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2013년 2월25일, 서울 여의도에서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이 열리던 그 시각. 저는 작은 보따리 몇개를 트렁크에 집어넣고 30년 동안 정들었던 경기 안양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몇시간 뒤,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에 위치한 태화산 자락에 도착해 얼어붙은 땅 위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저의 인생 후반전, 아니 두번째 새로운 인생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귀농을 결심한 것은 도시에서의 삶이 막막해서가 아니었습니다. 20여년간 농업 관련 기관에 종사하면서 농촌에서의 삶이 도시보다 더 가치 있을 것이라 믿었고, 그 믿음을 제가 직접 실천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혈혈단신으로 먼저 내려왔습니다.

 귀농을 준비하면서 저는 재배작목으로 와송을 선택했습니다. 당시 최고의 항암식물로 각광받고 있는데다 재배하기도 쉬워 저와 같은 귀농인에게 적합하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그래서 집을 짓는 것과 동시에 밭을 일궈 와송을 심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집 옆의 계곡 주변에서 ‘어수리’라는 나물을 만난 뒤였습니다.

 “이게 어수린데 전을 부쳐 먹으면 맛이 그만이야.”

 집구경을 오신 마을 어르신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을 때 제 머릿속에는 짜릿한 전율이 흘렀습니다. ‘어수리? 임금 어(御), 드릴 수(授)? 임금님께 드리는 나물? 그렇다면 진상나물?’

 그때부터 저는 어수리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을 뒤져 관련 자료를 찾아 읽었고, 산채연구소·농업기술센터 등을 찾아다니며 재배현황이나 기술동향 등을 파악했습니다. 한편으로는 근처에 있는 나물을 뜯어다가 이런저런 음식을 만들어 시식하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도 대접하며 반응을 살폈습니다.

 그렇게 두어달 동안 점검을 하고 나서 저는 쾌재를 불렀습니다. 맛이나 기능 등 모든 면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뛰어나고, 개발 가능성 또한 크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예상대로 어수리는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던 진상나물로, 피를 맑게 하고 당뇨·비만에도 좋다고 <동의보감>에 기록돼 있었습니다. 그런데다 향이 좋아 나물밥을 지어 먹으면 맛이 있고, 고기를 먹을 때 생채로 쌈을 싸 먹어도 그만이었습니다. 또한 전이나 무침·장아찌·물김치 등 다양한 반찬으로도 활용이 가능했습니다. ‘왕삼’이라 불리는 뿌리는 한방에서 풍과 통증을 치료하는 약재로 쓰고 있었습니다. 잎에서 뿌리까지 무엇 하나 버릴 게 없고, 다양한 음식에 두루 활용할 수 있는 그야말로 만능이었습니다. 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어수리로 주작목을 바꿨습니다.

 귀농 당시부터 저는 6차산업을 목표로 했습니다. 어수리를 이용해 어떤 상품을 만들고, 그것을 어떻게 6차산업으로 확대할 것인가가 고민이었습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어수리밥상’이었습니다. 어수리를 이용한 밥과 반찬으로 밥상을 차리고, 그것을 김삿갓면 나아가 영월군의 특화음식으로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어수리로 밥상을 차리면 영월만의 특화음식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접 만들어 먹어본 어수리나물밥과 장국을 주메뉴로 하고, 어수리 수육·어수리 장아찌·어수리 떡·어수리 잡채·어수리 물김치 등을 부메뉴와 반찬으로 하면 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정하니 시급한 것이 레시피 개발이었습니다. 때마침 김삿갓면에서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음식교육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활용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교육 관계자와 협의, 어수리 음식을 집중 개발했습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함께 노력한 끝에 어수리를 이용한 밥과 반찬으로 차리는 어수리밥상을 완성했습니다.

 저는 레시피 개발과 함께 스토리텔링 발굴에 나섰습니다. 이 마을 저 마을로 나이 드신 어르신들을 찾아다니며 어수리의 유래나 전해오는 이야기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마을에서 단종 임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영월로 귀양 오신 단종 임금께서 많이 드셨다’는 이야기를 어릴 적에 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바로 이거다!” 저는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질렀습니다. 어르신 말씀처럼 단종 임금과 어수리를 연결시키면 자연스럽고 사람들의 감성도 자극할 수 있는 애틋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았습니다.

 “단종 임금이 삼촌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머나먼 이곳 영월 땅으로 귀양 왔을 때, 영월 백성들이 단종 임금께 드리던 나물이다. 그래서 ‘어수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애틋한 어수리의 유래는 그렇게 만들어졌고, 그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매년 열리는 단종제 행사 때 어수리나물밥을 시식 판매하면서 그러한 스토리도 함께 홍보하고 있습니다. 또한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매체를 통해 어수리와 단종과 영월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마케팅 활동도 활발히 전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생산만 하기에도 벅찬 농민의 입장에서 가공과 체험까지 연계한 6차산업을 혼자 다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지역주민들과 교류하면서 협동조합 설립을 추진했습니다. 2014년 4월 지역주민 10명이 모여 김삿갓협동조합을 설립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지역에서 많이 생산되는 나물과 잡곡 등을 가공하고 소포장해 새로운 계절상품을 만들었습니다. 봄에는 어수리를 비롯한 산나물로 건나물세트와 장아찌세트를 만들고, 가을에는 잡곡세트와 오곡밥세트를, 겨울에는 메주에 와송가루를 버무린 와송된장과 청국장 등을 만들었습니다. 올해부터는 여름 상품으로 산딸기를 이용해 건조 산딸기·산딸기 슬러시·산딸기 잼 등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상품 생산과 더불어 추진하고 있는 또 하나의 사업이 힐링캠프 조성입니다. 경관이 뛰어난 김삿갓면의 각종 자원을 연계해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 일상에 지친 도시민들에게 휴식과 치유의 시간을 제공하는 사업입니다. 현재 어수리 체험농장, 야생화단지, 트레킹 코스 등 기반시설을 조성하고 정비하는 데 전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고객 마케팅의 방향을 처음부터 ‘관계가 우선인 생비자(생산자와 소비자) 관계’로 정했습니다. 저와 고객과의 관계를, 물건을 사고파는 거래관계가 아니라 서로 알고 정을 나누는 인간관계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거래가 우선이 되면 가격이나 경쟁업체 등 주변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관계가 우선이 되면 그러한 것들에 크게 구애받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서로간의 교류나 유대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그렇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꾸준하고 지속적인 노력으로 신뢰를 확보해야 하는데,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합니다. 그러한 생각에서 저는 귀농 후 제가 하고 있는 일이나 일상생활의 면면들을 <태화산 편지>에 담아 매일 아침 SNS 공간에 올렸습니다. 사진을 곁들이고, 자연과 인생에 대한 저의 생각이나 철학을 담아 깊이를 더했습니다. 그렇게 3년여 동안 쉬지 않고 지속한 결과 지금은 수백명의 카친 페친들과 마음으로 교류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가 올리는 <태화산 편지>는 얼굴도 모르는 네티즌들이 마음을 주고받고 교류하는 사이버상의 사랑방이 되었습니다. 저는 또 그렇게 올린 편지글을 모아 지난해 9월 <태화산 편지>라는 제목의 단행본을 출간했고, 현재는 그 이후의 글들을 모아 <태화산 편지 2>의 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귀농 3년. 뒤돌아보면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동시에 제가 꿈꾸는 새로운 도농교류, 관계가 우선인 생비자(생산자와 소비자) 관계를 정착시키고 뿌리내리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습니다. 그 토대를 바탕으로 이제부터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노력들을 하나하나 펼쳐 나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역점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로 ‘김삿갓 힐링캠프’입니다. 계획이 차질 없이 추진되면 도시민들을 초청해 힐링투어를 운영할 것입니다. 주변에 산재한 수려한 자연자원과 유적지, 박물관 등의 문화자원, 그리고 새로운 향토음식인 어수리밥상 등을 효과적으로 연계함으로써 도시민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치유해주는 명실상부한 힐링캠프로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그와 함께 고객들을 소비자 회원으로 모실 예정입니다. 힐링투어 등을 통해 인연을 맺은 고객들을 연간회원으로 확보하고, 조합의 모든 노력을 이들에게 집중할 것입니다. 한달에 한번씩 주민들이 생산한 제철 농산물과 조합에서 개발한 상품을 묶어 택배로 보내고, 봄과 가을에는 캠프로 초청해 현장체험 등을 함께 진행할 것입니다.

 또 소비자와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조합의 사업이나 운영방안 등을 함께 논의하고 협의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짓는 농사,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운영하는 조합으로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도농교류의 새로운 모델, 농촌마을의 새로운 활로를 함께 열어 나갈 것입니다.

   
  [최종편집 : 2016/08/29]

 
   
농민신문사 홈페이지 메인화면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