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베트남 북쪽 꽝린 시골마을에서 아빠는 어부, 엄마는 농민이었던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농사짓는 것이 고된 삶이라는 것을 일찍 깨달았습니다. 부모님 고생을 덜 시키기 위해 대학에 가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 무렵 사촌 언니가 공장에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이후 회사에 취직해 다니면서 신문·텔레비전에서 한국의 산업 기술 발전을 보며 동경했습니다. 마침 회사 동료가 한국말을 배우고 있어서 저도 한국말을 독학으로 공부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23세가 됐습니다. 명절 때 집에 오면 부모·친척·이웃들이 자꾸 "너 언제 결혼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국제결혼 소개로 남편을 만났습니다. 처음 만나서 결혼 생활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는데 그 사람은 가족이 최우선이라고 해 저희는 부부가 됐습니다.

4월이면 베트남은 더워서 땀이 뻘뻘 납니다. 한국으로 가는 데 4시간 비행기를 타고 시차가 2시간밖에 안돼서 별 차이 없겠지 생각했는데 공항에 도착하니 몹시 추웠습니다. 공항에는 남편이 마중나와 꽃다발과 "밍, 앞으로 어려운 일이 많겠지만 우리 열심히 노력하고 행복하게 살자!"라고 쓴 손 편지를 줬습니다.

저를 환영하려고 시어머님께서 여러 봄나물을 무치고 청국장을 끓이셨습니다. 한국에서 첫날, 저는 처음 청국장 맛을 봤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냄새가 이렇게 심한 음식을 어떻게 먹을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됐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청국장이나 된장찌개를 못 먹으면 그립답니다.

베트남에서는 날씨가 덥고 정전이 잦아서 음식을 딱 한끼 먹을 양만 준비하고 남은 음식은 버립니다. 베트남에서 하던 것처럼 남은 음식을 버렸는데 저의 행동을 보고 기분 좋게 식사하셨던 시어머님께서 얼굴색이 바뀌면서 안방 문을 쾅 닫고 들어가시곤 했습니다. 시어머님께서 말씀을 안하셔서 저는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몰랐습니다. 만약 제가 한국말을 잘해 시어머니께 먼저 여쭤보고, 시어머니 또한 바로 알려주셨다면 모든 것이 달라졌겠죠?

참았다가 상처가 곪아서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셋째형님댁에 가시고 남편과 저는 다문화센터에 가서 상담을 받았습니다. 그 후 형님들이 자주 전화하고 집에 찾아오시고 제가 어떻게 생활하는지 확인하셨습니다. 형님들은 뉴스에서 결혼이민여성들이 한국에 시집온 후 집을 나가는 이야기를 봤다면서 남편한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결국은 제가 형님들과 시어머니께 믿음을 보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임신 중 우울증으로 온 자살 충동 때문에 적응하기 어렵고 스트레스를 받아 하혈하며 유산했습니다. 유산은 한번 하면 다음번에도 위험하다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한국에 온 지 9개월이 돼 첫번째 설을 새로운 가족과 지내게 됐습니다. 베트남에서는 연말이면 가족이 모이고 멀리 있는 사람도 고향에 갑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친구나 회사 동료와 지내는 문화였습니다. 남편은 각종 모임 등에 참여하느라 바빴습니다. 저는 아주버님 가족과 함께 차례 음식을 준비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여러 사람이 모여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면 끼어들어 같이 말하고 싶어도 잘못 알아들을까 봐 망설이고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외로웠습니다. 지금은 자신감이 생겨 제가 주도적으로 차례상을 준비합니다.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다문화센터에서 한국어 선생님과 연습을 많이 했지만 발음이 부정확하고 사람들을 대면하는 것도 두려워 한국에서 사는 것은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동안 유산의 아픔으로 임신기간 걱정이 많았습니다. 제 고충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도 없어 답답했습니다. 다행히 2014년 임신 말기에 송포농협에서 운영하는 결혼이민 다문화 여성대학프로그램을 알게 됐습니다. 그곳에서 한국말·요리·문화 등을 배웠습니다.

아이가 커가면서 송포농협에서 하는 여러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작년에는 복지팀장님 추천으로 모국 방문 지원사업에 선정돼 우리 가족 모두 베트남으로 가 친정식구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올해에는 좀더 넓은 곳으로 나가 자아실현도 하고 아이들 공동체 생활도 지켜보면서 도움을 주고 싶어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 취직했습니다. 지금 제가 누리는 모든 일의 가치와 소중함은 시어머니와 송포농협 관계자분들의 도움으로 이뤄낸 것입니다.

한국에 온 지 7년, 이제는 식탁에 베트남음식을 만들어 올려놓으면 금방 없어질 정도로 좋아합니다. 행복은 한쪽만 노력해서는 안되고 서로 양보하며 노력해 만드는 것입니다. 언어가 달라도, 문화가 달라도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앞으로 한국 아줌마가 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두렵지 않습니다. 제 뒤에는 항상 응원하고 격려해주는 든든한 가족이 있으니까요. 다른 결혼이민여성분들도 힘내시고 달려보세요. 비가 오는 날이 있어야 맑은 날이 보인다고 외쳐봅니다.




   
  [최종편집 : 20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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