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樂,거듭나다]양심이 지키는 무인주막…나그네들의 ‘따뜻한 쉼터’로

입력 : 2017-09-13 00:00
서당마을의 무인주막은 지리산 둘레길을 찾는 이라면 꼭 한번쯤 들러봐야 할 명소로 거듭났다.

촌樂,거듭나다(6)지리산 둘레길 주막갤러리

20년간 버려진 옛 마을회관 수리 지난해 11월 오픈…명소 입소문

술·음료수·간단한 요깃거리 갖춰 필요한 만큼 먹고 양심껏 계산

이용객들, 정겨운 분위기에 ‘웃음꽃’ 주민들 “마을에 활기 생겨 감사”
 


백두대간의 줄기는 지리산에 이르러 여러갈래로 흩어진다. 그 가운데 하나가 경남 하동군 적량면에 솟은 구재봉까지 이어지는데, 봉우리와 섬진강변 너른 들판이 만나는 기슭에 서당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한때 하동읍·악양면·산청군을 잇는 삼거리로 북적였으나, 지금은 주민 57명이 수령 400년을 넘긴 이팝나무 둘레에서 고즈넉하게 살아가는 마을이다.

이 서당마을이 올들어 지리산 둘레길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깃거리다. 2016년 11월 문을 연 무인주막 ‘지리산 둘레길 주막갤러리’ 덕택이다. 20년 넘게 버려져 있던 옛 마을회관 건물을 고쳐서 꾸린 이곳은 지리산 둘레길에서 한번쯤 꼭 들러봐야 하는 명소로 거듭났다. 서당마을의 박경태 이장(70)은 “변변한 가게가 없어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을주민이 팔을 걷어붙였다”고 말했다.

무인주막은 막걸리를 비롯해 맥주·소주부터 갖가지 음료수와 생수·커피까지 두루 갖췄다. 간단한 조리도구와 싱크대에 가스레인지도 알뜰살뜰 챙겨 라면 같은 요깃거리는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는데, 마을 부녀회가 담근 맛깔스런 김치는 덤이란다. 주류는 한병에 2000원이고, 다른 먹을거리와 마실거리는 1000원·500원 정도다. 누구나 필요한 만큼 먹고 나서 계산함에 양심껏 값을 치르면 된다. 자리를 지키는 이가 없어도 계산함이나 잔돈이 손을 탄 적은 한번도 없단다.

 


무인주막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한쪽 벽면을 채운 마을주민들 사진이다. 박 이장은 “마을 소개와 더불어 어떤 이들이 이곳을 꾸려나가는지 전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농사일로 바쁜 와중에도 마을주민들이 틈날 때마다 이곳을 쓸고 닦지만, 먹을거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챙기는 건 점장을 맡은 남상인씨(64) 몫이다. 그는 직접 나무를 다듬고 엮어 무인주막의 멋스런 탁자와 의자를 만들기도 했다.

“이윤만 생각하면 무인주막을 운영할 수 없죠. 아직 마을주민들끼리 밥 한번 나눠먹을 돈도 안 모일 정도거든요. 그저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잔 건넨다는 생각으로 꾸려가고 있습니다.”

박 이장의 이야기에 새마을지도자 김영길씨(61)가 “무인주막이 마을 사랑방 역할을 도맡는 데다 찾아오는 사람마다 즐거워하니 오히려 우리가 고마운 일”이라고 맞장구를 쳤다. 고마운 건 이용객들도 한마음이다. 무인주막의 방명록은 ‘농촌의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해줘 고맙다’는 이야기로 빼곡하다. 친구와 함께 지리산 둘레길을 찾았다는 윤덕영씨(43·서울 강남구 수서동)도 “무인주막이 인터넷을 통해 꽤 알려졌다”며 “팍팍한 도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정겨운 공간”이라고 말했다.

 

무인주막은 나그네들 쉼터는 물론이고 마을 사랑방 역할까지 도맡고 있다.


서당마을은 지리산 둘레길을 찾는 사람이 드문 한겨울에도 무인주막의 문을 열어놓을 계획이다. 박 이장은 “요즘 밤 수확철을 맞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겨울에 마을주민들과 함께 이곳을 꾸려나갈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고 귀띔했다.

“무인주막으로 마을에 활기가 생겨 감사하게 여깁니다. 찾는 분들이 지금처럼 양심적으로만 이용해주신다면 언제고 편안하게 머물다 갈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겁니다. 농촌마을의 살가운 정서가 그리운 분이라면 누구든지 들러주세요.”

하동=박현진 기자 jin@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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