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충남 보령시 웅천읍>
   
 
어둠이 몰려온 농촌마을에 정적이 고즈넉이 내려앉는다. 분주한 하루를 보낸 농사꾼들은 단잠을 재촉하고, 온종일 곁에서 꼬리를 흔들던 강아지도 어느 틈엔가 쉴 곳을 찾아 사라진다. 매미 울음소리가 잠잠해지자 이름 모를 풀벌레와 귀뚜라미 소리가 논두렁 위로 또랑또랑 울려퍼진다. 마당에 앉아 바라본 고향의 밤하늘은 수많은 싸라기 별들을 품고 있다. 청명한 하늘길 위에 흩뿌려놓은 듯 펼쳐진 은하수를 보고 있노라니 "아~ 내 고향 참 좋다"라는 탄성이 절로 터져나온다.

5년 전 귀촌해 다시 시작한 농촌에서의 삶은 서울에 살면서 일찍이 느껴보지 못했던 여유로움을 가져다준다. 일에 치여 야근을 하거나 퇴근 후 습관적으로 술자리를 하던 나에게 정신적인 여유라곤 조금도 없었다. 늘 누군가에게 의지해 함께 밥을 먹거나 술을 마셔야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며 주변을 돌아볼 틈도 없이 살았다. 그간 터를 잡고 살아왔던 도시를 떠나는 것이 이래저래 쉽지만은 않았지만, 농사를 밑천 삼아 꿈을 이루어보겠다는 생각으로 귀촌을 결심했다.

귀촌한 후로는 온전히 나만의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연스럽게 또렷이 느껴지는 사계절 속에서 자연과 농촌이 주는 혜택을 매순간 체감한다.

아침저녁 마주하는 자연의 넉넉한 품은 긴 도시생활로 지친 몸과 마음을 보듬기에 충분하다. 젊은 나이에 귀촌해 농사를 짓겠다고 했을 땐 지인들 대부분이 우려했지만, 5년이 지난 지금은 프로 농사꾼이 다 되었다고 칭찬을 한다.

농촌생활이 항상 여유롭고 녹록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몸이 힘든 것은 둘째 치고, 좀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기후와 날씨에 한없이 예민해지는 일이 다반사다. 특히 올여름처럼 유난히 더위가 심하고 가뭄까지 겹칠 때면 농부들의 시름은 깊어지기 마련이다. 자식처럼 길러낸 한해 농사를 망칠까 봐 전전긍긍하는 농사꾼의 마음을 누가 헤아려줄까.

"농사는 항상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여."

농사 선생님이었던 할아버지는 농사지을 때 깐깐하고 잔소리가 많은 편이었다. 씨를 뿌릴 때도, 고랑을 탈 때도, 비닐을 씌울 때도, 모종을 심을 때도 할아버지는 사사건건 잔소리를 하셨다.

"씨는 그렇게 막 뿌리는 것이 아니여. 자 봐라잉~ 이렇게 슬쩍 잡고 스스슥 뿌리는 거여. 흙은 요렇게 씨가 잠길 만큼 적당히 덮어줘야 허고"라고 하시는데 내 방식과 무엇이 다른 건지 알기 힘들었다. 무 모종을 솎을 때면 "허허 참, 무를 막 솎는 것이 아니여. 뿌리가 다치면 제대로 자라지 못하니께 뿌리 끝이 갈라지지 않게 조심해야 혀"라고 하셨다.

귀가 따갑도록 쏟아지는 할아버지의 잔소리를 묵묵히 들어 넘기던 나와 달리, 아버지는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향해 볼멘소리를 하곤 했다.

"그렇게 우리가 하는 게 마땅치 않으시면 아버지가 직접 하시믄 되잖소. 누군들 아버지 마음에 들 수가 있겄어요?"

아버지에게 꺾일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더 큰 목소리로 "다 잘되라고 하는 말이여. 쓰게 시키는 거니께 잘 새겨들어. 농사는 항상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여. 농산물은 농사꾼이 신경을 쓴 만큼 돌아오는 거고. 땅은 결코 배신하는 법이 없어"라고 호통을 치셨다. 나 역시 때로는 꼼꼼히 약을 안 친다고 혼나기도 했고, 농사를 그렇게 지을 거면 도시 가서 돈 버는 게 낫다는 핀잔도 숱하게 들었다. 무엇이 그리도 못 미더워 잔소리를 하시나 싶어 어떤 때는 화가 났고 참기 어려운 때도 많았다. 하지만 '평생 농사를 지어온 농사꾼의 잔소리는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라는 생각으로 묵묵히 마음속에 새겨넣었다. 갑작스럽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도 할아버지의 가르침은 나를 일으켜 세우는 정신적인 힘이 되어주었다.

애지중지 키운 농작물을 수확할 때의 기쁨을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흙을 파내면 알알이 여문 마늘에 감탄하고, 속이 꽉 찬 배추에 환호하느라 힘든 줄을 모른다. 캐고 뽑고 정신없이 나르고 나면 그간 농사일로 쌓였던 피로가 한순간에 날아간다. 잘 여문 알곡과 속을 꽉 채운 채소가 선사하는 감동은 직접 키워본 사람만이 안다.

요즘엔 할아버지가 안 계시니 할머니가 이어서 잔소리를 하신다. 뒤를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하시는 할머니에게 그만하라고 하지만, 어쩐지 투덜대는 잔소리가 정겹다. 할아버지가 농사 잘 지으라고 해주시는 잔소리 같기 때문이다. 요즘은 나도 모르게 그렇게 듣기 싫던 할아버지의 호통을 떠올려 씨를 뿌리고, 잔소리를 되새기며 씨마늘을 관리하고 있다. 모종을 섞을 때도, 고랑을 만들 때도, 지주대를 꽂을 때조차도 할아버지 말씀을 떠올린다. 무엇보다 '땅은 배신하는 법이 없고, 농사는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라던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되새긴다.

지금은 아버지도 몸이 편하고 쉬운 방법보다는 할아버지의 고집스러운 방법을 따라 농사를 짓는다. 할아버지가 곁에 서서 잔소리를 해주신다면 얼마나 든든할까 싶은 생각들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고향으로 돌아온 지도 어언 5년째. 농촌과 자연은 나에게 '삶의 여유와 충실감'이라는 소박하면서도 값진 보물을 한아름 안겨주었다. 돌이켜보건대 도시에서의 생활은 단순히 바쁘기만 했던 것 같다. 마치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효율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만 돌아갔다. 그곳에는 삶의 방향성을 스스로 설정할 수 있는 주체성이나 삶의 여유 따위는 없었다.

촌에서의 삶은 여유롭지만 역동적이다. 항상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며 판단해야 할 일이 많다. 한해 계획안에서 수없이 많은 것을 능동적으로 결정하고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

또한 농촌에서의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정성을 들여 씨앗을 뿌리고 햇빛과 물·공기 등을 들여 열매를 맺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바로 농사다. 그 과정이 지난하고 힘들지라도 부모가 자식을 포기하지 않듯, 농사꾼은 밭과 농산물을 포기하지 않고 기다림을 선택한다. 할아버지에게 농산물은 자식이나 진배없었을 터, 쉬운 길을 두고 항상 옳은 길만을 고수했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성실하고 정직한 농사꾼이 되길 바랐던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나 역시 농산물 앞에 부끄러움 없는 진실한 농사꾼이 되어보고자 한다.


   
  [최종편집 : 202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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