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에 밑줄 긋기] “먼저 사랑해야 할 대상은 내 안에 …”

입력 : 2020-03-11 00:00

시 쓰며 병 얻고 나를 잃었다던 아팠던 시인의 마지막 당부 같아
 


스물 갓 넘었을 때 읽고 소름이 돋았던 시가 있다. “그 사내 내가 스물 갓 넘어 만났던 사내 몰골만 겨우 사람꼴 갖춰”라고 시작하던 허수경의 ‘폐병쟁이 내 사내’. 1988년에 나온 그의 첫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에 실린 절절한 연시였다.

오래 잊고 지낸 시인의 새 책을 펼쳤다. 유고집이다. 시인은 1992년 독일로 떠난 뒤 고고학 공부를 시작했고 폐허가 된 고대 도시의 유적지들을 오래 떠돌았다. 그가 뮌스터에서 숨을 거둔 것은 2018년 가을이다. 시인의 몸은 재가 돼 살던 집 마당 나무 밑에 뿌려졌다. 대신 그의 컴퓨터에서 ‘발굴’한 <가기 전에 쓰는 글들>이 무덤 속을 나온 유물들처럼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가 생전에 좋아했다는 바이올렛 빛깔 표지에 제목만 올린 정갈한 책. ‘시’라는 글자에 일부러 빗금까지 그어놓은 제자(題字)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생전 노트에 적어놓은 그대로 제목이 됐다. 죽은 시인이 남긴 글들을 엮어 책으로 펴낸 후배 시인은 말한다. “‘시’에 작대기를 찍 긋고 ‘글’이라 쓸 때 시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책에는 2011년부터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쓴 ‘시작 메모’와 마지막 시집 이후 문예지에 발표한 시들 그리고 작품론과 시론 등이 담겨 있다.

시가 되지 못한 미완의 글들이 생전의 시보다 강렬하게 다가온다. “평생 시를 쓰는 일에 종사하면서 얻은 것은 병이고 잃은 것은 나다. 이 말은 어떤 직업에다 대고 해도 맞다. 그러므로 시를 쓰는 일은 일이다.” 이 구절을 읽는데 눈이 아팠다. ‘병을 얻고 나를 잃어간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묻는 것처럼 들려서일까.

어떤 날 메모에는 “남들은 글을 써서 집을 짓고 부모를 봉양하는데 나는 내 어머니 냉방에 넣어두고 혼자 돌아다니다가 가난하고도 처량한 얼굴로 달만 바라본다”고도 적혀 있다. 모국어로 시를 쓰던 사람이 독일어로 박사학위까지 딴 뒤에는 대학이라는 울타리마저 뛰쳐나왔다. 일부러 가난을 선택하진 않았어도 윤택한 삶이 보장된 행보는 아니다. 시를 쓰는 일은 궁핍의 그늘에서 자기 생의 숨은 빛을 발굴하는 일이다. ‘나는 발굴지에 있었다(사후에 개정판이 나온 그의 산문집 제목)’던 그가 폐허가 된 유적지에서 결국 시인의 자리로 돌아온 것도 그런 이유 아니었을까.

“연시들이 보통 편지의 형식을 띠게 되는 것은 사랑이라는 대상이 자신의 바깥에 있다는 오래된 생각의 관습 때문이다(126쪽).”

이 구절에서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젊은 시절 폐병 걸린 애인에게 ‘독 오른 뱀’이나 ‘개’를 잡아 “청솔가지 분질러 진국으로만 고아다가 후후 불며” 먹여서 “끝내 일어서게 하고” 싶다던 사람. 쉰네살에 암으로 떠난 시인의 부고 앞에서 그 시가 먼저 떠올랐다. 그가 종양으로 덮인 위를 잘라내야 했을 때 곁에 있던 누군가도 젊은 날의 시인처럼 사람을 살리기 위해 뭐든 하고 싶었을 테니까.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려면 우선 내 몸과 마음부터 잘 돌봐야 한다는 것을 호되게 배우고 있는 요즈음. 먼저 사랑해야 할 대상은 바깥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다고, 많이 아팠던 시인이 ‘가기 전에’ 그렇게 당부한 것만 같다.

가기 전에 쓰는 글들/허수경 지음/난다/368쪽/1만6000원

김선미<‘소로우의 탐하지 않는 삶’ ‘한살림 큰 농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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