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박이 어르신보다 ‘귀농 꼰대’가 더 무섭다

입력 : 2020-06-17 00:00 수정 : 2020-06-30 20:39

 

농촌마을, 갈등관리가 필요하다 (2)귀농인과 귀농인의 갈등리그

귀농 증가·원주민 고령화로 농촌 갈등 구도에 변화 생겨

선후배 귀농인 충돌 적잖아

주로 경제적 이해관계 얽혀 민형사 소송까지 번지기도
 



“아니 우리 마을에 왔으면 신고를 해야 할 거 아냐. 나는 여기 누가 들어와 살고 있는지도 몰랐네?”

호젓한 시골로 갓 귀농한 A씨는 대뜸 집으로 찾아온 B씨의 방문에 어안이 벙벙했다. 아직 주민들 모두에게 미처 인사를 하진 못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직접 큰소리로 지청구를 들을진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더 뜻밖이었던 건 B씨가 누군지 알고 나서였다. 그런 말을 하니 으레 원주민이겠거니 생각했지만, B씨는 A씨와 마찬가지로 수년 먼저 이주한 귀농인이었다.

귀농하는 사람들은 보통 원주민과의 관계를 걱정한다. 그러나 요즘 귀농인이 염두에 둬야 할 사람들이 또 있으니, 이는 바로 본인과 비슷한 처지의 또 다른 귀농인들이다. 많은 경우 귀농인들은 서로 동질감을 느끼며 의지하고 끌어주는 대상이 된다. 다만 그렇게 항상 좋은 만남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람 사는 곳엔 예외없이 갈등이 있으니 말이다.

최근 충남 부여의 한 마을에서 있었던 묏자리 문제도 다름 아닌 귀농인과 귀농인 사이에서 빚은 갈등이었다. 귀농한 지 1년 된 C씨가 마을에 묏자리 쓰는 걸 두고, 귀농 5년차인 D씨가 이를 군청에 고발하면서 시비가 붙었다. 법률상 신고·허가 절차 없이 묘를 쓴 건 C씨의 잘못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기존 마을 사람들은 별도의 허가를 받지 않고도 묘를 써왔던 것을, 원주민도 아닌 선배 귀농인이 나서서 무작정 법률적 문제로 일을 키운 것이다.

해당 마을 이장인 이모씨는 “D씨가 사는 곳이 C씨가 쓰는 묏자리와 가까운 것도 아니었다”면서 “그저 왜 우리 동네에서 나한테 얘기하지도 않고 일을 진행하느냐고 태클을 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먼저 왔다고 토박이 행세를 하며 텃세를 부리는 귀농인들이 더러 있다”며 “오히려 원주민들은 나이도 있고 그러는 사람들이 잘 없다”고 전했다.

이처럼 귀농인끼리 겪는 갈등 사례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귀농·귀촌이 활성화하면서 일부 마을의 귀농 인구가 원주민 못지않게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귀농 인구가 원주민을 넘어선 곳이 속속 생기고 있다. 귀농인이 이장 자리를 맡은 마을도 이젠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최윤지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연구관은 “원주민들은 이제 워낙 고령이다보니 공동체에서 직접 활동하기보단 바깥으로 밀리는 구조가 돼가고 있다”며 “그러면서 원주민 대신 마을의 중심축으로 활동하는 귀농인들이 점점 많아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늘어난 귀농인간 갈등은 주로 경제적 문제를 둘러싸고 발생한다. 보통 문화적 차이 탓에 생기는 원주민과의 갈등과는 그 원인이 사뭇 다르다. 가령 귀농인들은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는 특수작목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같은 작목을 선택한 귀농인과 서로 경쟁관계에 놓여 이해관계가 충돌하게 된다. 먼저 자리 잡고 작목반을 만든 귀농인이 새로 들어온 귀농인을 배척하거나, 신규 귀농인이 따로 작목반을 만들어 세력 다툼을 하게 되는 등의 양상이다.

이와 같은 경제적 갈등은 멘토·멘티로 만난 귀농인 사이에서도 주의해야 하는 부분이다. 최근엔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시행하는 귀농·귀촌 멘토링 제도를 통해 관계를 맺는 선후배 귀농인들이 많은데, 좋은 사이로 시작했다가 중간에 돈이 개입되면서 관계가 악화하는 일이 나타나고 있다.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초보 귀농인에게 본인의 땅이나 묘목·기자재 등을 비싸게 파는 것 등의 경우다.

강원지역에서 활동하는 한 귀농·귀촌 전문가는 “근래 한 귀농인이 멘토에게 사기를 당했다며 민형사 소송을 진행 중인 사건이 있다”며 “귀농 멘토로부터 1653㎡(500평) 부지의 땅과 집을 샀는데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으로 뒤통수를 맞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귀농 선배 중엔 헌신하고 봉사하는 멘토들도 많지만 더러 관계를 사익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있다”며 “초보 귀농인의 입장에선 선배 귀농인에게 의지하는 건 당연하겠으나 과도하게 믿고 의존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조언했다.

이현진·이상희 기자 abc@nongmin.com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