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엄마, 빨리 일어나. 네시반이야.” 꿈속을 헤매던 저는 남편이 깨우는 다급한 소리에 소스라쳐 일어났습니다.

 오늘은 다섯시까지 회사에 가는 날. 저는 아버지가 네살, 어머니가 열살 때 만주로 이민 간 한인 2세랍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 아빠,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오빠들의 귀염둥이 여동생으로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죠.

 할머니께서는 늘 버릇처럼, 돌아가시던 전날까지도 “죽으면 기어서라도 조선(한국) 갈 거다” 하셨죠.

 17년 전, 할머니께서 그토록 바라시던 한국 생활을 저 혼자 시작했죠. 그리고 지금의 남편을 만나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시골 생활을 시작했어요.

 집은 60여년 세월 속에 낡을 대로 낡아서 겨울에는 설거지를 해 놓으면 그릇들이 얼어붙어 떨어지지 않았고, 비만 오면 아궁이에서 물부터 퍼내야만 했지요. 시어머니는 치매를 앓으시고, 남편은 돈도 안 되고 사람만 어렵다며 농사일 자체를 싫어했어요.

 절망 속에서 지내던 어느 날, 마흔셋 늦은 나이에 하느님이 저에게 예쁜 공주(딸)를 주셨어요. 그때부터 하루하루가 동화처럼 행복했고, 남편도 의욕을 가지고 농사일을 하기 시작했어요.

 그렇지만 경험 없이 시작한 농사일은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지요. 첫해에는 1,650㎡(500평)에 고추 3,000포기를 심었는데 탄저병으로 다 죽어 인건비도 안 나왔고, 다음 해에는 9,900㎡(3,000평)에 단호박 1만포기를 심었는데 장마에 관리를 잘 못해 하나씩 썩어나가 10원도 못 건졌지요.

 농사일이 힘들고 두렵기만 하던 그때, 저는 농협 주부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주부대학에서 강의를 들으면서 ‘자신감을 갖고 당당하게 도전하는 인생이 아름답다’라는 내용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러면서 다시 도전해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답니다.

 그때 농협에서 1대 1 영농후견인 지원사업이 있다고 일러주어 신청하였더니, 동네에서 30년 이상 농사 경험이 있는 베테랑 부녀회장님을 저와 연결해 주었습니다. 저는 부녀회장님께 하나하나 물어보고 배우면서 다시 시작해 3년이 지난 지금은 어엿한 농사꾼이 되었답니다.

 부녀회장님은 친정어머니처럼 수시로 들러 농사일을 알려 주시고, 살림하는 법이며 반찬 만드는 법까지 살뜰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나하나가 제게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현재 저희는 1만6,500㎡(5,000평) 밭에 마늘·양파·고추·대파·오이·가지·상추·열무·양배추·브로콜리·파프리카까지 50여종의 채소를 재배합니다. 동네 어르신들이 저희 집에 오시면 없는 게 없고 농사 또한 너무 잘 지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게다가 오시는 분마다 농사 기술을 알려 주셔서 이제는 동네 어르신 전부가 제 멘토입니다.

 남편도 나날이 달라졌고 오늘처럼 일찍 일어나서 저를 재촉합니다. 농사라면 쳐다보기도 싫어했던 그때 그 사람이 맞나 하고 가끔 고개를 갸우뚱거릴 정도랍니다.

 저 또한 이제 어엿한 사장이 되었습니다. 인근에 있는 시멘트 회사에서 직원식당을 직접 운영하게 되었거든요. 고기나 생선을 제외한 모든 양념류와 채소류를 제가 농사지은 것으로 사용하니 요리하는 일도 신이 납니다.

 오늘의 메뉴는 콩국수. 무더운 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서 일하시는 분들을 염려해서 점심이라도 시원하게 드시라고 삶아 놓았던 콩을 믹서에 곱게 갈아 얼음 동동 띄워 콩국수를 냈죠. 국수라서 금방 배고프다 하실까 밭에서 캐온 감자를 삶았더니 토실토실 너무도 먹음직스럽네요.

 식사를 끝낸 분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너무 맛있게 잘 먹었어요” “콩을 직접 가니 국물이 구수하면서도 담백하고 감자 또한 일품이구려” “사장님 감자 있으면 한박스 파세요, 너무 맛있네요” 하십니다. 이런 말 한마디 한마디에 새삼 보람을 느낍니다.

 딸아이의 재롱에 남편과 저는 힘든 줄도 모른답니다. 자식처럼 농장에서 잘 자라주는 채소들을 보면 더 힘이 나고, 이게 정말 행복이구나 하는 생각에 입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낯선 타국에서 그것도 힘겨운 농촌 생활이었지만, 희망을 가지고 당당하게 도전하니 꿈이 생기고 꿈이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집도 새로 지었습니다. 낡은 옛집에서 힘겨워했던 일들이 이젠 그리운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이렇게 농촌에서 자리 잡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부녀회장님 그리고 동네 어르신들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 이 글로나마 대신 전하고 싶습니다.

   
  [최종편집 : 2011/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