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경남 창녕군 대지면>
 
   

 제이름은 사오반디, 캄보디아에서 왔습니다. 저의 고향은 캄보디아의 크로잭이라는 작은 마을입니다.

 저는 2남 6녀 중 셋째로 태어났습니다. 형제들이 많고 부모님도 편찮으셔서 가정형편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마을의 아는 집에서 보모로 일찍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보모일은 너무너무 힘들었고 월급도 한국에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적었습니다. 그러던 중 이웃의 누군가가 한국에 시집을 가면 잘살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2007년 지금의 남편 민준이 아빠를 만나 한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여름은 캄보디아보다 무척 더워요. 캄보디아에선 습한 기운이 없어 그렇게 더운 줄 모르고 살았는데 한국의 여름은 너무 습해요. 또 처음에는 외롭고 힘들어 캄보디아로 돌아가고 싶어서 많이도 울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저의 큰 희망인 민준이를 낳고 키우며 농장일을 하면서 적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제일 사랑하는 저의 남편은 아담한 체구에 귀여운 인상입니다. 그에 반해 성질은 매우 급하고 화도 잘 내며 무슨 일이든 빨리빨리 합니다. 남편과 사는 것은 매일매일 전쟁처럼 지나가는 것 같아요. 캄보디아에서는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되고, 쉬어가며 천천히 하면서 몸이 힘들지 않도록 합니다. 하지만 남편의 급한 성질로 인해 저는 ‘빨리빨리’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번씩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도 이제는 빨리빨리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우리 가족을 소개하자면 이웃에 살고 계신 여든이 넘은 시어머니, 내가 낳지는 않았지만 고등학교에 다니는 큰아들, 지금 어린이집에 다니는 작은아들 민준이와 남편 모두 다섯 식구입니다.

 캄보디아에선 온 가족이 나무집에서 생활하였습니다. 형제자매들은 모두 성장해 결혼을 하고 분가하여 각자의 가정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제가 시집온 지 3년 만에 돌아가셨습니다. 일이 바빠 가보지도 못해 너무 슬퍼서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슬픔도 잠시였습니다. 저희 부부가 짓고 있는 농장 규모가 커서 일을 거들어주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저희 부부의 농장 규모는 마늘밭 5㏊(1만5000평)와 가지를 재배하는 비닐하우스 1㏊(3000평)입니다.

 남편은 농사 욕심이 많고, 일도 부지런하게 잘합니다.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저와 남편을 포함하여 6명인데 매일매일 쉬는 날도 없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을 합니다. 저는 막내아들을 어린이집에 보낸 뒤 가지농장에서 오전 8시 30분부터 끝이 안 보이는 선별작업을 도와줍니다. 가지는 날씨에 따라 수확하는 양이 달라지는데, 햇빛이 좋은 날에는 수확량이 많아 밤늦도록 선별작업을 합니다. 크기와 색깔 등을 고려하여 특품과 상·중·하 등 4단계로 나누어 선별, 포장한답니다. 그리고 짬짬이 집안일도 해야 하는데 농번기에는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힘이 듭니다. 요즘에는 하우스 안의 온도가 무려 58℃까지 올라서 힘들어요. 그래도 질 좋은 농산물을 길러내어 경매를 해 돈이 많이 들어오면 힘든 것도 잊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남편은 이 돈으로 매년 가지농장을 확장합니다. 캄보디아에서는 보지도 못한 큰 트랙터와 마늘 수확기, 신기한 새로운 농기계도 계속 구입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마늘 값이 괜찮아 기분이 좋아요. 지난해보다는 조금 못해도 올해는 농사가 잘되어 수확량이 늘어난 것 같아요.

 농사 규모가 커서 처음 시집올 때 저희 집에서 일했던 아주머니들이 지금도 옵니다. 김해·장유·부산 등지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일하러 와요. 그런데 일을 잘 안 하는 것 같아요. 일당이 10만원이 넘는데 너무 속상해요. 하지만 신랑은 늘 이렇게 말해요.

 “저분들이 우리집에서 15년째 일을 도와주고 있다.”

 그러면서 늘 아주머니들 편이에요.

 이런 불만도 있지만 기분 좋은 일도 있답니다. 우리가 사는 집을 새로 지을 계획이에요. 저는 캄보디아에서 꿈꾸던 궁전 같은 큰 집을 짓고 싶어요. 얼마 전 남편이 설계사무소에서 가져온 도면을 보여주었는데 잘 모르긴 하지만 완성되면 크고 좋은 집이 될 것 같아요. 남편은 마늘을 다 팔고 나면 창녕에서 제일 예쁜 집을 짓는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저는 어떤 집을 지을지 정말 궁금해요.

 남편은 일을 하는 중에 일이 빨리 되지 않는다고 고함을 지르고 짜증을 낼 때도 있지만 잔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특히 캄보디아의 우리 친정을 많이 도와주어 고맙게 생각합니다.

 지난해에는 캄보디아에서 담석증으로 고생하는 여동생의 소식을 듣고는 한국으로 불러 큰 병원에 가서 검사와 치료를 받게 해주었습니다. 치료비가 많이 나와 남편이 거의 부담하였지만 여동생의 이런 사정을 알고 주변분들도 도와주었습니다. 동생의 병은 한국에서는 큰 병이 아니지만 캄보디아에서는 수술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참으며 지냈습니다. 의사 선생님 말로는 조금만 늦게 왔더라면 아마도 위험했을 거라고 하더군요. 동생은 치료를 잘 받고 현재는 건강한 몸으로 저와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부모님도 동생 때문에 한국에 들어와 같이 생활하다가 얼마 전 저희 아버지가 여권이 만료되어 캄보디아 고향에 돌아갔어요.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는데 너무 기뻤어요. 아무런 탈 없이 한국에 있다가 돌아갔으니까요. 그런데 이제 캄보디아가 그렇게 멀게 안 느껴져요. 핸드폰으로 매일매일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니까요. 8월 말쯤 둘째 아들 민준이와 친정에 잠시 다녀올 생각입니다. 우리 가족들에게 민준이를 자랑하고 싶거든요. 5년 만에 친정 나들이를 하려고 하니 무척 기뻐요.

 남편은 얼마 전엔 친정에 소도 몇마리 사주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우리집을 짓고 나면 내년에는 캄보디아의 친정집을 지어준다고 합니다.

 친정 조카들도 한국에 와서 유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합니다. 이렇게 우리 가족과 친정을 생각하는 남편을 볼 때는 고마울 때가 많지만 일이 너무 힘들어 밉기도 해요.

 며칠 전에는 남편과 심하게 싸웠습니다. 남편은 불쌍한 사람을 보면 그냥 있지 못해요. 저녁도 사주고 옷도 사줘요. 다문화가족 친구들에게 술도 자주 사주고 자기도 같이 마십니다. 그래서 미울 때가 있어요.

 그러나 저의 큰 걱정은 남편이 농장일을 하면서 힘든 일을 잊고자 과음하는 것과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빨리빨리 하고자 하는 성격으로 너무 많은 일을 해 건강을 해칠까 하는 것입니다. 아직 막내아들이 어리니까요.

 저에게는 소원이 있습니다. 아직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했거든요. 그동안 일 하느라 시간이 없었어요. 그런데 민준이가 커가는 걸 보니 부끄러운 엄마가 될까 봐 걱정입니다. 내년에는 국적을 취득해 당당한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또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유도선수 생활을 하는 큰아들이 열심히 하여 국가대표선수가 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것을 보고 싶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제이지만 우애 있게 잘 자라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처럼 아무런 탈 없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꼭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갈 것입니다.

 오늘 또 가지 하우스에서 일하려고 하니 얼마나 더울까 걱정이 앞서네요. 그래도 이렇게 고생하면 내년에는 더욱 잘살게 되겠지요. 매일매일 희망을 갖고 사니까 힘들어도 재미있어요.

   
  [최종편집 : 201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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