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경남 함양군 병곡면>
 
   

“에미야, 아직도 자냐?” 아침마다 나를 깨우는 알람이다. 산이 많은 네팔에서 태어났지만 농사일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선 새벽 5시에 일어나기가 무지 힘들다. 하지만 시어머니 목소리에 어쩔 수 없이 깬다. 알람처럼 끌 수 있으면 끄고 10분만이라도 더 자고 싶지만 난 예의바르게 대답한다. “네, 어머니. 지금 나가요.”

고향과 다른 환경, 다른 문화에 뿌리내리려고 노력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 됐다. 그동안의 생활에 기쁨과 슬픈 일들이 많았다. 특히 시어머니와 의 에피소드는 한두개가 아니다.

●시어머니와 첫 만남
네팔 공항에서 비행기 타기 전 친정엄마가 어떻게 인사를 해야 시어머니 마음에 쏙 들 수 있는지 알려주셨다. 시댁에 도착해 어머니를 보자마자 친정엄마에게 배운 대로 네팔식으로 인사를 하려 하자 시어머니는 놀라 소리를 지르셨다. 네팔에서는 며느리가 머리에 수건을 얹고 시어머니의 두 발을 잡고 머리를 숙여 발에 닿게 인사를 한다. 나도 어머니의 두 발을 잡고 인사를 하려 했는데, 어머니는 놀라 “어머, 깜작이야” 하며 발을 빼려다 뒤로 넘어지셨다.

●시어머니가 여러명
신혼 초, 남편이 오일장을 구경시켜주겠다고 해서 같이 갔다. 시장에서 동그란 얼굴에 뽀글뽀글 파마를 하고 배바지를 입은 시어머니를 만났다. 난 머리 숙여 한국어로 “안녕하세요, 어머니” 하고 인사했다. 시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예쁘네” 하며 지나가셨다. 몇걸음 걷다가 또다시 시어머니를 만났다. 이번에도 인사를 했다. “아이구, 착해라” 하고 지나가셨다. 조금 더 가서 시어머니를 또 만났다. “아이구, 인사도 잘하네” 하고 지나가셨다.

시장구경 내내 시어머니를 여러번 만나 인사를 했는데 남편은 옆에서 웃기만 했다. 그게 이상해서 “왜요” 하고 물었더니 “아까 만난 분들은 모두 시어머니가 아니다. 한국 할머니들은 머리를 짧게 잘라 파마를 하며 배바지를 많이 입는다”고 했다. 모두 시어머니와 비슷해 보여 모르는 사람한테 인사를 하고 다녔던 것이다. 조금 창피스러웠다.

시장구경 후 남편이 장사하는 가게에 도착하니 거기에도 시어머니가 계셨다. 이번에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 할머니는 화가 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숨을 크게 내쉬더니 “아이구” 하면서 가게 문을 탁 닫고 나가셨다. 이번에는 진짜 시어머니였다.

●목욕탕에서 도망치다
네팔에서는 ‘내 몸은 나만 본다’는 문화 때문에 다른 사람 앞에서 옷을 벗지 않는다. 목욕도 혼자 한다. 이런 문화에서 자란 나에게 처음 간 한국 목욕탕은 끔찍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놀란 토끼 벼랑바위 쳐다보듯 서 있었다. 시어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옷을 벗고 나를 쳐다보며 “옷 안 벗고 뭐하노” 하셨다. 나는 제발 이 순간이 꿈이었으면 싶었다. 초등학교 졸업 후 친정엄마 앞에서도 옷을 벗어본 적이 없는데 시어머니 앞에서 옷을…. 어떡하지? 난 목욕탕에서 도망쳤다. 그 후 10년이 지난 지금도 시어머니는 같이 목욕탕 가자는 소리를 안 하신다.

●쇠고기와 뱀 ‘선물’
한번은 어머니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고기반찬을 들고 우리 집으로 오셨다. 남편에게 무슨 고기인지 물었더니 ‘쇠고기’라고 했다. 순간 깜작 놀라 들고 있던 통을 떨어뜨렸다. 네팔은 힌두교 나라라서 쇠고기를 먹지 않는다.

어머니가 뭘 좋아하냐고 물었다. 생선과 닭고기를 좋아한다고 하자 어머니는 시장으로 향했다. 한참 뒤에 남편이 어머니가 준 선물이라며 봉투 하나를 주고 갔다. 나는 분명히 내가 좋아하는 생선과 닭고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봉투를 열어보니 ‘뱀’이 들어 있었다. 난 소릴 지르며 봉투를 던져버렸다. 그 순간 시어머니가 너무 미웠다. 그동안 내가 속상하게 해서 이런 선물을 주셨나?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뱀을?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은 뱀이 아니라 몸에 좋은 장어라는 물고기였다.

●슈퍼농사우먼 시어머니
영화에 슈퍼우먼이 있다면 우리 집에는 슈퍼농사우먼이 있다. 바로 시어머니다. 우리 가족은 매실·알밤·단감 농사를 짓는다. 수확시기엔 어머니의 손이 엄청 빨리 움직인다. 비교를 하자면 어머니는 KTX 속도고, 나는 무궁화호 속도로 일한다.

나에게 공포의 일은 ‘알밤’ 줍기다. 알밤 수확시기에는 나도 모르게 병든 닭으로 변한다. 내가 가시 덮인 알밤을 양발로 밟고 천천히 집게로 꺼내는 동안 시어머니는 겁도 없이 손으로 알밤을 척척 꺼내며 KTX처럼 지나간다.

●며느리 생일만큼은
우리 시어머니만큼 며느리 생일을 알뜰히 챙겨주는 분도 드물 것이다. 이제는 정신이 오락가락할 나이인데도 며느리가 머나먼 나라에서 시집와 고생이 많다며 어머니는 지난 10년 동안 5월만 되면 “얘야, 생일이 며칠이니”라고 물어보신다. 5월이 생일이란 건 기억하시는데 며칠인지 기억은 못하신다. 이럴 땐 시어머니가 너무 사랑스럽다.

●모국을 잊어라
시어머니가 항상 사랑스러운 건 아니다.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못 사는 나라 사람이라서 국제결혼을 한다고 생각하신다. 늘 “니네 나라에 쌀 있냐? 뭐 먹고 사노” “우리 집에 있는 안 입는 옷, 친정에 보내줄래”라고 하시는데, 그럴 땐 마음이 진짜 아프다.

그리고 어머니 앞에선 모국어를 못 쓴다. “다른 나라로 시집을 왔으면 그 나라 말을 해야지 버리고 온 나라 말을 왜 하냐? 두개 언어를 사용하면 아이들이 헷갈린다”며 쓰지 말라고 한다. “지금은 다문화시대이고 이제는 여러 나라 문화와 언어를 알아야 한다”고 하면 어머니는 갑자기 얼굴색이 변해 아랫입술을 깨물고 나를 쳐다보신다. 그 순간이 나에게는 공포의 순간이다. 왜냐면 어머니가 던지는 말들이 총알처럼 내 가슴에 박혀 나를 아프게 하니까.

●상한 마음 맛난 음식으로 보상
결혼 초의 순간들을 떠올리면 시어머니 때문에 가슴 아프고 힘든 날들도 있었지만 재미있고 좋았던 추억도 적지 않다. 먼저 내 마음을 상하게 해놓고 또 며칠 지나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사들고 오시는 시어머니.

무서운 선생님처럼 보이지만 속은 그렇지 않은 시어머니가 계셨기에 나는 이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100% 만족스러운 며느리는 아니지만 늘 최선을 다하고 착하고 멋지고 당당한 며느리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최종편집 : 2017/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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