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ㆍ전북 김제시 백산면>
 
   

저는 2002년 7월5일 한 남자를 소개받고 55일 만에 결혼했습니다. 2년 터울로 삼남매를 낳았고, 시부모님과 함께 시골에 살고 있는 저는 신나는 농부입니다.

결혼과 동시에 대가족이 사는 시집에 들어와 살림을 배웠습니다. 삼남매와 알콩달콩 소소한 행복들을 찾으며 시골살이에 적응해가던 중이었습니다. 하루는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일하시는 어머님과 아버님의 뒤를 따라 사과밭에 갔습니다. 서릿발이 내린 11월초쯤 <후지>를 수확하는 아버님의 손길이 분주하신 듯했습니다. 그래서 도움이 될까 싶어 작은 운반차를 운전했습니다. 그럼 아버님은 잘 익은 사과를 따놓은 플라스틱 상자를 운반차에 실었습니다. 운반차가 가득 차면 1t 트럭에 실어 집 앞으로 옮기고, 집 앞 선별장에서 선별을 마친 사과를 저온저장고로 옮깁니다. 그래서 이듬해 4~5월까지 집에서 판매하는 것이 우리의 출하 시스템이었습니다.

그런데 운반차 운전만 해달라는 아버님 말씀에 그렇게 하다보니 저는 시간이 남았는데 아버님은 시간에 쫓기더군요. 그래서 한상자를 들어봤습니다. ‘어라? 들만하네?’ 그때 이후 저는 아버님과 같이 사과를 수확하고 선별 후 저온저장고에 옮겨 10단으로 쌓아 올리는 작업까지 능숙하게 합니다. 그렇게 몇해를 하다보니 힘이 들어 아버님께 지게차를 구입하자고 청했습니다. 처음에는 “뭔 지게차를 사느냐”며 불호령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에 수확량이 엄청나게 늘어 아버님께는 여쭤보지도 않고 지게차를 수확기 한달간만 빌렸습니다.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이라도 한 듯 저는 2008년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을 취득했지요. 아버님은 농기계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부터 삽질과 지게질로 모든 농사일을 하셨습니다. 아버님은 해오신 대로만 해야 농사를 잘 짓는다고 생각하시는지 기계 도움을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한달 동안 지게차를 사용하니 집안이 평화로워졌습니다. 지게차 덕분에 아이들과 놀 시간도 많아지고 피곤한 몸을 쉬어가며 일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덜 힘들게 사과를 정리하고 가족의 화목까지 끌어냈으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하리오.

이듬해 봄이었습니다. 아버님이 사과나무 옮기는 작업을 함께하자며 삽을 챙기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미니 포클레인을 끌고 밭으로 갔습니다. 그 전부터 모든 작업을 삽으로 하시는 아버님을 보며 ‘나도 아버님 따라 삽질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 겁이 났었습니다. 그래서 2008년 지게차운전기능사 자격증을 따기 전에 굴착기운전기능사 자격을 먼저 취득했답니다. 사과나무를 옮겨 심을 곳을 포클레인으로 파고, 그곳에 새로운 나무를 심으니 일이 수월해졌습니다. 또 아버님이 저에게 사과밭의 배수로 정비작업을 하자시더군요. 남편에 비해 작업하는 게 서툰데도 아버님 말씀을 잘 따라주니 같이 일할 마음이 나셨나봅니다. 30m 길이 정도의 사과밭 고랑을 파서 유공관을 묻는 작업은 일주일 넘게 걸렸지만, 그래도 아버님의 인내와 저의 끈기로 작업은 잘 마무리됐답니다. 아버님은 제가 한번도 해보지 못한 일들을 하나씩 주며 농사기술들을 업데이트시켜주셨습니다. 지금은 간단한 기계 수리 정도는 혼자서도 잘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저를 발견하는 기회였습니다.

농사지은 사과를 전량 집에서 팔다보니 수시로 손님들이 찾아옵니다. 30년 이상 한자리에서 판매했으니 단골이 대부분입니다. 전북 익산에서 버스를 타고 왔다는 분, 어릴 적부터 엄마가 사다주는 사과를 맛있게 먹었다며 노모를 모시고 방문한 분, 딸이 결혼해서 임신을 했는데 이 집 사과만 찾는다며 딸에게 갖다주려고 왔다는 분…. 다양한 사연을 갖고 방문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듯 사과 한상자가 손님 한분 한분에게 기쁨과 행복을 전하는 것 같아 힘든 농사일이 뿌듯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글솜씨는 없지만 언젠가 고객들과의 이야기를 엮어서 책을 써보고 싶을 정도입니다. 저는 고객들을 만날 때마다 설렙니다.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소통하는 고객들 덕분에 저는 더욱 신나는 농부입니다.

많은 고객들의 문의사항 중 하나가 우리 동네에서 나오는 농작물을 구입하고 싶다는 겁니다. 배추·고추·감자·옥수수·참깨·들깨·콩 등등 품목도 다양합니다. 우리 집 사과를 먹고 우리 동네 농산물을 구입하고 싶다는 고객들이 늘어나는 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동네 농부들과 의견을 모아 얼마 전 ‘우리동네 예술농부 숲속장터’를 열었습니다. 저는 농산물을 만들어내는 농부들이 모두 예술가라고 봅니다. 박물관에 진열해둔 것만이 예술품은 아닙니다.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건강한 농산물은 농부들이 피와 땀·눈물·혼을 불어넣어 탄생시킨 예술작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숲속장터가 건강하고 착한 소비가 이뤄지는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현수막 두개를 걸고 개인 블로그에도 홍보하는 글을 포스팅(게시)하며 많은 분들의 관심을 유도했습니다. 참여한 농부들은 평소보다 20% 할인한 값에 농산물 등을 내놓았고 소비자들은 장터에 와서 필요한 농산물을 구입했습니다.

처음 숲속장터를 진행하다보니 소비자들이 얼마나 찾아올지 걱정이 컸습니다. 그런데 일부 상품은 조기 품절에다가 추가 주문까지 이어졌습니다. 블로그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꾸준히 고객들과 소통하며 자신의 농산물을 소개해야 고객들이 알아주는 것 같습니다.

지역농부들과 힘을 모아 서로의 강점을 살려 정기적으로 ‘숲속장터’를 열고 싶습니다. 나아가 시골에서 활용 가능한 자원들로 다양한 즐길거리들을 제공하고, 플리마켓(flea market·벼룩시장)도 함께 진행하고, 숲속 작은 음악회도 여는 게 신나는 농부의 꿈입니다. 혼자 꾸는 꿈이 아니기에 분명 가능할 겁니다. 이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어디까지 갈지 아직은 모르지만 함께라면 얼마든지 갈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최종편집 : 2018/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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