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로 사라진 ‘입맛’ ‘술맛’ 살리는 책

입력 : 2018-08-10 00:00
권여선/한겨레출판/1만3800원/☎ 02-6383-1602

[시골 책방지기의 마음을 담은 책] 오늘 뭐 먹지?

돼지비계·막창·홍어삼합…

술안주로 미각 키워온 문단의 주당 권여선 작가

계절 따라 이어지는 음식 이야기 담백하고 맛깔나게 소개
 


40℃를 맴도는 폭염의 날들. 연일 신기록을 경신하는 전국의 더위 중계방송을 듣다가 ‘1994년의 대기록’을 언급하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새삼 혀를 차게 된다. 바로 1994년 7월말, 삼복더위에 아이를 낳았기 때문이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마저도 동났던 그해 여름, 치솟는 열기에 집에서 밥해먹을 엄두도 나지 않았고, 어떤 음식도 입맛을 당기지 못해 하루걸러 물냉면만 들이켰다.

그리고 그해 여름만큼이나 덥다는 올여름의 폭염 속에서 나는 또 냉면을 생각한다.

“여름에는 무조건 냉면이었다. 옛날에는 주로 시장에서 냉면 건면을 사다 삶아 먹었는데 나는 그저 냉면은 국수보다 거뭇하고 쫄깃하구나 했을 따름이다. 그런 면발은 의당 비빔냉면에 어울렸다.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나는 어려서부터 비빔냉면만 먹었다. 물냉면이라야 열무김치나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는 것인 줄만 알았지, 찬 고기육수에 툭툭 끊어지는 메밀면을 말아 먹는 평양식 물냉면은 알지도 못했다.”

권여선 작가의 <오늘 뭐 먹지?>는 입맛도 없고 의욕도 사라진 이 여름, 폭염을 견디는 독서로 제격이다. <안녕 주정뱅이>라는, 수록된 작품의 모든 인물들이 술을 마셔대는 소설집을 낸 후에 자연스럽게 문단의 주당임을 인증한 권 작가. 술을 마시는 재미의 팔할을 안주에 할애하듯 돼지비계·막창·홍어삼합까지 술안주로 미각을 키워온 그의 음식 이야기가 맛깔나다.

무더운 여름이라 여름 음식이 눈에 먼저 들어왔을 뿐, 책에 실린 음식 이야기는 계절을 따라 이어지는데 재미있는 건 순전히 작가의 체험에 따른 주관적인 선택이라는 점이다. 첫장인 ‘봄, 청춘의 맛’에서는 우리가 흔히 ‘봄’ 하면 떠올리는 것들과는 전혀 무관하게 순대·만두·젓갈 따위의 음식이 등장하고 ‘이열치열의 맛’이라 부제가 붙은 여름에는 물회와 매운 ‘땡초’, 오이지 이야기가 입안에 꼬들꼬들 씹혀온다.

‘다디단 맛’의 가을에는 냄비국수와 가을무 이야기가, ‘처음의 맛’ 겨울에는 감자탕과 꼬막조림·어묵의 추억이 등장하니 음식에 관한 산문치곤 과도한 치장이 전혀 없이 고스란히 우리 평범한 이들의 밥상을 담고 있다.

“라일락꽃이 필 때면 나는 순댓국이 먹고 싶다. 들깨가 듬뿍 든 순댓국에 새우젓을 넣어 간을 맞추고 돼지 귀·오소리감투·애기보 등을 먼저 건져 먹는다. 시원하고 달달한 깍두기에 갓 무쳐낸 배추겉절이가 입맛을 돋운다. 매운 땡초를 된장에 찍어 먹고 뽀얀 순댓국 국물을 훌훌 떠먹으면 뇌수가 타는 듯한 쾌감이 샘솟는다.”

더운 여름날, 음식마저도 이리 뜨겁고 독한 걸 소개하느냐 불만을 토로하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이런 음식은 어떠한가.

“차지고 부드럽게 후루룩 넘어가는 회와 오독오독 씹히는 해산물과 싱싱한 야채와 매콤새콤한 국물까지 그야말로 통쾌하고 상쾌한 맛이었다. 거기에 소주까지 곁들이니 마음이 느긋해져….”

아아, 산속에서도 무더위를 피하지 못해 하루 종일 에어컨 앞에 앉아 있는 이 책상물림 책방지기는, 당장이라도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한번 쉼 없이 동해 바닷가로 내달려 시원한 파도를 앞에 놓고 물회 한그릇 후루룩 들이마시고만 싶구나.

백창화<북칼럼니스트, ‘숲속작은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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