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경남 거창군 가조면>
 
   

 이제 서른셋. 차세대 농업경영자입니다. 농사를 짓기로, 땅에서 땀 흘리며 살기로 결심한 지 햇수로 8년. 꿈꾸는 글을 쓰고자 이렇게 비 오는 날 마음을 자유롭게 풀어놓아 봅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이화여대를 다니다가 인류사에서 큰 핏줄과 같은 농업의 길로 흘러들어왔습니다. 지인들은 제 선택에 난색을 보였습니다. 아깝다고 했습니다. 물리학과를 다니며 우주와 미립자를 공부했던 저는 이제, 논과 밭에서 사물의 이치를 온몸으로 깨칩니다. 농사를 지을수록 뚜렷이 밝아지는 기쁨과 보람 덕에 이제껏 흔들림 없이 무소의 뿔처럼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많은 사람들이 몇년의 시간을 준비 기간으로 삼아 몸과 마음을 다스리고 여러 군데 살 터전을 살피는 데 반해, 저의 시작은 단순하고 거침이 없었지요. 젊은 시절 집과 땅이 없었기에 몸은 가볍고 뜨거울 수 있었습니다.

 전국구로 거의 매해 남들이 농사짓지 않는 땅을 구해 개간하다시피 밭으로 만들었습니다. 남들이 별로 내키지 않는 허름한 집을 빌어 살면서 빈집을 살 만한 집으로 고치거나 집 짓는 법에 관심을 갖게 되고, 짐이 많지 않아도 넉넉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터득했습니다. 농부라는 천명을 일찍 마주했다는 안도감과 무한한 자연의 보물들은 조금씩 저를 다시 태어나게 했고,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줘 내내 행복했습니다.

 땡볕에 까맣게 익어가며, 전통 농법으로 2000평 정도의 밭을 규모 있게 알뜰히 지어보고자 했습니다. 어둑한 새벽 4~5시부터 볕이 한창 뜨거워지기 전인 11시까지 일하고, 오후 4시부터 7시까지 하루가 빠듯하게…. 애써 힘들이지 않고도 삶이 물처럼 흐르는 듯했습니다. 희한하게도 왠지 태어나기 전부터 오랫동안 꿈꾸던 삶, 그 자체구나 싶었습니다. 현대 문명사회의 대안을 찾아 방황했던 시간은, 지금 저의 귀농이라는 선택에 든든한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저소득층 지역의 공부방 일을 맡게 되면서 도시의 환경오염만큼이나 심각하게 아이들의 영혼이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고 어린 마음들의 상처, 소외, 단절로부터 아이들뿐만 아니라 저 역시 자유롭지 않음을 보았고, 아이들을 올바로 이끄는 길은 스스로가 바로 서야 함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 길이 바로 농부였습니다. ‘논과 밭에서 일하다 죽으면 행복하겠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같은 마음입니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앞으로만 질주하는 시대에 뿌리를 내리고 근본으로 돌아가기란 만만치 않습니다. 저는 전북 임실과 무주, 충남 홍성, 경북 문경, 제주에서 뜻 맞는 지인들과 땅·집을 빌어 농사를 지으며 함께 자립하는 농촌의 미래를 그려 보았습니다. 틈틈이 각지의 대안적인 공동체나 귀농 선배들을 만나러 친구들과 자전거 일주, 도보 여행을 하고 생태적인 삶을 지향하는 청년들과 모임도 만들고, 친환경농업·EM·유기농인증 교육 등 민·관에서 하는 농사 관련 교육을 통해 ‘내가 먹는 것이 나’라는 실질적인 배움을 얻었습니다. 한옥학교 대목수 과정을 통해 옛집의 멋과 맛을 살리는 기술을 익혔고, 적정기술 교육을 통해 난방을 해결할 벽난로 만들기와 태양광에너지 조립, 태양열 조리기 등의 기술을 전수받아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기술과 마음을 익혔습니다.

 20대를 돌아보면 ‘전통 농법과 토종 씨앗을 지키며 깨어 있는 농부’라는 뜻을 세웠고, 정착과 유목 사이에서 정체성을 찾아 나섰다고 봅니다.

 그리고 서른, 제 몸을 땅 삼아 깃든 씨앗을 태에 안고 경남 거창으로 왔습니다. 제주도에서 지인 셋과 함께 반농반어, 농부와 잠녀로 밭과 바당에서 살던 2년 시간을 고이 접었습니다.

 2013년 거창의 밭과 산에서 ‘농부와 약초꾼’이란 업을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많은 산천을 헤매며 자란 약초꾼 남편과 농사짓는 일의 고단함조차 사랑하는 제가 만나 하나가 되었습니다. 장군봉·미녀봉·보해산 등 굵직한 산으로 둘러싸인 가조면 원천마을에서 시부모님과 함께 삽니다. 시부모님과 남편이 터를 일찍이 닦아 놓았기에 보다 부드럽게 스미고 있습니다. 아버님이 약초 일을 20년 가까이 해오시며 철철이 곳곳에 무엇이 나는지 한해살이를 꿴 지혜를 나눠주십니다.

 약초산업은 웰빙 열풍으로 주목받고 있지만, 약초 생산자들의 사정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가 수입품과의 경쟁에서 밀려 손해를 보거나, 외국산이 국산으로 둔갑해 혼용 유통되는 문제 등이 발생했습니다. 저희 부부는 약초산업의 이런 뿌리 깊은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청년농업 창업을 준비해 2013년 사업자등록을 마쳤습니다. 또한 친환경 무농약·농산물우수관리 인증을 받아 소비자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관리하고, 철마다 손수 재배하고 채취하는 수십종의 약초를 블로그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소통하고자 했습니다. 영농일지를 공개하니 소비자들은 믿고 알아주셨습니다. 20년 가업을 잇는 아버님의 노하우와 장인정신의 1차산업이 바탕이 되어 6차산업화가 안정적이고 든든했습니다. 항노화 산업의 발전 추세에 맞게 젊은 감각을 가지고 약초 유통·가공의 6차산업화로 사람들의 면역력 증진에 도움이 되기를 뜻하고 있습니다.

 ‘약(藥)’이란 한자가 ‘치료하다. 사람을 즐겁게(樂) 해주는 풀(艸)’이라는 풀이를 가지고 있듯이 저희도 약초의 대중화에 기여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가까운 중국 사람들에게도 국내산 약초의 우수함을 전하고, 깊은 산을 구해 최대한 그 모습 그대로의 원시림을 지키며 힐링 공간을 만드는 큰 비전을 품었습니다. 거창에 와서는 직접 재배하고 채취한 약용작물을 인터넷 쇼핑몰 홈페이지에 등록·판매해 모은 자본만으로 오롯이 바라던 1000평가량의 밭을 사고, 2013년 농업경영자로 정식 등록했습니다. 임대해 농사짓던 날들이 모여 이제 경자유전, 제 땅을 마련했네요. 꿈만 같더군요. 저희 첫 농지는 묵정밭으로 잡초 씨앗이 많이 퍼져 있는 야생의 환경을 가지고 있어요. 앞으로도 수년간 공을 들여야 하는 땅이지만, 이렇게 인연이 닿아 마냥 고맙습니다.

 몸으로 먼저 배운 농사인지라 만년부터 방송통신대학교 농학과에 편입하고, 경남 최고농업경영자 친환경과정, 약초아카데미, 농산물가공 창업 교육, 전자상거래 교육, 생태해설사 교육 수료 등 무궁무진한 농촌자원의 가능성을 여러 사람의 선지식을 통해 다방면으로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농촌에 젊은 사람들이 소수인 만큼 몸과 머리를 동시에 써야 농업의 미래가 밝을 것 같습니다.

 가정과 마을에서 아래로는 아이들을, 위로는 어른들을 모시는 중간자로서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저는 사랑을 만나 거창에 왔고, 두 아이는 거창을 제 고향으로 여기게 됐습니다. 저는 집에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병원이 아니라 아이가 살아갈 집에서 태어나는 것이 좋을 것 같았습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젊은이들이 촌에서 살아가는 것이 착하다”고 하십니다. 동네에 아기 있는 집이 거의 없다 보니, 아기를 보면 그렇게 반가워하십니다. 열달간의 기다림과 출산·육아 과정을 통해 자식 농사짓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니, 생명을 보듬는 여성농업인의 길이 새삼 선명하게 보입니다. 농사나 육아, 집짓기 등 ‘촌 일’이란 근본적으로 보다 사람답게 만드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현재에 만족하지만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날들…. 제 인생의 키워드는 ‘농사와 예술’입니다. 제주에서는 여성농민회 활동과 꽹과리·장구를 치며 농사의 고단함을 풀었습니다. 지금은 기타교실과 생활도예교실, 여성농업인을 대상으로 한 소묘 그리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삶은 예술이라는 일상의 미학적 감각을 깨웁니다. 거창군 블로그 기자단 활동을 하면서 저희 마을과 면, 읍내의 다양한 공간과 사람을 글과 사진으로 소개하기도 합니다. 또 생태해설사로 거창 마을 곳곳의 경로당을 찾아다니며 생태교란종 교육과 생태체험 프로그램 등을 진행했습니다.

 도시에 사는 지인들은 심심하지 않느냐고 물어보곤 합니다. 단순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느 책에서 그랬지요. 청소를 하다 보면 우주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고, 논밭은 만물의 집이라고…. 관건은 깨어있는 정신이겠지요. 문화를 변화시키는 데 있어 농부와 어머니는 중요한 임무를 타고났습니다. 농사짓고 산천을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 미술관이나 문화회관에서 보거나 들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저희 나름대로 농업 창업을 하고, 농촌의 미래를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수천년 전 이미 선인들이 느꼈을 자연의 위대함, 아름다운 생명력을 만난 덕입니다. 오래된 미래가 이곳에 있습니다.

 농부는 굶어도 이듬해 뿌릴 씨앗을 베고 죽듯이, 제 밭에서 죽어야 마음이 편할 듯싶습니다. ‘자기 죽음을 가장 잘, 그러니까 가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큰 고생 없이 순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이 누군지, 뜻밖에도 농부들이더라’는 보고서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저를 먹여 살려준 땅의 먹이가 되기까지, 이곳 거창에서 사람과 자연의 정기를 서로 나누며 쓸모 있게 살아봐야겠습니다. 자연을 스승 삼아서….

   
  [최종편집 : 201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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