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에 밑줄 긋기] 시대 변해도 소는 달라지지 않았다…농부의 삶도

입력 : 2020-05-15 00:00

소설가 준비하다 귀향해 농장 일

소소한 나날 속 깨달은 농사 본질 인간과 소의 역사 흥미롭게 풀어
 


소만(20일)이 다가온다. 예전 같으면 써레질이 한창일 때다. 일소는 거의 사라지고 고기소만 남은 우리 농촌에 인간과 소 사이에 어떤 서정이 남아 있을까. 아일랜드 작가 존 코널의 책을 읽으며 문득 궁금했다.

아일랜드는 유럽의 축산물 공급기지다. 인구는 서울의 절반도 안되지만 소는 우리의 두배가 넘는다. 쇠고기를 만들기 위해 사람보다 많은 소를 방목하고 있다. 아일랜드 롱퍼드주에 있는 버치뷰 농장의 아들 존은 아침에 일어나 꼬박 두시간 동안 여물을 먹이고 한시간가량은 소똥을 치운다. 새 깔짚을 깔아 우사 청소까지 마쳐야 겨우 오전 일과가 끝난다. 해거름이면 다시 소를 먹여야 한다. 아침저녁 끼니 사이에는 계절마다 다른 일이 즐비하다. 농장에는 소뿐 아니라 양과 닭·말도 있다. 가축이 아프거나 새끼를 낳는 날엔 밤낮없이 불침번까지 서야 한다.

작가는 소 치는 농부의 아들이었지만 소설가가 되기 위해 오랫동안 외국에 머물다 고향에 돌아와 농장 일을 시작했다. 혼자 힘으로 어미소에게서 송아지를 받아낸 날, 자신이 훌쩍 나이를 먹었다고 느낀다. 아버지가 25년간 해왔고 형이 하던 일을 스물아홉 청년이 해낸 것이다. 그는 어떤 시험을 통과했다고 느낀다.

그는 어미소의 젖꼭지를 주물러 초유를 짜내며 ‘젖이 젖에 떨어지는 아주 오래된 소리’를 듣고 자신이 속한 집안의 가업을 생각한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소는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가 하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농사가 아무리 산업화·기계화돼도 ‘가축이 아플 때 돌봐줄 심성이 농사꾼에게 없으면 가축이 죽는다’는 것도 체험한다.

그렇게 농장 일에 익숙해지면서 ‘농사란 어깨에 죽음을 짊어지고 왼쪽에 질병을, 오른쪽에 정신을, 앞쪽에 새 생명에 대한 기쁨을 데리고서 생존과 함께 걷는 일’임을 이해한다. ‘들판의 시인처럼, 땅의 가인(歌人)처럼 평생을 일해온 아버지와 삼촌들, 그가 아는 최초의 위대한 농사꾼들’의 곁에서 보고 배운 것들을. 



“농사는 고된 삶이며 농부들은 서로의 여정에 공감한다. 우리는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서로의 실패와 성공을 공유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하나의 공동체이며, 좋은 농사꾼은 이웃 없이는 힘을 쓰지 못한다. 인정하기 싫더라도 서로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도, 어떤 농부도 섬이 아니다(239쪽).”



이웃집 말이 수렁에 빠졌을 때 트랙터 한대와 사람 넷이 달려들어 목숨을 구한 날 그는 이렇게 썼다. <소를 생각한다>는 농장의 소소한 일상에 1만500년 가까이 함께한 인간과 소의 역사를 펼쳐놓았다. 지금은 멸종한 소의 조상 ‘오록스’부터 현대 공장식 축산까지 방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어떤 점에서 소를 생각하는 일은 소와 이어진 가족의 일상과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사소한 일로 수시로 부딪히다 오래 억눌렀던 분노를 쏟아내고 서로 등을 돌린다. “가축 키우다 다퉜을 뿐이잖니, 존. 아버지와 아들은 다들 다투는 법이란다.” 어머니의 말에 아들은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어떤 사람도, 어떤 농부도 섬이 아니기에 삶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다.

소를 생각한다 / 존 코널 / 쌤앤파커스 / 332쪽 / 1만4000원

김선미<‘소로우의 탐하지 않는 삶’ ‘한살림 큰 농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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