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귀촌, 아는게 약(23)먹거리 자급농사의 가치

입력 : 2017-12-06 00:00 수정 : 2017-12-06 17:37

가족이 먹을 양식 직접 해결…‘시골 정착의 첫걸음’

농사지어 돈 벌 생각보다 식구들 먹거리부터 길러봐야 농부의 마음 이해할 수 있어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2~3년간 수확 경험 쌓아야
 


당신이 만약 귀농을 결심하고 시골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필자는 주저 없이 ‘먹거리를 자급하는 농사를 지어보는 일’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먹거리 자급이야말로 ‘농(農)’으로 이어진 시골에서 비로소 이웃의 농부들을 이해하면서 지역에 정착할 수 있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수익성 높은 작물을 재배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우선 먹거리 자급을 해보고 나서 검토하는 것이 순서고 이치에 맞는다.

귀농해 노지에서 농사를 지으면 자연스럽게 철에 맞는 작물을 심게 된다. 도시에서는 16.5㎡(5평), 33㎡(10평) 텃밭이 고작이지만 시골에서는 일단 그 규모가 달라진다. 시골에서는 집에서 먹는 채소들, 그러니까 감자나 고구마·고추는 물론이고 콩이나 깨 등을 넓게 심을 수 있다.

농사뿐만 아니라 들기름이나 참기름 짜는 일에도 도전해보길 권한다. 아마 직접 짠 참기름이나 들기름이 빈 소주병에 담기는 장면을 본다면 큰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콩농사가 성공했다면 메주를 띄워 간장·된장을 담글 수도 있다. 자신이 먹을 농산물 외에 지인 혹은 친척들에게 ‘귀농해 잘살고 있다’는 의미에서 나눠줄 농산물도 나올 것이다. 자신이 생산한 농산물을 알리거나 판매하는 아주 소중한 경험도 갖게 된다.

얼마 전 신문기사에서 ‘2016년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61.9㎏’이라는 통계를 봤다. 1970년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으로 쌀 소비량이 감소한 셈이다. 이렇게 쌀을 적게 먹는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우리 정서에는 쌀이 생명을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식량으로 각인돼 있다.

이는 귀농해서도 마찬가지다. 비록 돈 되는 농사는 아닐지라도 1년 동안 식구들이 먹을 양식을 직접 기른다는 정서적 의미는 크다. 가을 추수 후 눈앞에 쌓인 쌀가마니를 보면 정말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는 뿌듯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초보 농부가 유기농으로 쌀농사를 짓는다고 가정할 때 수확량은 661㎡(200평)에 2~3가마니 정도다. 쌀 소비가 줄어든 현대사회에서는 한마지기로도 4인 가족이 1년 동안 먹을 쌀이 나오는 것이다.

밭농사와 달리 벼농사는 물과 함께하는 농사다. 물이 주는 여러 이점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연작피해를 막아준다는 점이다. 그래서 벼농사는 한자리에서도 계속 지을 수 있다. 밭작물보다 상대적으로 일손도 적게 든다. 경지정리가 잘된 논이라면 그야말로 거저먹기인 셈이다.

그래도 농사는 농사다. 애정을 가지고 날씨에 따라 벼의 형태를 관찰하고 논둑을 살피는 일도 게을리해선 안된다. 이른 새벽 쏟아지는 빗줄기에 삽 한자루 메고 달려가 넘실넘실 빗물이 차 있는 논두렁에 물길 한삽 내주는 부지런함도 필수다.

모내기가 끝난 논과 수확 후 빈 논을 보는 감정 또한 매우 다르다. 이러한 경험들이 쌓여야 진정한 농부로 성장할 수 있다. 이를테면 벼를 수확한 후 쌓인 쌀가마니를 보고 배가 부르다는 것은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농부의 본능이지 않을까.

이처럼 2~3년 동안 자급을 목표로 농사를 짓다보면 시골에서 ‘농’이 가지는 의미를 알아가고 거기에 얽힌 수많은 관계들과 함께하게 된다. 그럼 자연스럽게 ‘정착’의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누군가가 소개해주는 땅도 생기고 소득작물들도 눈에 들어온다.

성급하게 판단해서 준비하지 말고 시골로 가서 우선 자급농사부터 지어보자. 그러면 저절로 문제들이 하나씩 풀려나갈 것이다.

박호진<전 전국귀농운동본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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