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Zoom 人] “농부의 뚝심으로 ‘한국 커피’ 매력 알려요”

입력 : 2020-03-25 00:00 수정 : 2020-06-24 09:12
자신을 ‘농작물을 키우는 농부’라고 강조하는 주범준씨가 직접 생산·가공한 원두를 소개하고 있다.

[농촌 Zoom 人] 커피사관학교 운영하는 주범준씨<전남 고흥>

아버지와 함께 커피나무 재배 연중 가온 ·가공 어려워 생산비↑

비싼 원두값에 판로 개척 난항 직접 활용할 방법 찾아 나서

로스팅 등 체험 프로그램 운영 바리스타 교육 통해 품질 홍보

연간 원두 약 800㎏ 자체 소진
 



한국에서 커피나무를 보는 일은 더는 희귀한 경험이 아니다. 강원도부터 전라도까지 전국 곳곳에 커피농장이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생산한 커피 원두로 내린 커피를 맛본 사람은 여전히 희귀하다. 커피 원두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만큼 생산량이 충분한 곳이 거의 없는 데다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기 때문에 수입 원두에 비해 원가가 비싸서 그렇다. 하지만 ‘희귀하다’는 것은 곧 없다는 뜻이 아니다. 국내산 원두로 내린 커피를 맛볼 곳이 있기 때문이다. 전남 고흥에서 주범준씨(36)가 운영하는 고흥커피사관학교가 그곳이다.



“100% 아라비카 원두만 사용하기 때문에 쓴맛은 거의 없습니다. 구수한 맛과 신맛의 조화가 좋고 특히 단맛이 두드러집니다. 무엇보다 신선한 향이 좋죠.”

능숙하게 에스프레소 머신을 조작해서 커피를 내리고 그 맛을 설명하는 주씨는 농부다. 아버지와 함께 커피나무를 재배하고 꽃을 피운 뒤 열매를 수확하는 농부다. 동시에 그는 바리스타다. 원두를 볶고 내려서 최고의 커피 한잔을 완성하는 바리스타다. 농부인 그가 굳이 바리스타가 된 이유는, 뜻밖에도 그가 농부이기 때문이다.

“농작물을 키우는 사람이 농부잖아요. 농부는 그저 보기 좋으라고 농작물을 키우지 않아요. 수확한 농작물을 판매해서 자신의 삶을 이어가는 사람이 농부죠. 제 아버지의 신념이고 저도 동의하는 부분이에요. 제가 바리스타가 된 이유이기도 하고요.”

우리나라에서 커피나무를 키우려면 비닐하우스 시설이 필요하다. 연중 가온도 해야 한다. 수확한 커피체리가 원두가 되려면 과육을 제거하고 세척하고 건조하는 후작업도 거쳐야 한다. 생산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 커피농장은 많은데 원두를 생산해서 커피 한잔을 완성하는 곳이 거의 없는 이유다.

하지만 농부인 주씨는 자신이 키운 나무에서 수확한 열매를 그냥 버릴 수는 없었다. 누군가에게 팔 수 없다면 직접 그 열매의 쓰임새를 만들기라도 해야 했다.

“가격이 비싸니 국내산 원두를 사용하겠다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하기로 한 거죠. 물론 도전해볼 만한 일이라는 판단도 있었고요.”

생산비가 많이 들긴 하지만 직접 생산하니 원두 공급은 안정적이었다. 커피맛에 큰 영향을 미치는 로스팅, 즉 볶는 과정도 전문가인 자신이 직접 하면 됐다. 문제는 한국산 커피가 무슨 맛이 있겠느냐는, 사람들의 편견이었다. 원두커피 소비가 상대적으로 적은 농촌지역에서 판매를 시작한 것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커피체리를 씻고 말리고 볶아서 나만의 커피 원두를 만드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바리스타 교육도 했다. 조금 비싸지만 신선한 향과 단맛이 좋은 국내산 커피는 마셔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커피의 특성이 다를 뿐 어떤 수입 원두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한 품질을 갖췄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커피의 쓴맛에 익숙한 사람들이 쓴맛보다는 구수한 맛과 단맛이 강한 커피에 종종 고개를 갸웃거리기는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의 커피를 좋아한다. 지금은 일년에 700~800㎏에 달하는 커피 원두를 자체적으로 다 소진할 정도다.

주씨가 시도하는 ‘한국 커피’는 어쩌면 효율성이라는 단단한 벽에 막혀 결국 길을 잃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은 끝까지 편견을 버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노력이 ‘한국 커피’에 있어 작지만 큰 한걸음임은 분명하다.

고흥=이상희 기자 montes@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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