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ㆍ울산 울주군 삼남면>
 
   

해마다 6월이 오면 가슴 한쪽에 묵직한 맷돌을 올려놓은 듯 답답함이 엄습해 온다. 시골 일이 늘 그렇듯 시작도 끝도 없이 반복되지만 내게 6월은 남들과 달리 더 짧게만 느껴진다.

시집온 지 올해로 47년.

나는 75세 영감님과 슬하에 1남6녀를 두고 울산광역시 울주군에서 딸부자로 통하며 살고 있다. 배 과수원을 가꾸면서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고 출가시키느라 정신없이 살았다. 40세에 얻은 아들의 짝을 찾아줘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긴 해도 한평생 잘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70세를 바라보는 이 시점에 무슨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안간힘을 쓸까마는 땅이 주는 숙제는 늘 나의 발목을 잡아 특유의 억척스러움을 불러낸다.

올해도 어김없이 6월이 되기 무섭게 까만 혀를 쏙쏙 내밀고 앞다퉈 익어가는 오디는 유난히 바쁜 촌아낙의 손길을 재촉한다. 무릎이 아파 콩밭 매기 어려워 1322㎡(약 400평) 남짓 되는 밭에 오디 묘목을 심었더니 한해 두해 쏟아지는 오디가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다. 그저 자식들을 배불리 먹이고, 고혈압·당뇨가 있는 영감과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려고 심어둔 오디다.

서로 다정히 둘러앉아 자라는 오디를 보며 내 자식들이 밥상 앞에 앉아 된장찌개를 나눠 먹던 모습이 생각나 가만히 웃으며 쳐다본다. 그 시절 종갓집 종부로 시집와서 딸만 여섯을 낳았으니 시할머니를 비롯한 시댁 식구들 눈치에 자식들 한 번 제대로 안아보지 못하고 죽어라 일만 했었다. 당시의 알싸한 추억이 되살아나 이내 “이 오디년!” 하고 욕이 나왔다. 그때는 다 그렇게 살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과거의 억척스러움이 오늘날 나를 세우는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애꿎은 오디에 한바탕 욕을 퍼붓고 나면 힘이 불끈 솟는다.

날이 좋아 그런지 올해는 5월26일부터 오디 수확을 시작했다. 배 포장, 마늘·양파 캐기 등 할 일이 지천으로 널렸는데 이 오디란 년은 하루하루 말갛게 단장하고 달려 있어 따지 않을 수도 없다. 수북수북 쌓여가는 오디 덕에 나도 모르게 흥이 나 콧노래가 나온다.

일손이 부족한 것을 아는 딸들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거의 매일 출근 도장을 찍고, 일하느라 바쁜 다른 딸들은 주문을 받아 따 놓은 오디를 팔아준다. 또 경북 경산에서 직장을 다니는 아들은 주말에 꼬박꼬박 내려와 누나·매형 사이에서 제 몫을 하느라 안간힘을 쓴다. 어디 그뿐인가. 손자·손녀가 와서 맨손으로 딴 오디를 먹고 새까맣게 변한 입으로 재롱을 부리는 모습을 보면 피로가 싹 풀린다. 모기가 여린 살을 퉁퉁 붓게 해도 뭐가 그리 재밌는지 강아지마냥 온 밭을 뛰어다니며 한바탕 놀고 간다.

몇년 전에는 초등학교 3학년이던 손녀가 친구들을 데려와 농촌체험을 하고 간 적이 있다. 오디를 처음 따보는 초보 농사꾼들이라 여기저기 오디를 주물러놔 상품성이 떨어졌다. 마음 같아서는 혼을 내고 싶었지만 도시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래서 오디로 잼을 만들었는데 처음치고는 제법 잘 만들어져 생물보다 더 오래 보관할 수 있었다.

그 꼬맹이 손님들은 해마다 찾아와 일을 도와주고 간다. 예전보다 능숙하게 오디를 따서 한가득 품삯으로 챙겨주면 의젓하게 인사할 줄 아는 최연소 손님들이다.

오디농사의 가장 큰 문제는 생산과 소비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날은 주문량이 밀려 새벽부터 밭에서 살아야 하고, 또 어떤 날은 생산량이 많아 다 못 팔고 보관도 힘들다. 그럴 땐 동네를 누비며 인심을 쓴다. 이런 나의 모습을 닮은 딸들은 오디를 자기 돈으로 사서 여기저기 인심을 쓰는지, 오디 남는다는 전화 한통이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내 앞에 놓인 숙제를 해결한다.

“이 오디년이 내 딸까지 잡네.”

올해는 800㎏ 정도의 오디를 수확했다. 농약을 치지 않고, 비료 대신 커피 찌꺼기를 나무 밑에 뿌려 키운 것치곤 풍년이다. 내 자식들 입에 넣어줄 생각에 시작한 농사라 친환경을 고집했다.

사돈처녀의 커피집에서 받은 커피 찌꺼기를 쓴 것이 고작인데 오디가 주인을 닮아 그런지 억척스럽게도 잘 자랐다. 한해는 영감님 몸이 좋지 않아 비료를 뿌렸더니 오히려 병이 생겨 농사를 망친 적도 있다. 힘은 좀 들지만, 이 녀석도 좋은 것만 먹나보다 싶어 친환경거름을 만들어 농사를 짓고 있다. 그래서 우리 집 오디는 ‘커피 먹은 오디’로 통한다.

오디는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금전적인 여유를 안겨주는 것도 좋지만 자식들과 함께 일하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친척·이웃들에게 큰 인심은 아니지만 내 것을 조금씩 나눠줄 수 있어 행복하다.

오디 1㎏이 뭐 그리 큰 선물은 아니겠지만 내가 베푼 선행이 또 다른 선행을 낳으니 이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이웃에게 갈 때는 두 손 가득 오디가 실려 있고 돌아올 때는 완두콩·산딸기·감자·오이 등 이웃의 정을 느낄 수 있는 농산물이 한가득이다.

지난 주말 올해 오디농사를 마무리하고 나서 사위들이 가지치기를 말끔하게 했다. 밭에 가보니 휑뎅그렁했다. 시원섭섭하다고 표현해야 하나. 내 정신을 홀딱 빼놓았던 오디는 흔적도 없었다.

“이 오디년아! 내년에 또 보자.”

   
  [최종편집 : 2018/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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