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설 자리 좁아지는 구멍가게…농촌 곳곳엔 아직 있다, 왜?

입력 : 2021-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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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께 나도 모르겄어. 저리 가믄 싸고 그렁게 간단헌디. 미스테리여.”

구멍가게는 없어져도 그만, 있어도 그만인 구시대의 추억거리에 불과한 것일까. 전남 보성 미력슈퍼의 주인은 더 싸고 좋은 물건을 파는 마트를 찾지 않고 굳이 낡은 구멍가게를 찾는 단골들에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하루가 다르게 세상이 편리하게 변하면서 구멍가게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지만, 농촌 곳곳에는 아직도 구멍가게들이 남아 있다.

<구멍가게 이야기>에선 현지답사를 통해 구멍가게에 얽힌 추억과 힐링, 그리고 요즘 보기 어려운 넉넉한 인심을 전한다. 대학원에서 고전소설을 전공한 저자 박혜진과 국민대 교수(한국어문학부)로 재직 중인 저자 심우장은 연구 중 삶 속 이야깃거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장소를 찾다가 구멍가게를 떠올렸다. 이들은 2011년 11월부터 2014년 6월까지 전남 22개 시·군에 있는 구멍가게 100여곳을 방문했고, 이중 50여곳에서 깊이 있는 인터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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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는 오래된 구멍가게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곳곳에 있다. 사진은 전남 보성 미력슈퍼에서 농부들이 잠시 숨을 돌리려고 술자리를 벌이며 농사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

미력슈퍼에선 흙투성이인 농민들이 술자리를 열고 허심탄회하게 감자농사 이야기를 한다. 장성 삼태상회의 외상장부엔 동네 사람들이 몇십년간 빌려간 돈, 갚은 돈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여수시 율촌면 담뱃집은 걸쇠가 달린 오래된 유리진열장에 담배를 쌓아두고 판다. 담양 용구상회는 마시다 남은 양주를 술집에 맡겨두는 것처럼 ‘소주 키핑’을 받아준다. 저자가 마주한 구멍가게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마을의 운송대행사, 돈을 빌려주는 은행, 버스를 기다리는 정류장, 아이들의 놀이터, 안주가 무한 리필 되는 술집 등 마을공동체의 구심점이었다.

이런 구멍가게도 점차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대형마트에 밀리거나 주인이 연로해서다. 책 뒷부분엔 2020년 기준 운영 중이거나 폐업한 구멍가게가 정리돼 있다. 구멍가게 주인들은 저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에 직면한다. 한편으론 그런 절박함이 새로운 삶을 일으키는 치유제가 된다. 책은 이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치열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독자들에게 한 자락 의미 있는 위로를 건넨다.

구멍가게 이야기 / 박혜진·심우장 / 책과함께 / 487쪽 / 2만8000원

박준하 기자 june@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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