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충남 예산군 삽교읍 신가리>
 
 

 눈을 뜨니 몸이 거뜬한 것 같다. 어제 늦게까지 참깨를 솎아내느라고 땀을 많이 흘렸으나 저녁 먹고는 곧장 잠에 빠졌다. 그리고 아침을 맞았으니 얼마나 단잠을 잔 것인가. 파란 하늘이 열리는 걸 보니 오늘 날씨도 쾌청할 것 같다. 엊그제 비가 내려서 어제는 이것저것 파종했고 온 밭에 EM(유용미생물)까지 뿌린 바쁜 하루였다.

 작은 대문을 나서 텃밭으로 들어섰다. 내 노동의 현장이다. 텃밭이라고 해도 조그맣지가 않고 아주 넓다. 집 뒤를 비롯해 옆과 앞, 그러니까 집은 가운데 있고 빙 둘러 밭이 있으니 눈만 뜨면 밭에 가서 살다시피 한다. 동네 사람들은 내가 밭에서 풀을 매고 있으면 “은호 엄마는 밭에다가 그림이라도 그리는가? 볼 때마다 밭에 나와 앉아 있으니”하며 지나가곤 한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달라졌다. 육십이 넘자 몸이 여기저기 아프고 자녀들이 이제 일 좀 그만하라고 성화를 하니 어쩔 수 없다. 지금까지 해 온 일을 딱 끊기는 어렵고 조금씩 줄이려고 다짐한다. 내 손 끝에서 자라나는 각종 농작물과 채소들을 매일 바라보는 재미가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2012년부터 나를 더욱 바쁘게 만든 것이 있으니 이를 어쩌랴. ‘모르는 게 약’이라고들 하지만, EM을 알고부터는 부지런을 떨 수밖에 없다. 화학비료에 의존하던 흙과 농작물을 건강하게 해 주는 것이 유용미생물이라고 한다.

 몇 년 전부터 지인의 소개로 군내에 있는 농업기술센터를 들락거리게 되었다. 쌀로 빵도 만들고, 장아찌 만드는 법과 바구니 짜기 등을 배웠다. 그러던 중 그곳에서 무상으로 공급하는 EM을 만나게 되었다. 그후 한달에 두번씩 목요일에 20ℓ를 가져다가 500배로 희석해 주 1회 밭에 살포했는데,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호기심이 많은 것이 탈이다. 이 나이에 농사를 지으면 얼마나 수확을 더 거두겠다고 야단법석을 떠느냐며 남편은 성화를 해댔다. 그냥 이웃들처럼 평범하게 하자고.

 그렇게 힘들게 일년을 했는데, 흙은 겉으로 보기에 크게 표가 나지 않았다. 금방 표시가 없어도 EM은 지속적으로 줘야 효과를 본다니 수고스럽지만 꾸준히 더 해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또 일을 벌였다.

 농업기술센터에서 교육생들에게 나눠 준 교재가 있다. 거기에는 EM의 활용법 등이 자세하게 설명돼 있다. 나는 저녁마다 읽다가 ‘EM 5호’(살충·살균·영양제) 만드는 방법을 보면서 마음이 솔깃해졌다. 그동안은 농약사에서 파는 아주 독한 농약을 사용해왔다. 그런데 EM 5호의 재료를 살펴보니 우리가 먹어도 될 만한 것들이었다. 즉시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후 2012년 가을, 나는 노랗게 물든 은행잎이 낙엽이 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재료 중에 은행잎이 다량으로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낙엽이 된 은행잎을 주워 많은 양을 말렸고 그 이듬해인 2013년 초봄, EM 5호를 만들기 시작했다. 육십여 평생에 농약을 만드는 기쁨은 설렘 그 자체였다. 1차 발효를 마치고 2차 발효에 필요한 재료를 넣고는 십여일을 더 기다렸다.

 이렇게 하여 2013년 봄, 많은 양의 농약이 만들어졌고, 이것을 플라스틱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었다. 그때쯤 고추는 이미 밭에 이식돼 농약을 뿌릴 시기가 되었다. 그런데 농업기술센터의 가르침이기는 하나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려니 과연 믿을 만한가 하는 의심이 조금씩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러다 고추 농사를 실패하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그래, 무조건 고추밭 전체에 EM 5호를 쓰지 말고 실험을 하는 거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또 실천에 들어갔다. 즉시 고추 50포기를 집 뒤쪽에 옮겨 심었다. 그곳에는 아무 농약을 쓰지 않고 EM 5호만 일주일에 2~3회 살포하다가 1~2회로, 그러다 주 1회로 줄였다. 그리고 다른 고추밭 전체에는 일반 농약과 EM 5호를 일주일씩 번갈아 살포했다. 서너달 동안 정확한 양으로 꾸준하게 실시했다.

 여름 끝자락이 되었다. 그 결과 아무런 병충해 없이 고추를 아주 많이 수확하였다. 그러나 호기심 많은 나는 또 실험에 들어갔다. 추석이 지난 뒤부터 고추밭 어느 곳에도 농약이나 EM 5호를 살포하지 않았다. 보름 정도 지났을까. 그러자 현저한 결과가 나타났다. 고추밭에 탄저병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얼른 집 뒤쪽 EM 5호만으로 키운 고추밭으로 가보니 그곳은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 오히려 아침저녁으로 찬 기온을 맞으면서도 풋고추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게 아닌가. 그렇게 건강하게 자라다가 늦가을 서리를 맞고서야 끝이 났다. 결과를 분석하면 EM 5호는 살충·살균·영양·병해충 저항력까지 두루 갖춘 아주 효력이 뛰어난 제품으로 확인되었다.

 그제야 안심이 됐다. 물론 내년에도 EM 5호를 만들어 이웃에게 소문을 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그해 가을엔 올해를 위해 노란 은행잎을 아주 많이 주워 말린 뒤 헛간에 잘 보관했다.

 그후, 나는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EM 칭찬을 침이 마르도록 했다. 하루는 동네 사람들에게 EM 5호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내 말에 귀를 기울이던 한 젊은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질문을 했다. 분명히 노란 단풍이 든 은행잎을 재료로 사용했느냐고 묻는 것이다. 나는 자신 있게 그렇다고 하면서 왜 그런 질문을 하느냐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 젊은이는 자기 생각엔 노란 잎보다 초록 잎이 더 효과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아하,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머리를 스쳤다.

 젊은이들의 머리를 어찌 당하랴. 맞는 말이다. 당당하던 나는 젊은이의 말에 그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 얼른 컴퓨터를 켰다. 검색창에 ‘은행잎의 효능’을 입력하고 확인에 들어갔는데, 한결같이 초록 잎의 효과에 관한 언급뿐이었다. 다만 한곳에서 노란 잎도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라는 답을 얻었다.

 좀 더 확실하게 알고 싶었다. 목요일이 되어 농업기술센터로 갔다. EM을 받아 놓고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담당 직원에게 EM 5호 만든 것을 설명하면서 노란 은행잎을 쓰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직원은 빙긋이 웃으며 초록 잎의 효능이 더한 것은 당연하지 않겠냐고 했다. 은행잎 채취시기도 컴퓨터를 통해 알아보니 5~7월에 채취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중에서도 5월 단오를 전후하여 채취하는 것이 적기라고 했다.

 올해는 한곳에만 고추를 심었다. 일반 농약은 쓰지 않고 자신 있게 EM 5호만 사용할 참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자세한 내용을 알고는 선뜻 작년에 모아둔 재료로 EM 5호를 만들 수가 없었다. 앞으로 단오는 한달 남았으니 그때를 기다려야 한다. 텃밭 둑에 쭉 서 있는 은행나무가 초록이 되면 약효를 제대로 내 주겠지. 물론 그때까지는 일반 농약을 할 수 없이 써야 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아마도 이번에 만드는 EM 5호는 보나마나 완제품일 것 같다. 올해 단단히 효과를 보면 내년부터는 넉넉히 만들어 마음 놓고 이웃에게 퍼 주어야겠다.

 “고추야 조금만 참으려무나. 은행잎이 더 푸르러져야 네 약을 만들 수 있어. 그때까지 아프면 안돼.”

 오늘도 고추밭에서 한마디 하고는 밭둑에 서 있는 은행나무를 올려다보았다. 엊그제 내린 비를 맞아서인지 하루가 다르게 푸름이 더해간다. 참 믿음직하다.

 오늘이 목요일이다. 20ℓ 플라스틱통을 차에 실었다. 다정한 햇살이 따갑게 느껴진다.

   
  [최종편집 : 2014/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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