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향기가 그윽합니다. 오월의 산야는 파란 잉크 물이 금방이라도 뚝뚝 대지 위로 떨어질 듯합니다. 삽을 메고 1,983㎡(600평) 고구마밭으로 가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고 아카시아 나무를 바라봅니다. 가슴이 뭉클하면서 작년 이맘때가 떠오릅니다.

 일년 전 나는 마을 이장에 녹색체험마을·정보화마을의 위원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당시 마을 골짜기는 도시에서 온 어린이 수백명의 목소리로 활기찼습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네요. 어려웠던 과정들을 어떻게 헤쳐 나왔는가를 생각하니 저 자신이 대견합니다. 어제도 도시에서 유치원 어린이들이 마을을 찾아와 마을주민·이장과 함께 모내기 체험을 했습니다. 우리 마을이 체험마을로 성공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마을 주민 모두 ‘우리도 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습니다.

 몇년간의 작은 시련과 단련을 통해 마을 분들의 의식은 바뀌었고, 도농교류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됐습니다. 저의 작은 희망과 정부의 농촌 활성화 정책, 농협 농촌사랑연수원의 교육이 큰 힘이 된 것입니다.

 저는 경기 이천에서도 오지로 알려진 도리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평범한 농부로서 가난을 항상 어깨에 메고 살아오셨습니다. 가정환경이 여유롭지 못했던 저는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기아산업 공장에 입사했습니다. 도시의 삶은 왜 그리도 바쁘고 정신이 없던지요. 2000년, 13년간을 도시에서 헤매다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도시에서 살다 와서인지 처음에는 마을 분들과 서먹서먹하기만 했습니다. 저는 마을 분들과 어울리려고 2005년에 반장을 맡았습니다. 시골마을은 반복되는 일상에 발전과도 거리가 멀었습니다. 언론을 통해 가끔 소개되는 이천 부래미마을의 사례는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들렸습니다. ‘부래미마을은 어떤 곳일까?’ 직접 가서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눈 덮인 겨울날, 저는 이십리를 달려 부래미마을을 찾아가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도농교류가 무엇이고, 체험이 무엇인지’는 생소했지만 우리 마을도 도전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각종 교육에 참석하고 관련 서적도 찾아보았습니다.

 나는 마을을 이끌려면 지도자가 되어야 하고, 지도자가 되려면 헌신해야 한다는 각오를 했습니다. 2007년 겨울, 마을 이장에 도전해 압도적인 지지로 선출됐습니다. 이장이 된 나는 다시 부래미마을을 여러번 방문하면서 우리 마을 실정에 맞는 사업은 무엇인지, 어떤 농산물을 특화시켜야 농가소득을 올릴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했습니다.

 주일에 서너번은 시청 농정과에 들러 자문하고 녹색체험마을에 선정되기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선진지 견학을 가자고 하면 주민들은 왜 그리 비협조적이던지요. 강사를 초청해 마을회관에서 강의라도 하려면 집집이 방문해 참석을 요청해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던가요. 2008년, 드디어 우리 마을이 농림수산식품부로부터 ‘도니울 녹색체험마을’로 지정됐습니다. 그 기쁨이란 무엇으로도 표현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자신감을 얻은 저는 같은 해에 정보화마을에도 도전해 천신만고 끝에 ‘도니울 명품쌀 정보화마을’ 지정을 받았습니다. 덕분에 50가구 집집이 컴퓨터를 무상 보급했습니다. 정보화마을이 되면서 통신 전용선이 들어왔고 마을에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먼저 마을 홍보에 꼭 필요한 홈페이지가 구축되어 체험마을을 운영하는 데 큰 힘이 된 것입니다. 또 주민들은 겨울에 전산교육을 집중적으로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과 중고생들은 통신속도가 빨라졌다고 얼마나 좋아하던지요. 같은 해에 장수마을에도 선정돼 3개 국책사업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단합된 마음과 하면 된다는 강한 신념이 이뤄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녹색체험마을과 정보화마을 신청에 주민 모두 회의적이었습니다. 장수마을까지 신청하겠다고 나섰을 때는 이천시에서도 3년 만에 한개의 마을이 선정될 정도로 어려운 사업이므로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까지 했으니까요.

 당시 198㎡(60평) 슬레이트 블록으로 지어진 낡은 마을회관 건물 내에는 상여를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비가 새는 마을회관 건물을 철거하고 체험객을 맞기 위한 다목적체험관을 신축했습니다. 건물을 신축한 첫해인 2008년에는 도시민 3,000명을 유치해 시장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습니다. 모두가 힘을 모아서 신축한 다목적체험관에서 도시민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체험행사를 한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습니다.

 장수마을은 노인분들의 건강복지와 농촌체험이 목적이므로 노인분들이 자율적으로 사업을 구상하고 집행할 수 있게 경로회장님께 사업을 일임했습니다. 노인분들은 짚 공예장을 짓고 마을 농가 소득을 위해 매실나무를 심었습니다. 또 매실 가공공장까지 지어 3개 사업이 체험에 활용되면서 우리 마을은 이웃 마을들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농교류가 구체적인 성과로 나타나면서 주민들도 저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친환경 농산물을 재배하고 도농교류를 통해 침체한 농촌을 발전시키자는 저의 주장에 주민들도 힘을 모았고 이제 우리 마을은 농촌종합개발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4년간의 이장 임기를 마쳤지만 마을 일에는 지금도 앞장서고 있습니다. 우리 마을의 특성에 맞는 경쟁력 있는 작목반을 조직해 생산량을 규모화한 후 가공공장을 지어 모두 다 잘사는 공동체 농촌마을을 만드는 게 저의 꿈입니다. 이를 위해 농협대학 협동조합경영학과에 입학해 협동조합 관련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무리 농촌이 어렵다지만 농민들이 단합해 지혜롭게 대처한다면 우리 농촌을 지킬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 마을이 자연이 숨 쉬고 인정이 살아 있는 행복한 농촌이 될 것을 확신하며 4년간 느꼈던 마을 지도자의 애환을 담아 보았습니다. 나의 작은 농촌사랑이 계속 이어져서 우리 농촌이 잘살고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최종편집 : 2012/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