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에 밑줄 긋기] 나무를 심는 건 스스로를 위한 일

입력 : 2020-04-08 00:00


화훼농가에게는 더욱 잔인한 봄이다. 졸업식과 입학식 취소에 이어 식목일 특수마저 사라진 4월을 맞았다. 이참에 요즘 급물살을 탄 재난기본소득에 집집마다 나무 한그루씩 차별 없이 고루 나눠주면 어떨까.



“나무를 심는 건 분명 스스로를 위한 일이 아니다. 아무리 빨리 자라는 속성수라 하더라도 나무로부터 얻을 수 있는 혜택을 제대로 누리려면 나무를 심는 사람의 수명보다는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다.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는 나무를 심을 수 없는 일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과 배려심이 있어야 한그루의 나무를 심을 수 있다.” (193쪽)



고규홍의 책은 미래를 위해 ‘나무를 심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오래된 나무를 통해 익히 들어온 숱한 전설과 미처 몰랐던 숨은 역사의 편린까지 다양하게 풀어냈다. 멀리 신라의 문장가 최치원부터 가까이 김구와 심훈, 손기정, 장성 편백나무숲을 가꾼 임종국과 천리포수목원을 만든 민병갈까지. 또 내로라하는 임금과 정승, 국사들 그리고 그들이 심은 나무가 책의 주인공이다. 큰스님이 꽂은 지팡이에서 싹이 나 거목이 됐다는 식의 황당한 이야기도 많다. 이에 대해 저자는 ‘전설을 과학으로 분석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덧붙인다.

책장을 덮고 나면 책 속 나무들이 아른거린다. 벚꽃도 진달래도 다 지고 나면 나무들 곁으로 조심스레 여행을 떠나도 미안하지 않은 세상이 빨리 왔으면. 여름의 시작을 알리는 이팝나무 흰 꽃이 흐드러지게 필 즈음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가장 슬픈’ 나무 그늘을 찾아가고 싶다. <나무를 심은 사람들>에 언급된 나무 중 유일하게 이름 모르는 사람들이 심은 전북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의 이팝나무 군락. ‘조선의 아버지들’이 심은 아기 무덤가 나무들이다. 마을 사람들이 ‘아기사리’라고 부르는 곳에 300년 가까이 된 이팝나무 일곱그루가 꿋꿋하게 살아남아 천연기념물이 됐다.

“바람 부는 오월이면/마령 국민학교에 가자/거기 온 세상 뒤덮은 이팝나무 꽃송이들/바람에 절로 펄럭이니/아득한 그 향기에 지친 몸 눕히자”라고 시작하는 곽재구의 시 ‘마령국민학교’ 가 바로 그 나무 그늘 안에 있다. 학교는 올해로 개교 100년을 맞는다니 이팝나무가 기른 아이들은 그 꽃송이만큼 많을 것이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신종 전염병이 잦아진 이유를 야생동물의 서식지 파괴에서 찾는다. 지구의 녹색 허파인 숲이 파괴되고 있는 세상에 인간의 호흡기를 공격하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창궐한 것이 전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어미의 빈 젖을 빨다 죽은 자식을 묻은 자리에 나무를 심은 가난한 아비들, 이밥을 닮은 흰 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무가 위로한 것은 죽은 아이의 넋이 아니다. 나무를 심은 부모는 해마다 꽃이 피기를 기다리며 남은 자식을 위해 이를 악물고 살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여기 ‘나무를 심는 건 분명 스스로를 위한 일’이다.

나무를 심은 사람들 / 고규홍/휴머니스트/388쪽/2만3000원

김선미<‘소로우의 탐하지 않는 삶’ ‘한살림 큰 농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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