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충남 천안시 동남구>
   
 

"저 사람들 좀 봐!"

논두렁을 지나가는 사람마다 구경이 한창이다. 하천 둑 위에서 풀을 깎는 두 여성의 모습이 뭐가 그리 신기할까마는 사람들의 시선은 두 사람의 손에 집중돼 있었다. 낫이 아닌 가위로 억새를 깎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아찔하고 한편으론 안타까운 광경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늘 생명을 가꾸며 살아가는 삶을 꿈꿔오셨다. 그러던 중 2018년 64세 되던 해 평생소원이었던 농지를 처음 구매하셨다. 어머니는 가장 먼저 하천이 맞닿은 높은 둑에 꽃나무를 심어 아름답고 시원한 휴식공간을 만들고자 하셨다.

하지만 우리 모녀가 처음 직면한 난관은 '낫'이었다. 40세가 넘어 처음 농사를 짓는 내게 농기구들은 쉽게 곁을 주지 않았다. 농기구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어머니도 마찬가지셨다. 특히 낫은 날카로운 칼날로 당당한 위용을 자랑한다. 그래서일까. 낫을 잡기만 해도 이내 온몸이 바싹 오그라든다. 그래서 어머니와 함께 생각한 것이 '가위'였다. 이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이 우리 모녀에게 붙여준 별명이 바로 '가위 아줌니'였다. 시골에서 이런 광경은 정말 보기 드문 장면이니 주민들에게 느껴졌을 두 모녀의 모습이 얼마나 신기했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절로 난다.

가위질은 생각보다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다. 손가락과 손목 그리고 허리까지 통증이 느껴졌고 또 관절 부위가 심하게 부어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가위를 뽑았으면 썩은 풀이라도 잘라야 하는 법. 온 체력을 다해 첫번째 과업이었던 둑을 깨끗이 정리한다. 첫번째 고개를 간신히 넘고나니 본격적인 밭농사가 우리 모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논둑을 흙으로 돋우고 넓혀서 495㎡(150평) 남짓한 밭을 만들었다. 감자와 고구마를 비롯해 고추와 옥수수도 심고 각종 채소 씨앗도 호미로 얕은 골을 타며 심었다. 그리고 콩을 모종으로 키워 논 둘레를 따라 심어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도 세워본다. 하지만 농사에 경험이 없던 터라 처음 씨앗을 심고 발아시켜 뿌리가 잘 정착될 때까지 매일 물을 줘야 한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했다. 당시엔 미처 농업용수시설을 갖추지 못해서 하천의 물을 길어 매일 텃밭에 줘야 하는데 우리 논은 도로 앞 첫번째 논이다보니 2m가량 되는 가파른 논둑을 오르내리며 물뿌리개로 물을 퍼날라 작물에 물을 줘야 했다.

농업진흥구역 안의 농지를 구매하다보니 주변에 벼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모내기철, 제초제 및 살충제 살포시기, 그리고 추수철 등 특정 시기가 아니면 만나기가 쉽지 않다. 지나가는 바쁜 이웃을 붙들고 궁금한 점들을 물어본들 설명해주는 농업현장 용어들이 빨리 이해되기가 만무하다.

설상가상이라 했던가. 밭작물에 고라니 피해를 방지하려면 망을 설치해야 한다고 한다. 첫 농사에 의욕을 가지고 콩을 직접 모종하며 논둑에 심으려는 것이 잘못이었다. 2664㎡(806평) 논의 둘레가 자그마치 260m에 달한다. 인력과 비용을 생각하니 사다 먹는 농작물이 비싸다고 더이상 투덜대지는 못할 것 같다.

초보 농민에게는 어려움이 많다. 노동력 투입이 수익으로 이어지기 어렵고 초기 투자 비용도 만만치가 않다. 그래도 고생 끝에 작은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힘들여 심은 작물들이 싹을 틔우며 생명의 힘을 과시한다. 눈으로 확인하는 이 생명의 위대함은 그 어떤 것과도 견줄 수 없는 경이로움이다.

2018년 본격적인 논농사를 시작하는 5월, 내 생애 처음으로 논에 모를 심었다. 뜨거운 여름 동안 벼들은 기특하게도 쑥쑥 자랐다. 황금 들녘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지만 정작 신이 난 것은 참새들과 '피'라는 논의 잡풀이다. 주위 어르신들 말씀으로는 논관리를 잘해도 우리처럼 제초제를 많이 쓰지 않으면 피가 나는데, 오히려 그래서 무농약 쌀처럼 건강한 쌀이 될 수 있다고 위로하신다. 이장님께서는 피가 더 번지기 전에 피를 뽑아야 한다고 하신다. 어머니와 나는 논 장화를 신었다. 처음에는 균형을 잡지 못해 넘어져 아까운 벼를 쓰러트리기 일쑤였다. 우리 모녀는 또다시 지나가는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아니 남자도 하기 어려운 일을 하고 계시네. 그냥 둬유~! 그 정도 피가 있다고 벼에 큰 영향 안 주니께" 등의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2019년 논을 객토해 밭을 만들기로 한다. 읍사무소를 방문해 다양한 보조사업에 지원도 했다. 때마침 일부 금액을 보조받게 되어 퇴비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었다. 게다가 올해는 보조금 50%를 지원받아 처음으로 농기계를 장만했다.

지난 3년간의 농사 경험은 내 인생에 새로운 전환점이 됐다. 우선 국민의 건강을 생각하는 바른 식문화에 대한 절실한 고민, 협력과 공생을 기반으로 하는 농촌문화의 공동체적 가치 등에 대한 고민이 내 삶의 새로운 방향이 됐다.

처음 가위를 들고 농사를 시작했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지금은 관리기로 밭을 개간하는 의젓한 농부의 모습으로 발전했다. 주위 사람들도 "어쩜 그렇게 평생 농사지은 자신들보다 더 농사를 잘 짓느냐"라며 칭찬도 듬뿍듬뿍 쏟아낸다. 오늘도 어린 작물들이 작은 바람결에도 즐겁게 춤을 추는 생명의 대지를 바라본다. 이제 우리는 '가위 아줌니'가 아닌 저들과 함께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농부'이다.



   
  [최종편집 : 20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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