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에 밑줄 긋기] 철쭉꽃 필 때 조기가 다시 오기를 …

입력 : 2020-03-25 00:00

우리 바다 명태 등 수산물 사라져 어장 보전하고 남획·약탈 멈춰야
 


지역 축제가 줄줄이 취소됐다. 그래도 꽃은 피었다. 다행이다. 이제 마을마다 앞산 뒷산 꽃 필 때 맞춰 씨를 뿌려야 한다. 꽃이 쉬지 않듯 씨 뿌리는 사람에게도 ‘잠시 멈춤’이란 없다. 그런데 꽃을 기다리는 게 농부의 일만은 아니었구나. 먼바다에서 훈풍이 불어올 때 물고기도 따라오기 때문이다.

“노인은 철쭉이 필 무렵 참조기 떼가 몰려오면 바다에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대통을 넣어 소리를 듣고 길목에 물을 치면 조기가 그물에 하얗게 들어 그물이 둥둥 떴다고 했다. 외지 사람들이 아무리 큰 배를 가지고 와도 바닷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섬 주민들은 당해내지 못했다고 한다(60쪽).”

전남 영광군 낙월면 칠산 앞바다 송이도에서 조기를 잡던 늙은 어부의 이야기다. ‘철쭉꽃이 피면 조기가 온다’던 말은 시인이 아니라 어부의 말이었다. 철쭉은 해마다 피고 지는데 조기는 더이상 오지 않는다. 바다에서 조기 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도 이미 늙었다.

칠산 앞바다뿐 아니라 <바닷마을 인문학>에 실린 우리 어촌 현실은 거의 그렇다. 애달픈 바닷마을 이야기에 귀 기울인 저자가 ‘어촌을 배회한 지 30여년이 지났다.’ 쇠락하는 풍경 앞에서 더 늦기 전에 ‘물과 땅과 바람, 해초와 조개와 물고기와 새, 그리고 사람이 어울리는’ 바닷마을 공동체 회복을 위해 쓴 책이다. 귀농·귀촌 관련 이야기는 넘쳐나는데 땅과 하나로 연결된 바다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고.

책을 읽으며 최근 우리나라 1인당 연간 수산물 소비량이 세계 1위라는 사실에 놀랐다. 쌀 소비량이 줄어든 만큼 단백질 공급원에 대한 소비가 늘어난 게 비단 육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작 ‘지난 50년간 우리 바다에서 큰 물고기의 90%가 사라졌다.’ 동해에서 명태가, 서해에서 조기가 자취를 감춘 것은 이미 뉴스가 아니고, 국민 생선 오징어와 고등어, 멸치도 눈에 띄게 줄었다. 갯벌에선 백합이 씨가 마르고 있다.

온난화와 환경 파괴는 갯살림을 궁핍하게 만든 주된 원인이다. 하지만 알배기에 맛 들이고, 어린 물고기까지 마구 잡아먹는 우리 식습관과 무관하지도 않다. 농산물은 제철음식이란 말이 무색해진 지 오래지만 ‘육지 음식과 달리 바다 음식은 인간의 힘으로 철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다.’ 대신 바다가 주는 먹거리의 ‘남획과 약탈을 멈춰야 한다’는 게 책에서 주장하는 바다.

“낙지가 사는 눈(구멍)을 볼 줄 알고, 숭어가 오는 길목을 알고, 바지락이나 백합을 캐야 할 때를” 아는 사람 어부. 노인이 조기잡이 배에는 오르지 못하더라도 “가래와 호미만 들고 칠순에 현직 어부로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어촌에 건강한 공동어장이 있다면 가능하다. 바닷마을 어장을 생태적으로 보전하는 일이 곧 복지이자 사회안전망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바닷마을을 살리는 일은 땅을 살리고 농부를 살리는 방법과 다르지 않다. ‘좋은 환경에서 자란 어패류를 정당한 어법으로’ 잡고, ‘어민에게는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고, 어부는 정해진 시기에 정해진 곳에서 허용된 양을 잡아야’ 하듯, 소비자는 물건 값이 아니라 ‘바다와 갯벌, 어촌과 어민의 삶이 지속될 수 있도록 가치를 지불’해야 한다.

바닷마을 인문학 / 김준 지음/따비/320쪽/1만7000원

김선미<‘소로우의 탐하지 않는 삶’ ‘한살림 큰 농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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