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노 메리조이 22·전북 정읍시 신태인읍>
 
 
 

저는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메리조이입니다. 2008년 12월에 아는 사람의 소개로 남편을 알게 됐습니다. 처음 인터넷으로 서로 얼굴을 익히고 대화를 나누면서 나이 차이는 있었지만 남편의 장난스러운 웃음과 지적인 면에 반했습니다.

남편은 영어를 할 줄 알았고 아는 것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다리가 조금 불편해 결혼이 늦었고, 저를 만나려고 여태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농담도 했습니다. 저는 고민을 했지만 첫눈에 반한 남편을 잊을 수가 없어 결혼을 결정했습니다. 2009년 3월, 남편은 필리핀으로 직접 와서 저의 가족을 만났습니다. 그때 저는 남편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좋은 사람이고 속이 깊은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드디어 필리핀 가족이 허락을 했고 가족과 친척들의 축하 속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후 남편은 한국으로 돌아갔고, 저는 많은 시간 동안 두려움과 설렘으로 한국어 공부도 하고 한국에 대해 여러가지를 배우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저는 또 축복을 받은 듯 신혼여행에서 임신한 사실을 알았고, 인터넷으로 남편과 대화하며 사랑을 키웠습니다.

2009년 6월, 드디어 비자가 나와 꿈에 그리던 남편을 만나러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에서 저를 처음 반긴 건 물론 공항에 마중 나온 남편의 환한 웃음이었습니다. 또 한국의 발전된 모습과 깨끗하게 정리된 도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처음 만난 남편 가족을 소개받으며 많이 긴장됐지만 남편의 가족은 적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누나 둘, 남동생, 여동생 이렇게 한가족이었습니다. 모두들 결혼했고 서울에 살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부모님과 같이 살기 위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시골로 왔다고 했습니다. 시아버지께서 오랫동안 아프셔서 시골로 왔다고 했습니다. 남편의 집은 시골이고 아버지·어머니는 농사를 짓고 소도 키우십니다. 남편은 시골의 면사무소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 올 때 임신 3개월이라 남편과 식구들이 무척 아껴 주시고 일도 시키지 않았으며 몸 관리나 잘하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친구가 없어 매일 많은 생각을 하며 홀로 지냈습니다. 다문화센터도 멀었고 남편은 출근을 하는 데다 주말에는 농사일로 바빠 대화가 부족해 많이 외로웠습니다. 저는 점점 지쳐 갔고 배가 불러올수록 신경이 날카로워졌습니다.


그런 저에게 어머니는 많은 말씀을 하고 저를 가르치려고 애쓰며 때론 화를 내시곤 했습니다. 저는 이해할 수가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많이 울었습니다. 필리핀에 있는 가족이 그리웠습니다. 문화 차이가 있을 때마다 남편과 어머니의 다툼이 있었는데, 언제나 남편은 저를 위로해 줬습니다. 남편은 부모님 앞에서는 저에게 화를 내는 척했지만, 저와 있을 때에는 따뜻하게 위로해 주며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라고 했습니다. 그런 남편의 친절한 배려 덕에 저는 남편을 믿고 인생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다문화센터의 한국어 선생님으로부터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열심히 배우고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같이 한국의 부모님을 이해하려 노력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참 쉬운 일들이었습니다. 그냥 참고 생각하고 웃으면 되는 것들이었습니다.

2009년 12월25일, 드디어 첫째아들 성현이가 축복을 받으며 태어났습니다. 건강한 아들이 태어나자 저는 정말 행복했고, 남편도 더 가정적이 되었으며, 어머니께서도 저와 아들을 많이 사랑해 주셨습니다. 병환중인 아버님께선 눈물까지 흘리셨습니다. 아들이 우리 가족에게 행복과 화합을 주었습니다.

저는 젊고 건강하며 남편과 가족을 사랑합니다. 남편은 저에게 꿈을 가지라며 용기를 주곤 했습니다. 저는 늘 그런 남편의 모습에 감동하며, 앞으로 영어 선생님도 하고 또 언젠가 남편과 함께 필리핀에서 좋은 사업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즐겁고 행복한 나날이 이어질 때마다 필리핀에 있는 가족들의 어려운 현실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것을 알게 된 남편은 2010년 11월에 아들 성현이와 둘째를 임신한 저를 데리고 고향 필리핀으로 갔습니다. 저는 감동했습니다. 남편은 저의 그리움과 외로움을 달래 주려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족들은 2년 만에 멋진 아들까지 데리고 온 저를 많이 축복해 주고 환영해 줬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더 큰 감동을 준비해 두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오빠들에게 중고 트럭을 사 준 것입니다. 자신도 형편이 좋지 않은데, 제 가족의 어려운 현실을 알고 일할 수 있는 희망을 줬습니다. 그 트럭은 지금 필리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중요한 수단이 돼 있습니다.

저는 이제 압니다. 한국에도 필리핀처럼 따뜻한 가족 사랑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가족의 힘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저는 이런 소중한 한국의 가정과 나의 삶을 사랑합니다. 모든 것들이 낯설고 외롭고 힘들 때 나를 위로해 주고 희망을 준 소중한 남편, 그리고 제 아이들과 부모님을 사랑합니다. 저는 이제 한국말도 잘 알아듣고 잘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동시에 울면 많이 힘들지만 든든한 남편이 있어 저는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5월6일, 간경화라는 병을 앓으시던 아버님이 갑자기 쓰러져 서울의 큰 병원에 입원하셨습니다. 위급한 상태라고 했습니다. 남편과 가족은 충격을 받았고 아직까지도 병세가 좋아지지 않아 온 가족이 웃음을 잃어 가고 있습니다. 지금 모든 가족이 서울에 계신 아버지 병간호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지금 저와 남편밖에 없는 이 시골집은 고요합니다. 저는 매일 기도를 합니다. 우리 아버님이 빨리 회복하셔서 전처럼 성현이랑 놀아 주시기를…. 저는 믿습니다. 온 가족이 이 어려움을 잘 이겨 내고 다시 예전처럼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거라고. 빨리 아버님이 건강을 찾으셔서 남편의 얼굴에 다시 미소가 돌 거라고.

저는 이제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느낍니다. 지금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우리 가족 모두 앞으로 아름답고 건강한 가정을 꾸미며 멋진 미래를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최종편집 : 2011/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