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하얀 제비 가족이 날아온 남쪽 바다 위를 향하는 촌부의 첫 하늘길은 아름답고 신비롭기까지 했다. ‘충북 농식품 필리핀 시장개척단’은 충북도가 농산 가공품의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마련한 행사였다. 단양 소세골 정착 7년의 시간이 필리핀을 향하는 하늘길을 따라 펼쳐졌다.

2003년 농사꾼이 되겠노라며 찾아든 단양 산자락. 무작정 농약 안 치고 화학비료 안 주는 마늘 농사가 초기 친환경 농사의 전부였지만 쏟아부은 열정 덕인지, 첫해 농사는 하늘이 봐준다고 수확도 가격도 넉넉했다. 그러나 대충 가늠하며 덤빈 농촌 생활은 갈수록 만만치가 않았다. 이듬해는 날씨가 좋으면 병충해가 들고 애써 거둬들여 놓으면 가격이 폭락하는 등 실패의 연속이었다.

정착 후 2년여는 일주일에 2~3일은 서울을 오가며 하던 일을 계속해야 했다. 농사로는 생계유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3년째 서울 일을 정리하고 진짜 농군이 되겠노라 팔을 걷어붙였지만 마른땅에 물 스미듯 하는 생활비와 비싼 영농자재 등 경제적 압박이 서서히 죄어 왔다. 거기다 농촌 정착을 서두르게 한 이유이기도 했던 딸아이의 급성 류머티즘은 중학생이 되어서도 엄마 등에 업혀 다녀야 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그러던 귀농 3년째 봄, 제비 한쌍이 우리 집 처마 밑에 찾아들었다. 묵은 옛 제비집을 손질하며 들락거리더니 서둘러 알을 품고 새끼를 쳤다. 그해 여름 제비 부부가 친 세마리의 아기 제비 중 한마리는 뜻밖에도 작고 여린 하얀 제비였다. 돌연변이로 태어난 하얀 아기 제비가 우리 가족은 더없이 애틋했다.

장맛비 속에서 태어난 새끼들을 키우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어미 제비의 모습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큰 교훈이고 희망이었다. 남편은 막연한 친환경 농업을 넘어 유기인증에 도전했고, 때마침 단양군이 추진한 친환경 농업인 육성책에 힘입어 그해 여름 거두어들인 마늘 농사에 무농약인증을 받았다. 왜소한 하얀 제비가 어미 제비의 헌신적 노력으로 힘찬 제비로 성장해 가는 모습과 함께 딸아이도 오랜 병석을 털고 엄마 등에서 벗어나 걸음을 내디디며 학교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그해 겨울 우리 부부는 마늘 가공을 위해 건조기에 가득한 마늘을 붙들고 씨름했다. 마늘을 된장에 접목하기 위해 메주 쑬 때 마늘을 섞어 건조한 후 띄워 보았다. 마늘의 살균 작용으로 발효가 어려우리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유해균 없는 맛있는 된장이 됐다. 그러나 된장만으로는 마늘의 소비가 미약했다. 다량 소비를 위해서는 마늘의 특성을 최대한 살리고 자극 없이 편하게 먹을 수 있는 가공식품이 필요했다. 우리는 인근에 있는 마늘 연구소를 드나들며 마늘 가공에 대한 정보와 조언을 구했다. 그렇게 발품을 판 끝에 순한 맛의 발효 마늘환을 개발할 수 있었다.

개발한 마늘메주 된장과 발효 마늘환을 가공식품으로 판매하기 위해 군청 담당자를 찾아가 허가 조건, 시설 여건 등을 알아본 다음 다시 일년여의 시간을 두고 제품 개발과 함께 시설 준비를 했다. 그리하여 2008년 6월 우리 부부가 지향해 온 조촐한 꿈을 실어 ‘소세골농장’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신고와 사업자등록을 마쳤다. 또 단양군에서 개발한 농업인 홈페이지를 활용해 통신판매 준비도 했다.

봄~가을에는 농사짓고 겨울에는 가공해서 판매하는 것이 뜻은 이상적이었지만 실생활에서는 한없이 벅찬 노동이었다. 도무지 한가할 틈이 없었다. 귀농 7년의 발판을 다지기 위해 우리는 토산품시장이나 행사장 등 상품을 판매하고 홍보할 기회만 있으면 다 찾아다녔다. 그런 노력을 높이 샀는지 2008년 가을 단양군과 농협중앙회에서 뜻밖의 반가운 선물을 줬다. 농협무역을 통해 단양 농특산물을 미국에 수출한다며 참여 의사를 타진해 왔다.

우리로서는 좋은 기회였다. ‘소세골농장’ 이름으로 상품을 포장하고 컨테이너에 실어 떠나보내는 내내 마음이 설렜다. 주위를 잘 살피면 시장 개척이나 박람회 참가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도 그때 터득한 노하우였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2009년 봄 충북도에서 실시한 필리핀 시장개척단에 뽑혀 첫 하늘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내 손으로 만든 먹을거리라 자신 있게 선보이고 알리자 꾸준한 구매로 이어지는 등 고객층이 늘어났다. 그해 12월 농협중앙회가 주관하는 유기농산물과 유기농산물 가공식품을 대상으로 하는 품평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제품의 품질을 평가 받고 싶어 주력 상품인 발효 마늘환과 마늘메주 된장을 가지고 가공식품 부문에 참가했다. 1차 농산물과 달리 가공품은 개인 부문 참여가 적어 중소기업이나 영농법인 등 큰 단체와 경합을 해야 했는데 뜻밖에 기쁨이 있었다. ‘유기가공부문 금상 수상’. 그동안 가격 부담으로 스트레스도 많았고 판로 문제로 마음고생도 심했는데, 그런 혼돈이 한꺼번에 씻기는 기쁨이었다.

아무런 경험 없이 한적한 땅의 소리를 듣는 농사꾼이고자 했던 바람이 7년여의 정착 과정에서 참 많이 바뀌었다. 무작정 필요에 의해 시작하다시피 한 가공사업은 오류도 어려움도 많았는데 이겨내는데는 교육이 큰몫을 했다. 충북도농업기술원 등에서 여성농업인 교육을 실시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참여했는데, 교육을 통해 그동안 겪어 왔던 어려움과 답답함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또 무엇보다 같은 길을 가는 여성농업인들과 정보를 공유하게 된 것은 큰 힘이었다.

농업인은 홀로서기가 참 어렵다. 정착 초기에는 농업기관의 교육과 지원이 큰 힘이 됐고 발판이 됐다. 우리의 성과는 소비자와 고객에게 환원해야 하는 빚일 것이다. 정성을 기울여 최고의 먹을거리를 만들고, 고객들 앞에 자신 있게 내보이고, 소비자가 인정하는 만큼만 발걸음을 내디디고 싶다. 내가 만든 먹을거리가 지구촌 곳곳에서 “맛있어요!” “최고예요!” 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꿈꾼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는 밭자락에 앉아 열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흙살의 감촉, 거기에 무심히 새어드는 지극한 평온, 그 땅의 소리를 듣는 풀 매는 농부이고 싶다. 강남 갔던 하얀 제비 가족이 무사히 다시 돌아올 봄을 기다리면서.

   
  [최종편집 : 2010/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