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樂,거듭나다] 경북 청송 북카페 ‘나눔’

입력 : 2018-05-16 00:00 수정 : 2018-05-16 09:46
북카페 ‘나눔’을 운영하는 오치규씨와 틈날 때마다 와서 공부하는 아이들.

촌樂,거듭나다 (14) 경북 청송 북카페 ‘나눔’

폐건물 단장해 공부방 여니…삼삼오오 모여 ‘열공’

 

사교육 열풍이니 조기 유학이니 하는 말은 서울과 같은 도시에서나 통한다. 시골 사람들에게는 딴 나라 이야기처럼 들린다. 경북 청송군 부남면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이곳에는 학원은커녕 초·중학교도 없어 아이들이 수업을 들으려면 청송읍까지 나가야 한다. 그런데 이 ‘교육 불모지’에 초저녁마다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공부하는 낯선 공간이 들어섰다. 30년간 서울에서 영어강사로 일하다 2017년 귀향한 오치규씨(50)가 만든 북카페 ‘나눔’이 바로 그곳이다.

북카페 ‘나눔’ 외관.


“저는 청송의 교육자 집안에서 나고 자랐어요. 아버지는 이곳에 고등학교를 지을 정도로 교육열이 대단했죠. 피는 못 속이나 봐요. 저도 고향의 교육환경을 제 손으로 바꾸고 싶다는 꿈을 오래 꿨어요. 교육을 통해 이 작은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죠.”

오씨는 ‘젊어서 뭐라도 할 수 있을 때 뜻을 펼치자’고 결심하고 귀향했다. ‘좀 없이 살아도 좋은 일 해서 큰소리치며 살자’는 그의 뜻을 가족도 헤아려줬다.

그는 오랫동안 용도를 못 찾고 방치돼 있던 옛 마을회관 건물을 임대해 아이들이 방과 후 영어공부를 할 수 있도록 꾸몄다. 165㎡(50평) 남짓한 넓은 공간에는 반질반질한 책상이 들어섰다. 창가 책장엔 오씨가 서울에서 가지고 온 책과 그가 영어강사로 일하며 직접 만든 교재로 가득 찼다. 한편에는 아이들이 공부할 때 먹고 마실 것을 제공하는 카페가 차려졌다.

처음엔 새로 생긴 낯선 곳을 기웃거리기만 하던 아이들이 ‘잠깐 들어와 놀다 가라’는 오씨의 적극적인 ‘애정 공세’와 먹고 마실 것에 혹해 ‘나눔’으로 들어섰다. 그러다 입소문이 나면서 아이들 손을 이끌고 ‘나눔’을 찾는 학부모가 생겼다. 제 발로 들어오는 아이들도 많아졌다. 지금 ‘나눔’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어림잡아 40~50명.

아이들은 오씨가 짠 교과과정에 따라 스스로 공부하고 주기적으로 시험을 치른다. 초등학교 6학년 진모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다른 내용으로 영어공부를 할 수 있어 좋다”며 매일 ‘나눔’에 오는 이유를 설명했다.

아이들이 한데 모여 공부하는 모습은 주민들에게도 신기한 광경이었다. 김환규 이장(54·부남면 대전1리)은 “부모가 농사짓느라 바빠 아이들이 하교 후 혼자 있을 때가 많았는데, 놀고 공부할 데가 생기니 다들 좋아한다”고 말했다.

아직 ‘나눔’이 튼튼하게 뿌리내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카페에서 주민들에게 마실 것을 팔긴 하나 수입은 한달에 백만원이 채 안되고, 이따금 들어오는 기부금도 ‘나눔’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만큼 많지는 않다. 지금은 오씨가 서울에서 번 돈을 ‘까먹으며’ 버티는 중이다. 그러나 오씨의 얼굴에 어두운 기색은 없었다.

“망하기야 하겠어요? 아이들이 즐겁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껴요. 이게 제 꿈이었으니까요. 앞으로 몇년이 됐든 할 수 있을 때까지는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청송=양석훈 기자 shakun@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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