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책방지기] 가수 정태춘 ‘사랑과 인생’ 담긴 노랫말 에세이집

입력 : 2019-08-19 00:00

시보다 더 곱고 예쁜 노랫말…미발표작 합친 121곡 엮어내
 


참 독특하고도 반가운 책 한권이 나왔다. ‘노래 가사를 글로만 읽는 건 좀 부자연스런 일이다’라고 지은이는 서문에서 쓰고 있지만 어떤 시보다도 아름다운 글로 가득한 책이다. 음악인 정태춘의 노래 에세이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 데뷔 40주년을 맞아 기획한 ‘정태춘 박은옥 40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펴낸 이 책에는 미발표작까지 합친 그의 노랫말 121곡과 에세이가 담겨 있다.

아직 손으로 연애편지를 쓰던 시절, 좋아하는 노래를 테이프에 녹음해 친구들끼리 돌려 듣던 시절, 그의 노래는 청춘의 연서였다.

‘소리 없이 어둠이 내리고 길손처럼 또 밤이 찾아오면 / 창가에 촛불 밝혀 두리라 외로움을 태우리라’(촛불)

‘그대 고운 목소리에 내 마음 흔들리고 / 나도 모르게 어느새 사랑하게 되었네’(사랑하는 이에게)

‘새벽 이슬 맞고 떠나와서 어스름 저녁에 산길 돌고 별빛 속에 묻혀 잠이 들다 저승처럼 먼 길에 꿈을’ 꾸는 ‘나그네’의 정서. ‘나는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 상념 끊기지 않는 번민의 시인이라도 좋겠소. 나는 일몰의 고갯길을 넘어가는 고행의 수도승처럼’ 길을 나서고 싶게 하는 ‘시인의 마을’ 등 그의 노래는 곡도 아름다웠지만 곱고 예쁜 우리말 가사가 시처럼 아름다웠다.

원래 클래식으로 음악대학에 진학하고자 했지만 실패하고 곧 가수의 길에 접어든 그는 1집 음반이 크게 히트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음반사에서 만난 동료 박은옥과 결혼도 했고 잠깐 힘든 시기를 거쳤지만 ‘떠나가는 배’와 ‘사랑하는 이에게’를 수록한 앨범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아파트를 샀고, 하고 싶은 음악과 공연을 실컷 할 수 있을 만큼 여유가 생겼다.

그때 그는 그동안 골방에서 혼자만 쓰던 ‘나의 일기’에서 벗어나 광장에서 함께 ‘우리들의 일기’를 쓰고 싶었다. 사람들의 감성을 감미롭게 물들이던 음유시인은 1988년, 노동자들의 일일찻집 공연을 시작으로 사회참여 가수로 변화했다.

전교조를 위한 공연에 앞장섰고 벼랑 끝에 내몰린 철거민들과 양심수들을 대변하며 거리의 투사가 됐다. 강렬한 사회비판을 담은 그의 음반은 사전심의에서 모두 반려됐고 수정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노래들은 비합법으로 출시돼 거리에서 불렸다. 1993년, 그는 ‘가요의 사전심의’에 저항하며 헌법재판소에 소원을 청구했고 결국 1996년, 위헌 결정을 받아냈다. 60여년간 계속되던 가요에 대한 정부검열철폐라는 역사적인 성과를 이뤄낸 것이다.

그렇게 거리에서 뜨겁게 시간을 보내던 그는 사회와 매체환경 변화로 더이상 앨범이 팔리지 않는 시대를 맞이하자 2012년 음악을 접었다. 대신 사진을 찍고 가죽공예를 하거나 한시를 공부하고 붓으로 글을 썼다. 그리고 올해, 데뷔 40주년을 맞아 기념음반을 내고 공연장으로 돌아왔다. 그와 동시대를 함께 보낸 이들은 하얗게 센 그의 머리칼과 약간은 늙어진 목소리에서 자신들의 지난 삶을 함께 돌아본다. 깊고 푸른 동해바다를 찾아 나섰던 어린 고래, 꿈꾸던 고래는 망망대해를 지나 이제 자신만의 심해에 다다랐을까. 비록 공연에 함께하진 못했어도 평생에 걸친 그의 노래들을 글로 읽으며 정태춘·박은옥 두 음악인에게 감사드린다. 당신들의 노래가 있어 행복했다고, 희망이 있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참 고마운 책이다.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정태춘 /천년의시작/☎02-723-8668 /1만8000원

백창화<북칼럼니스트, ‘숲속작은책방’대표>

ⓒ 농민신문 & nongmi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독자추천광고

게시판 관리기준?
게시판 관리기준?
비방, 욕설, 광고글이나 허위 또는 저속한 내용 등은 사전 통보 없이 삭제되거나 댓글 작성이 금지될 수 있습니다.
농민신문 및 소셜계정으로 댓글을 작성하세요.
0 /200자 등록하기

기획/연재

많이 본 기사

최신기사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