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에 밑줄 긋기] 경쟁 대신 화합, 독식 대신 나눔…이것이 나무의 참모습

입력 : 2020-02-26 00:00

‘나무간 치열한 경쟁’ 인간 오해일 뿐 뿌리로 얽힌 관계망 통해 공존 이뤄
 


겨우내 문득문득 불타는 땅 호주를 생각했다. 지난해 9월 시작된 산불은 해를 넘겨 2월 중순에야 꺼졌다. 눈을 기다리면서도 눈구름이 먼저 남쪽으로 달려가 비가 됐으면 싶었다. 나무 한그루가 씨앗에서 성목이 될 확률은 “포플러가 10억분의 1, 너도밤나무는 170만분의 1, 사과나무는 30만분의 1”이라 알려주는 페터 볼레벤의 책을 읽는 동안 유칼립투스 숲은 계속 불타고 있었다. 유칼립투스 잎만 먹는 코알라의 멸종을 걱정할 정도라고 한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개된 페터 볼레벤의 책은 <나무수업>이었다. 그때는 ‘나무’만 보고 책을 골랐는데, 이제는 저자를 보고 <나무 다시 보기를 권함>을 펼칠 만큼 이름난 생태작가가 됐다(이 책은 전에 소개된 그의 책들보다 앞선 초기작이다). 독일에서 20년 넘게 산림공무원으로 일했던 이의 선택은 농약과 기계 대신 말과 사람의 힘으로 가꾸는 친환경산림 경영과 원시림 회복운동이다. 오랜 시간 산림기사로 일하면서 배운 나무의 언어로 숲을 다시 바라본 그가 책을 쓰기 시작한 이유다. 사람들은 그를 나무 통역사라 부른다.

“자연환경에서 같은 종의 나무들끼리 싸우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 똘똘 뭉치고 도와준다. 아픈 나무가 있으면 건강한 나무가 섬세한 뿌리 네트워크를 통해 선물로 당을 흘려 보내준다.”(87쪽)

왜 숲의 나무들은 햇빛을 두고 이웃과 치열하게 경쟁한다고만 생각했을까. 씨앗을 멀리 보내는 이유도 부모 그늘에서 벗어나야 제대로 살 수 있다는 교훈으로 읽었다. 자식농사는 나무처럼 단호해야 한다는 말은 또 얼마나 많이 들었나. 나무를 고독하고 독립적인 존재의 표상으로만 우러러봤던 것 같다.

작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수록 나무끼리의 경쟁은 인간, 아니 자본이 만든 말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권하는 ‘나무 다시 보기’는 눈에 보이는 수형이나 잎, 열매만이 아니라 땅속 뿌리에 무게가 실린다. 균류를 매개로 끈끈하게 이어진 뿌리 네트워크는 우리가 하나로 연결된 존재임을 일깨운다.

나무좀의 습격을 받으면 나무는 고통스러워하면서 “향기로 이웃 친구들에게 위험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도 한다”고. 나무도 우리처럼 생각하고 고통을 느끼며 다른 종과 소통할 뿐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 돕고 있다고 알려준 책이다. 멀리 남반구에서 불타오른 숲의 연기가 지구를 돌아 북반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청정자연의 대명사 호주가 사실은 ‘기후악당’ 국가였다는 원성도 들렸다. 세계 석탄 수출 1위와 값싼 소고기의 나라 모두 원시림을 불태운 땅에서 이뤄졌다. 그 혜택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있을까.

책은 “산불은 인위적으로 조성한 단일 수종 침엽수림에서만 발생한다. 방향유와 송진이 가득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우리 소나무 숲에서 산불이 잦은 것도 같은 이유다. 책장을 덮을 즈음 동해안산불방지센터가 이미 봄철 대형 산불에 대비해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중국 우한에서 귀국한 교민들에게 혐오 대신 “우리는 서로의 사회안전망이다”라고 응원하던 아산 시민의 손에 들린 팻말이 떠올랐다. 나무들처럼 우리는 모두 연결돼 있다.

나무 다시 보기를 권함/페터 볼레벤 지음/더숲/304쪽/1만6000원

김선미<‘소로우의 탐하지 않는 삶’ ‘한살림 큰 농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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