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ㆍ경북 고령군 운수면>
 
   

우리 부부는 두 아이와 함께 6년 전에 귀농했답니다. 부모님 농사를 물려받은 것도 아니고, 고향으로 돌아간 것도 아니에요. 남편과 제가 젊어서 해온 것은 책상에 앉아 머리 굴리는 일이었으니 농사처럼 몸을 움직여 뭔가를 길러내거나 돌보는 일과는 거리가 멀었지요. 그러니 우리에게 귀농은 맨땅에 들어가 맨몸으로 농사짓기였어요.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 때는 결혼하기 전부터예요. 그 생각이 점점 현실화한 건 서울에서 바쁜 직장생활을 하며 아이를 기르면서부터지요. 행복하기 위해 돈을 버는데 돈을 벌면서 지치기만 하고 정말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작 소중한 내 삶과 가족을 잃어가는 생활 말고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는 농사가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멋진 일이라 여겼고, 농부가 되기로 했어요. 그러니 농사도 당연히 착하게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우리에게 농사란 친환경농법으로 짓는다는 것과 똑같은 뜻이었어요.

무화과라는 작물을 선택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에요. 다른 작물보다 병충해가 적어 친환경농법으로 짓기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참 세상일이란 게 어쩜 그리 생각대로 잘되지 않는 걸까요? 무화과나무를 심고 난 이듬해부터 큰일이 터졌어요. 맨 처음 2975㎡(900평) 땅을 빌려 나무 심고 겨울을 났는데 뿌리가 모두 얼어버린 거예요. 그렇다고 나무를 죄다 뽑아버리고 새로운 작물을 재배할 수 없어서 나무가 심어진 데다가 부랴부랴 파이프를 꽂고 비닐을 씌웠답니다.

그래도 우리가 맞닥뜨린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애를 썼어요. 생선액비를 만들겠다고 먼 도매시장까지 가서 냉동생선들을 한트럭 싣고 오는 일도 몇번 했어요. 바쁜 농사일을 마치고 액비 만드는 작업을 하는데 냄새는 나지요, 핏물은 뚝뚝 흐르지요, 동네 고양이들은 생선 냄새 맡고 자꾸 모여들지요. 그렇게 정신없이 친환경유용미생물과 미생물의 밥이 될 설탕·해초가루까지 넣어 생선 아미노산 액비를 만들어놓았답니다.

그렇게 아등바등 애를 썼는데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나무도 아프지 않게 잘 자랐고 괜한 벌레도 달라붙지 않았다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속상하고 때론 눈물도 흘렸다고 하면 그럭저럭 대답이 될까요? 몸이 힘들고 돈이 들더라도 수익이 높다면 괜찮겠지요. 그런데 친환경농법을 해보니 벌레피해가 커 관행농법보다 수확량이 떨어져요. 벌레피해로 때깔 좋고 크기가 큰 열매가 나오기도 어렵고요.

판매 첫해에 도매시장에 물건을 내러갔는데 노린재피해가 있는 걸 보고는 상인이 받아주지도 않고 그냥 가져가라고 하기에 얼마나 화가 나던지요. 그저 겉모양만 보고 우리가 애써 키운 걸 이렇게 내칠 수가 있나 싶었어요. 그 일 덕분에 우리를 믿고 사주는 단골고객을 만들어야겠다고 독한 마음을 먹었어요.

2017년에는 벌레피해가 유독 심했어요. 비닐하우스 다섯개 동 가운데 두개 동에 벌레피해가 생겨서 선별작업을 하면서 3분의 1을 버리기도 했어요. 당연히 수익도 기대 이하였지요. 하루는 택배를 갖다주고 작업장에 들어오는 남편을 보는데 “친환경이니 무농약이니, 그만하자”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어요.

그렇게 목까지 올라온 말이 머릿속에서 뱅뱅 맴돌았어요. 열매를 따는 넉달 동안 얼굴이 펴지지도 않았고 벌레피해 본 열매를 작업장으로 들고 들어오는 남편의 고집스러운 얼굴도 보기 싫었어요. 그러다가 수확기가 다 끝나갈 무렵 남편한테 벼르던 말을 하고 말았어요.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던 남편이 뭐라고 한 줄 아세요? “친환경으로 짓지 말자고? 그건 농사짓지 말자는 소린데?” 아, 고집불통 이 남자. 젊었을 적엔 저 고집이 마음에 들었었는데 내가 내 발등을 찍었어요.

그런데 마음속 거친 말을 내뱉고 나면 내 속이라도 후련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밤에 괜히 잠까지 뒤척이고서 다음날 오후 늦게 직거래 고객에게서 문자메시지를 하나 받았어요. ‘말린 무화과도 같이 보내주시고 매번 이렇게 신경 써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가격이 조금 비싸긴 하지만 무화과는 껍질째 먹는 과일이니 믿고 먹을 수 있는 데서 사야 할 것 같아요. 앞으로도 단골로 이어갈게요.’ 고객이 보낸 문자메시지를 읽고 또 읽었어요. ‘믿고 먹을 수 있는 데’라는 말이 마음에 새겨졌어요.

정말로 모든 근심이 날아가버리는 것 같았어요. 사실은 아주 대단한 뭔가가 있어야 하지는 않았지요. 우리 마음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바로 힘이 났어요. ‘힘들어서 눈물이 날 때도 있지만 가슴 뭉클하게 힘이 날 때도 있구나’라고 생각하니 힘들다고 툴툴거렸던 게 부끄럽게 생각됐어요.

아직도 ‘농사가 세상에서 가장 착한 일’이라는 생각은 변함없어요. 농사가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기만 하다면 우리 생각을 지키기 힘들지도 몰라요. 농촌현실 한가운데서 우리가 부딪치고 깨지면서 깨달은 점 한가지가 있어요. 농사를 지으려고 마음먹었을 때 우리가 처음 가졌던 생각을 잃는다면 모든 게 흔들린다는 거예요.

솔직히 힘들긴 해요. 하지만 조금 천천히 가자고 생각하니 괜찮아요. 또 우리뿐만 아니라 친환경농사를 짓는 분들이 모두 애쓰고 있다는 걸 아니까 서로 위로가 돼요. 또 다르게도 생각해봐요. 우리가 돈은 좀 덜 벌었을지 몰라도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얻었으니 다른 어떤 농부보다 더 부자인 게 아니냐고 말이에요.

5년 정도 지나 우리 이야기를 다시 쓸 때쯤에는 우리의 땀이 눈에 보이는 결실로도 남게 되리라 생각해요. 땀은 배신하지 않고 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우리는 땀과 땅을 믿어요. 또 그런 우리를 믿어주는 이들도 있어요. 그 믿음이 거름이 될 거예요. 우리는 착하게 농사짓고,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농사꾼이 되고 싶어요. 그 첫 마음을 잊지 않을 거예요.

   
  [최종편집 : 2018/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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