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진주 요구한 돼지 직설적 언어로 고발

입력 : 2020-02-19 00:00


시인 최영미에게 진주를 요구한 돼지들은 누구인가. 15년 전 시집 <돼지들에게>가 발행되자 문단이 발칵 뒤집혔다. 시인이 시에서 언급한 ‘돼지’의 실제 모델이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지식인이라는 말이 돌면서다. ‘진주’가 여성의 성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수많은 설화에 시달리고, 이를 기사화한 한 언론사와 언론중재위원회까지 가며 싸움을 벌이면서도 시인은 그 모델에 대해 함구했었다.

15년 후, 올해 시인은 이 시집의 개정증보판을 들고 돌아왔다. 그리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문화예술계의 아무개였다.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나갔는데 굉장히 불쾌한 경험을 했다. 집에 돌아와 내내 생각하다가 마침 성경을 보고 그 구절을 떠올렸고 시를 썼다.”

‘돼지에게 진주를 주지 마라’는 구절이었다.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언젠가 몹시 피곤한 오후,/돼지에게 진주를 준 적이 있다./좋아라 날뛰며 그는 다른 돼지들에게 뛰어가/진주가 내 것이 되었다고 자랑했다.”(‘돼지들에게’ 중)

다섯쪽에 걸쳐 이어지는 긴 시는 직설적이고 사실적인 언어로 현실을 고발한다. 마치 시인이 촉발한 문화계 ‘미투’ 운동을 15년 전에 이미 시작했던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15년 전 시인데도 현재형으로 읽히는 것은 그래서일 테다.

시집에는 새로운 시 세편도 실렸다. ‘착한 여자의 역습’ ‘자격’ ‘ㅊ’이다. 시 ‘괴물’ 발표 이후 최근 마무리된 소송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일을 겪으며 시인이 느꼈던 감정들을 시로 옮겼다.

“나도 완벽한 사람은 아니지만,/좀도둑도 살인자를 고발할 수 있고/살인자도 살인자를 고발할 수 있어”(‘자격’ 중)

돼지들에게/최영미/이미출판사/1만원/120쪽

이상희 기자 montes@nongmin.com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추천광고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