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전북 고창군 부안면>
 
   

 시간 따라 나도 따라
 여기 같이 왔구나
 어느덧 팔십고개
 내 몸도 굽어지고
 인생의 가을 들녘에
 추수 끝난 빈 들판

 이제 오십줄에 접어든 젊은 내가 보아도 이 시는 정말 감정표현이 탁월하다. 평생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한 촌로가 여든에 가까워지는 자신의 심경을 애잔하게 표현한 것일까. 전북 고창군 부안면 구현마을에 사는 이현기 어르신이 직접 지은 시다. 한낱 농사꾼이 어쩌자고 이런 시를 쓰게 된 것일까.

 나는 2011년 구현마을에 이주해왔다. 마을은 농촌의 남루한 풍경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여태 외지인의 때를 타지 않은 순박해 보이는 마을이면서도 삶의 역동성이 사라진 늙어가는 마을이었다. 어쩌면 그러한 환경이 좋아 이 마을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25가구에 인구수 44명밖에 안 되는 조그마한 마을, 게다가 여느 농촌마을과 마찬가지로 고령화해 65세 이상이 절반을 넘어섰다.

 내가 이 마을에서 몸담고 살고자 들어온 이상 마을이 마냥 늙어가도록 방치하는 것은 젊은 사람으로서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어떤 사명감에 불타는 열혈한 행세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살아 숨쉬는 삶의 새로운 터전인 이 마을이 젊어지고 활력이 넘쳤으면 하는 소박한 꿈을 가졌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 마을사업을 하나 벌여보자는 것이었다. 생애에 걸쳐 농사일만 해왔던 사람들, 먹고 이야기 나누고 하는 일상생활조차 그이들의 감정구조는 늘상 농사일과 연계되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농촌에서 농사짓고 사는 사람들도 새로운 감정의 경험, 삶의 새로운 가치에 눈을 돌려보게 하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의 농경적 삶을 인문적 삶의 가치로 새롭게 들여다보는 일 말이다. 농사꾼들에게 인문적 삶이라고? 미리 말하자면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고, 오히려 그러한 삶을 통해 행복의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었다.

 지인을 통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시행하는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공모사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8개월 동안 30회 정도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업이다. 우리 마을에서는 ‘글쓰는 마을’ 사업을 해보면 좋을 듯했다. 인문학적 소양도 학습해가며 자기 자신들의 생애사나 가족 및 마을의 생활사와 관련된 삶의 이야기들을 글로 직접 표현해보도록 하자는 거창한(?) 취지였다.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삶의 감정들, 남편이나 아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 이야기들을 글이라는 다소 생경한 매체로 표현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공감해보자는 뜻이다. 그리고 성과가 좋으면 마을지로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인접지역 면장을 비롯해 이장·노인회장·새마을지도자 등 몇몇을 우선 모아놓고 사업 제안을 해보니 모두들 좋다고 하였고, 다시 마을 주민들을 모두 모아 총회를 두차례나 열어 사업을 추진하기로 최종 결정하였다. 다행히도 지원한 사업이 선정되었다. 그러나 막상 사전조사를 하니 교육에 참여하겠다는 촌로들 상당수가 아뿔사, 한글 문맹이었다. 미처 생각지도 못한 난제에 직면했다. 한글을 알아야 글을 쓰든가 말든가 할 것 아닌가. 나와 함께 강사 3명을 더 모집해 반을 두개로 나눴다. 한반은 애초 계획대로 글을 쓰는 글쓰기반이었고, 다른 한반은 한글을 배우는 한글반이었다. 글쓰기반은 6명 정도가 참여했는데 모두 할머니들이었고, 한글반은 15명 정도가 참여했는데 남자들과 젊은 아녀자들이었다.

 “편지 왔을 때 넘한테 읽어봐달라고 했을 때 얼마나 챙피했는지 몰라.”

 한글반에 참여하는 할머니들의 감정 토로는 절절했다. 절절한 애환을 뒤로하고 뒤늦게라도 배워본다는 기쁜 마음으로 책상에 앉아 연필을 들었건만 시력과 기억력이 현저히 쇠퇴해 뒤돌아서면 잊어버려 때로는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저걸 언제 다 머릿속에 넣을꼬” “돌아서면 잊어버려”라는 말을 하면서도 열심히 따라 읽고 쓴 할머니들은 한글을 하나하나 터득해갔다. 한글반의 목표는 자기 이름 석자를 쓸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여든다섯의 황순례 할머니는 교육 마지막 날 도화지에 자기 이름 석자를 써놓고 “이름을 쓰니 좋다”며 한참 동안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깊은 감회였을 것이다.

 글쓰기반에 참여하는 어르신들도 간혹 농땡이를 피웠지만 열정적이었다. 그렇게 탄생한 게 이현기 어르신의 자작시다. 마을 사람들은 이미 시인이었다. ‘고추잠자리 / 가을의 우체부인가 / 바삐도 간다’(김영진)와 같은 시나 여러 글들을 많이 남겼다. 나는 마을 분들의 글쓰기 상상력과 표현력을 보면서, 문학적 감수성이 풍부한 민초들임에도 그이들은 왜 역사와 현실 속에서 잊혀져야 했는지 되돌아보았다.

 마을사업으로 진행하다 보니 주민들 전체의 일로 공유되었다. 그렇게 마을 사람들은 선진지 견학이나 벽화작업·마을축제 등을 다함께 할 수 있었다. 글을 못 쓰는 어르신들도 벽화작업을 할 때 밑그림과 채색작업에 함께 참여하였으며, 글쓰기반은 각자 쓴 짧은 하이쿠 시들을, 한글반 역시 한줄 글쓰기한 글들을 벽화에 직접 옮겨 시화를 이루어냈다. 문패가 없던 마을에 문패도 만들어 달았다. ‘생각 또 생각’과 같은 재미있는 가훈들을 집주인들이 생각해내 직접 쓴 것을 문패로 옮기니 아주 예쁘게 만들어졌다. 한글을 모르던 어르신들도 자신들의 필체를 문패에 남겼다.

 2013년에 이어 2015년 우리 마을은 한국문화원연합회에서 주관하는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지원사업에 선정돼 마을공동체 만들기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글쓰는 마을’ 사업이 마을 주민들로 하여금 새로운 경험의 문을 열었다면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사업은 더 나아가 마을공동체 만들기에 주안점을 두었다. 이 사업은 남루한 마을 공간환경을 문화적 공간환경으로 바꿔보자는 것, 즉 마을 담장을 황토담장으로 리모델링하고 곳곳에 마을 이야기를 담은 벽화를 조성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낡고 파손된 흙담과 벽돌담장으로 돼있는 안길 담벽을 흙담 이미지는 보존하는 방식으로, 쾌적하고 정감 있으며 사람사는 냄새가 밴 황토 이미지로 조성할 수 있었다. 안길 공간의 전체적인 이미지 개선을 위해 오랫동안 방치된 폐기물 처리 같은 환경정리와 녹슬고 파손된 철제 대문의 페인팅작업 등을 통해 전체 공간의 흐름을 황토 이미지와 벽화 이미지로 어울리게 배치했다. 사업에 주민 참여가 중요하기 때문에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마을에서 직접 설계하고 자재를 구입해 지역민 보조인력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진행했다.

 벽화작업은 ‘우리 마을 경사났네’ ‘글쓰는 마을’ ‘흙담 이야기’ ‘모내기작업반의 기억’ ‘어르신들의 그림 이야기’ 등 주제별로 나누어 마을 이야기들을 담아냈다. 보는 이들의 이해를 돕고자 벽화마다 이야기를 달았다. 그 가운데 ‘어르신들의 그림 이야기’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 벽화는 벽화를 보는 특별한 맥락을 통해 감상할 수 있다. 벽화는 어린아이들이 제멋대로 표현한 사물의 세계인 양 투박하고 거칠어 보인다. 누구는 이런 게 무슨 그림이냐고 구시렁거리기도 하지만, 어르신들이 평생을 살아온 삶의 세계가 표현됐다. 어르신들이 그린 그림을 작가가 그대로 옮겼다. 김영숙 할머니는 작물 이파리를 그릴 때 손마디가 매우 떨리고 있었고, 그 떨림이 그림에 그대로 표현되었다. 그 떨림은 사물의 세계를 기억 속에서 희미하게 움직이는 몸의 오래된 운율이자 그 희미함을 다시 샘솟게 하는 안간힘의 추상화인 듯하다.’

 ‘글쓰는 마을’과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사업으로 마을이 많이 변했다. 좀더 젊어지고 생동감이 생겼다. 어르신들이 직접 쓴 글과 마을 조사를 거쳐 <글쓰는 마을 구현골 이야기>라는 마을지를 발간할 수 있었다. 낡고 훼손된 마을 안길 공간을 황토담장과 이야기가 있는 벽화 조성으로 쾌적하고 정감있는 문화적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우리 마을에서 지자체의 도움 없이 자발적으로 이 사업을 추진하자 부안면장은 적극 격려해주고 고창군에 예산을 요청해 마을 정비사업을 하도록 지원해주었다. 마을 주민들은 자긍심을 갖게 되었고, 특히 출향한 자녀들은 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마을의 변화에 대해 설왕설래하며 좋아한다.

 농촌 마을이라는 생활공간의 지속성은 결국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마을 사업들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 개선이나 삶의 가치를 재발견하도록 하는 인문학적 의미 부여였다. 사업을 시작한 초기만 해도 마을회의 때 의사소통 과정이 목소리만 크거나 주먹구구식인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마을인문학교육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조금씩 개선돼 갔다. 예전엔 마을이 행정적·관행적인 라인(이장-노인회장-새마을지도자-부녀회장) 중심으로 움직였으나 ‘구현골문화자치회’라는 주민자치조직을 결성해 마을공동체로서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마을 사업을 통해 공동의 관심사나 공적인 관계에 의한 마을공동체라는 개념이 싹트고, 특히 마을 안길 문화공간 조성을 통해서는 공공성 개념이 형성되는 변화를 엿볼 수 있었다.

 올해에는 그 이야기들을 마을 사람들이 직접 참여하는 작은 영화로 만들고 있는 중이다. 감독은 카메라 속에 자꾸 나를 넣으려 한다. 나는 설레발치며 말한다.

 “프레임의 주인공은 마을 사람들이랍니다.”

   
  [최종편집 : 201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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