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책방지기의 마음을 담은 책] 사람 냄새 나는 ‘인간 정약용’을 말하다

입력 : 2019-09-11 00:00

다산을 주제로 한 책 ‘7권’ 펴낸 한양대 국문과 정민 교수의 새책,

다산의 삶에서 변곡점 된 천주교와 정조, 그리고 강진

세차례 운명적인 만남에 얽힌 한 인간으로서의 ‘삶’ 고스란히
 


“한사람의 인생에는 몇차례의 변곡점이 있다. 어떤 만남 이후 그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책을 펴자마자 눈에 들어온 첫 구절에 가슴이 쿵하고 울렸다. 한사람의 인생을 바꿔놓는 그 어떤 사건, 혹은 만남. 예고 없이 찾아와 우리들의 가슴을 흔들어대고 그래서 흔히 ‘운명’이라고 부르는 어떤 것들. 첫 구절에 마음이 끌려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1권을 읽고 곧이어 2권을 펼쳐 들었다.

‘정민의 다산독본’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한양대학교 국문과 정민 교수가 펴낸 <파란>은 다산 정약용의 삶을 다룬 책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산을 말할 때 흔히 이야기하는, 엄청난 양의 저작을 쏟아냈던 유배 시절의 다산이 아니라 바로 그 직전까지의 삶을 다루고 있는 게 특징이다. 저자는 다산을 주제로 한 책을 7권이나 펴냈을 정도로 다산 연구에 조예가 깊은 학자다.

“다산은 세차례의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다. 천주교와 정조, 그리고 강진과의 만남이 그것이다.”

이 만남이 그의 삶을 어떻게 흔들었는지, 특히 마흔 이전 그의 생애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 천주교와 정조와의 만남이 이 책의 핵심이다. 친가·외가 4촌 이내 범위 안에서 가톨릭교회의 성인과 수녀가 셋, 복자가 셋이나 배출됐을 정도로 다산의 집안은 초기 조선 가톨릭교회의 핵심 그룹이었다.

다산을 비롯한 초기 신자들에게 천주교는 조선 후기 변혁의 시대에 차별과 억압이 없는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해준 종교였다. 폭력과 압제가 사라지고 힘 있는 평화의 세상이 열린다는 희망을 갖게 했으며 그런 꿈을 현실로 가능하게 해줄 수 있는 권력으로 정조 임금이 있었다.

정조는 다산을 몹시 아꼈다. ‘임금의 의중을 한발 앞서 읽었고 원하는 바를 알아 꼭 맞게 아니 그 이상으로 처리한’ 영민한 학자를 개혁의 동반자로 삼은 것이다. 답답할 때는 항상 다산을 찾아 학문을 논하고 시대의 해결책을 찾았으며 그때마다 다산은 실용적인 대안으로 정조의 개혁정책을 뒷받침했다. 청년기의 다산은 추진력과 돌파력이 대단한 행동파였으며 때로는 권모술수에 능한 정치가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는 것이 저자의 해석이다.

그러나 역사는 정조와 다산의 시간을 그리 오래 허락하지 않았다.

“다산은 자신의 주변을 점점 옥죄어오는 살기를 느끼고 있었다. 전원으로 돌아갈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던 즈음, 1800년 6월28일 다산의 마지막 버팀목이었던 정조가 갑작스레 승하했다. 세상과 통하는 모든 문이 일제히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이후 다산을 기다리고 있던 건 18년이라는 기나긴 유배생활이었다. 고된 형벌의 시간이었지만 학자로서 다산의 연구가 활짝 꽃을 피운 시기이기도 했다. 청년시절, 자신을 알아주는 군주를 만나 역사를 주도했지만 결코 순탄하지 않았던 삶. 그는 때로 좌충우돌했고 고집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살아남기 위해 종교적 신념을 배반했던 지극히 인간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결코 완벽하지 않았던 한 인간이 고난과 역경을 겪으며 어떻게 진정한 학자로 거듭날 수 있었는지, 신격화돼 박제된 다산이 아니라 사람 냄새 나는 한 인간으로서 다산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저자는 쓰고 있다.

파란 / 정민 / 천년의상상 /1만7500원 / ☎02-739-9377

백창화<북칼럼니스트, ‘숲속작은책방’대표>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추천광고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