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경북 구미시 4공단로>
 
   

 잠을 청하려고 방에 들어가 누웠습니다. 천장을 바라보니 마치 바둑 재미에 빠진 사람들에게 천장이 바둑판으로 보이는 것처럼 ‘내일은 사과를 이렇게 저렇게 접붙여 볼까?’ 하며 다음날 일어나서 해야 할 일이 천장에 펼쳐집니다. 누군가는 잠에서 깨어나 일터로 향하는 것이 고단하다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잠에서 깨어나 과수원으로 향하는 것이 제일 행복합니다.

 20대의 저는 해양대학교에서 항해사를 꿈꾸던, 열정이 넘치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땐 농사꾼이 되어 있는 지금의 제 모습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1984년, 대학교 4학년이 되던 해 갑작스럽게 슬픔이 찾아왔습니다. 집안의 든든한 기둥이던 부친이 돌아가셔서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한창 농번기인데 집안에 농사를 맡아서 할 사람이 없었고, 형님은 교편을 잡고 있어 모든 것을 정리하고 고향에 당장 내려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할 수 없이 학생이던 제가 ‘딱 1년만 농사를 짓고 모든 것을 정리해 내 꿈을 펼치자’는 생각으로 고향에 내려왔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농사였는데, 농사에 미쳐서 제 젊음과 청춘을 바치고 50대가 된 지금도 농사꾼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농업지식과 농사에 대한 체계적인 시스템 없이 농사를 짓다 보니 전문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85년 4-H 활동을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농사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해외 선진지 견학과 농업기술 교육을 통해 안목과 식견을 넓혀나갔습니다. 농사라는 것이 그저 매년 하던 방식대로 짓는 것이 아니라 항상 신기술을 배우고 습득해 자기만의 경쟁력을 가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제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1987년 경북도 농민교육원에서 주최한 제24기 시설채소반 과정을 수료하였습니다. 그후에도 전국 어디든 농업기술 교육이 열리는 곳이라면 만사 제쳐두고 참여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1988년 청도 송서농장에서 농장훈련과정을 이수하고 사과 농사를 전문적으로 지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 결과 1989년 제12회 구미시 4-H 경진대회에서 특작과제 1등을 받았습니다. 1991년에는 농촌진흥청으로부터 영농후계자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처음부터 사과 농사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복숭아를 주로 재배하면서 사과 농사는 일부 지었습니다. 하지만 수확철이 되면 신속하게 따서 출하해야 하는 복숭아의 특성 때문에 저장성이 떨어져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결론은 저장성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저장성이 높은 사과를 주재배로 바꾸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막상 품목을 바꾸려 하니 생각처럼 쉽지 않았고, 두려움도 컸습니다. 큰 모험이라 여길 수 있지만 나름 제가 배웠던 기술과 경험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항상 지원을 아끼지 않은 아내 덕분에 사과 농사에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2.1㏊(약 6500평)의 산지를 개간해 사과 과수원 가꾸기에 매진했습니다. 하지만 사과로 품목을 바꾸고 3년차까지 적자에 허덕였고, 아이들 교육비는 점점 늘어나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때 아내가 직장을 구해 3년 6개월 동안 헌신적으로 경제적인 뒷받침을 해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사과 재배 연구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고, 전국 방방곡곡 성공한 사과 농가를 모두 찾아다녔습니다. 사과 재배에 적합한 기후·강수량 등을 꼼꼼히 농가일지에 기록하고 M26과 M106대목을 개량해 나무 한그루에 여러 품종을 접붙이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4800만원의 소득을 올리게 되었고 사과 농가로 어느 정도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1996년 과수전업농으로 선정돼 2001년 50%의 보조금을 받아 키 낮은 사과 시범사업에 참여해 성공했습니다. 이에 힘입어 2002년에는 M9대목 시범단지로 키 낮은 사과를 재배하였습니다. 그러면서 5년차에 손익분기점을 지났고 지속적인 연구와 노력을 기울인 결과 7년차부터 수익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 경북도농업기술원에서 실시한 ‘농업인 CEO 양성 사과과정’을 이수했고, 2011년 ‘자연을 닮은 사람들’에서 진행하는 초저비용 농업을 위한 ‘천연농약 전문강좌’를 이수해 초저비용 농업기술 설계사로도 인증받았습니다. 또한 구미시 금오산사과연구회에서 활동하면서 친환경으로 농산물우수관리(GAP)인증을 받았습니다. 수익성이 가장 좋았을 때는 매출액이 2억원 정도였고, 현재는 평균 1억4000만원을 올려 성공적인 농업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2011년 농촌진흥청에서 주관한 ‘강소농 경영체 육성을 위한 사과전망 및 생산비 절감기술 심포지엄’에 참여해 경영규모가 작은 농가가 강한 농업경영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품질과 서비스에서 차별화해야 함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구미 인동농협 조합원인 저는 2002년부터 2015년까지 구미시 금전동 영농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농사를 시작하는 조합원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저는 사과 농사의 중점을 재배기술 향상에 두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저의 버팀목인 아내는 판로 개척에 남다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아내는 2012년부터 매년 경북도농업기술원에서 주최한 농업인 e-비즈니스 활성화교육을 이수해 현재 ‘천생산농원’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농사일로 힘들 텐데도 아내는 일을 마치면 컴퓨터 앞에 앉아 블로그에 새로운 내용을 업데이트합니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고객을 관리하고 그들과 진솔한 소통으로 신뢰를 쌓아가는 데 앞장서고 있습니다. 항상 배우려고 노력하는 자세는 ‘부창부수’인 것 같습니다. 더욱이 아내가 운영하는 블로그 덕분에 전국 각지에 입소문이 나서 많은 분들이 저희 농원을 찾아주십니다. 블로그를 찾는 고객들의 사랑에 힘입어 경북도농업기술원장으로부터 농장홍보물 제작부문 우수상도 받았습니다.

 사과 수확철이 되면 저는 아내와 함께 매주 금요일 구미시 금오산에서 열리는 직거래장터를 통해 품질 좋은 사과를 소비자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제 아내는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고 싫은 내색 없이 농사를 재미있게 지으며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고마운 사람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고객에게 천생산농원을 알릴 수 있을까’라는 생각만 하는 아내는 현재 모바일 홈페이지도 선보일 계획이어서 무척 기대가 됩니다.

 이제 저는 2남2녀를 둔 아버지가 되었고, 자녀들도 모두 성인이 되어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흐뭇합니다. 사과 농사에 빠져 신경도 많이 못 써줬는데 속 한번 썩인 적 없이 바르게 자라줘서 저는 정말 행복한 사람입니다. 농사가 힘들다거나 두려워 포기하려는 마음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다면 저는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과 농사라면 언제나 즐거웠듯이 앞으로도 농업인으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행복하고 신나게 농사를 지을 작정입니다.

   
  [최종편집 : 201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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