡아 책임지고 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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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나무 대목에 접수를 붙이고 접목테이프를 감고 있는 모습(위). ‘들접’을 마친 복숭아묘목(아래). 밭에 심긴 묘목에 바로 접붙이는 것을 ‘들접’이라고 한다.

접붙이기와 묘목 재배에 있어서만큼은 할아버지·아버지를 전적으로 따른다. 자신이 아무리 최신 영농 기술을 배워 열심히 연습한다고 해도 70·40년 경험을 지닌 베테랑을 뛰어넘을 수 없다. 이씨는 “가끔 할아버지가 제게 ‘접칼을 이렇게 쥐어라’ ‘대목 위쪽을 베어라’ 일러주세요. 그러면 군소리 없이 바로 고칩니다. 접붙이기 기술만큼은 어른들 말씀이 무조건 옳습니다.”

이씨가 선대의 뒤를 따르는 건 또 있다. 바로 남다른 지역사랑이다. 환상리 이장인 아버지는 소싯적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4-H연합회’ 등에 참여해 경산 묘목농가 발전에 힘썼다. 지금도 경산묘목조합 전무를 맡고 있다. 그는 “경산 묘목농가가 다 함께 잘돼야 우리 농장도 경쟁력이 높아진다”고 믿는다. 그 뜻은 아들 이씨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개인 역량을 쌓느라 외부활동에 미처 참여하지 못했지만 앞으로는 외부활동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경산 묘목농사 역사가 100년이에요. 상일농원은 70년이고요. 지역과 함께 성장해온 것입니다. 앞으로 온라인에서 소비자와 만나고 판로를 넓혀 경산묘목을 알리는 것이 목표예요. 할아버지·아버지의 기술에 저의 마케팅 능력이 더해진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경산=지유리 기자 yuriji@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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