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예천군 개포면 가곡1리>
 
 

25년 전 귀농과 함께 부농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야심 찬 농촌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제, 들에 가시니껴?" "아지매는 장에 가시니껴?" 남편이 길가다 만난 어르신들께 드리는 사투리가 정겨웠다. 하지만 외동아들에 문중 종손이었던 남편을 위해 그 당시 초등학교부터 시내로 유학을 시켜 도시에서 출세하길 바랐던 시부모님께서는 농사짓겠다며 고향으로 돌아온 아들 내외에 대한 상심이 크셨을 것이다.

집안의 종부로서 1년에 9번의 제사를 지내며 마을 어르신들께 농사일을 배워나갔다. 처음 해보는 농사일은 너무도 서툴렀고 얼굴은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려 반짝반짝 윤이 날 정도였다. 농사일이 힘든 탓에 어찌나 말랐던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필리핀에서 시집 왔냐"며 수군거릴 정도였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나는 부모님 곁을 떠나 멀고 먼 예천 땅에서 뜻하지 못한 어려움에 부딪칠 때가 많았다. 비 내리는 날이면 비닐하우스 속에서 남모르게 엉엉 울기도 여러 번이었다.

팥·콩·고추·고구마 등을 1년 동안 재배해서 받은 수입은 돌아서서 눈물이 나올 만큼 턱없이 작았다. 갈수록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지니고 있던 결혼 패물을 모두 팔았고, 비육우를 구입하여 키우던 중 소 파동이 일어나면서 생활고는 더욱 심각해졌다. 가을이면 남편은 조금이라도 더 좋은 가격을 받기 위해 농사지은 쌀을 트럭에 가득 싣고 도시로 갔고, 밤마다 초죽음이 되어 돌아오곤 했다. "많은 쌀을 고층 아파트에 모두 배달하고 나면 팔다리에 힘이 빠져 숟가락 들기도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남편이 안쓰러워 마음이 더욱 아려왔다.

#나에게 희망을 가져다준 컴퓨터

당시 우리 마을은 특별한 소득 작물이 없는 데도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현실에 안주하고 있었다. 관행적인 농업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을 즈음 예천군청에서 컴퓨터 교육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땀흘려 지은 농산물을 소비자와 직거래를 통해 판매한다면 이보다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컴퓨터 교육을 신청해 홈페이지를 만드는 과정까지 하나하나 익혀나갔다.

형편이 어려워 컴퓨터 구입은 엄두도 못 내고 있는데, 아들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께서 컴퓨터는 없지만 헌 자판은 있으니 타자 연습이라도 하라며 주셨다. 어찌나 좋던지…. 들에서 일하면서도 머릿속으로 자판기의 자리를 외워가며 컴퓨터를 연습했고,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끝에 정보화기기운용기능사 자격증까지 획득을 하게 되었다.

2002년에는 컴퓨터와 친구 하며 쌓은 실력으로 경상북도 주부 컴퓨터 활용 경진대회에 나가 금상을 수상했고, 인터넷 사업 구상으로 멋진 꿈을 키웠다. 인터넷이란 바다는 참으로 신기하고 광대하여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용기와 자신감을 주었다. 큰 맘먹고 중고 컴퓨터를 하나 준비하여 2003년 드디어 인터넷 전자상거래를 시작했다. 사업자등록증도 내고 통신판매 신고도 하고 '쌀아지매' 홈페이지(www.fulender.com) 등록을 완료했다.

하지만 쇼핑몰을 오픈했으나 찾아 오는 이가 없었다. 쇼핑몰만 만들어 놓으면 누구나 들어와서 우리가 정성들여 가꾼 농산물을 구입해 가리라고 믿었던 것은 너무도 큰 오산이었다. 그때부터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됐다. 낮에 들에 나가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에는 온통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을 끌어들여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전자상거래를 하고 있는 타 사이트를 방문하여 상품을 어떻게 올려뒀는가, 어떻게 홍보를 하고 있는가, 가격은 어떻게 결정하는가 등을 집중적으로 벤치마킹했다. 발로 뛰는 홍보만이 살 길이라고 판단하고 나만의 방법으로 맨발로 뛰는 공짜 홍보를 시작했다. 게시판에 우리 농산물을 이용해서 만들 수 있는 맛있는 요리법을 올렸고, 농촌에서 일하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밤마다 일기식으로 영농일지를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첫 주문이 들어왔다. 어찌나 가슴 벅차던지 그 기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아주 소중한 첫 주문이니만큼 쌀을 새로 찧고, 맛뵈기로 보리쌀 몇 줌과 밭둑에 딸린 애호박까지 따 넣고 감사의 편지를 썼다. 그 다음날 바로 전화가 왔다. 친정엄마가 보내준 것처럼 정이 묻어나서 눈물이 핑 돌았다는 전화였다. 그러면서 주변에 홍보도 많이 해주시겠단다. 그때의 감동이란….

전자상거래가 시작된 후 돈 들이지 않는 공짜 홍보의 수단으로 각 사이트마다 카페나 블로그를 개설해 농촌에 살고 있는 이야기들을 열심히 올리고 방문객과의 만남을 하나도 소홀히 않고 모두 응대하며 마음을 나눴다. 그러자 고객은 점차 늘어갔다. 가을이 되면 무농약으로 재배한 배추와 무를 그대로 넣어주고, 겨울에는 가마솥에 삶아 만든 시래기를 보내드리는 등 정성을 다하여 고객을 감동시켰다.

감성 마케팅은 큰 효과를 가져왔다. 3년 만에 수많은 고객을 확보하게 됐고, 고객들 중 일부는 "쌀아지매가 어디서 어떻게 농사짓는지 궁금하다"며 농가체험을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그렇게 해서 2007년 7월, 돼지를 한 마리 잡아 마을 주민들과 100여 명의 고객이 함께 모이는 제1회 농가체험 행사를 실시했다. 이 행사는 이제 마을 축제가 되어 해마다 이어지고 있다.

#친환경체험마을로 마을 전체를 변화시켜

농촌사회가 어려운 것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잘 사는 마을이 되기 위해서는 변화를 받아들이는 주민들의 의지가 필요했다. 농가의 농외소득을 창출을 이끌어내야겠다는 생각에 농촌 어메니티를 그대로 상품화한 '체험마을'을 유치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남편의 힘을 빌어 27가구의 뜻을 모아 친환경작목반을 결성하고, 작목반원들을 대상으로 설득 작업에 들어갔다. 쉽지 않으리라는 것은 예상했지만 생활하기에 빠듯한 주민들을 체험마을 사업에 동참시키기란 쉬운 것이 아니었다. 2년여 동안 머리를 맞대고 설득하며 착실하게 사업 유치 준비를 한 결과, 드디어 2008년도 농협에서 주관하는 팜스테이마을로 지정받게 됐다.

글로벌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 농촌도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그러려면 마을 개발과 농외소득 창출을 위한 마을 리더의 역량 강화와 의식 개혁이 필요하다. 우리 마을은 주민들 스스로 군에서 실시하는 마을 단위 컨설팅을 신청해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모두 함께 잘 살 수 있는 마을이 되도록 모범적인 마을로 가꾸어 가자고 마음먹고 노력한 결과는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마을 입구 버스 승강장에 붙여 놓은 '꿈을 꾸면 반듯이 그 꿈이 이루어진다'라는 표어처럼 우리 마을의 꿈이 서서히 실현되고 있다.

이제 마을 주민들은 고객들의 가족이 방문하면 편히 쉬면서 농가체험을 하고 갈 수 있도록 저마다 선뜻 방을 내놓고 있다. 마을주민 50여 가구가 공동으로 친환경인증서를 받는 등 고객들이 믿고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친환경농법을 실천하는 데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우리 마을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농산물은 전량 전자상거래로 판매를 하고 있으며, 예천의 타지역에서 생산되는 친환경 농산물과 특산품 80여 종도 함께 판매해주고 있다. 현재 3,500여 명의 고정회원을 확보했으며, 2008년에는 연간 6억 원을 웃도는 매출액을 올렸다.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라온 '예천의 친환경 농산물 덕분에 식사 시간이 행복하다'는 글을 보며 어찌 하루가 피곤하다고 하겠는가. 맑고 청아한 산새들 울음소리와 풀벌레들의 합창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아름다운 대자연 속에서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기쁨이 가득한 하루를 보낼 때 어찌 행복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젠 정말 행복하다고 말 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최종편집 : 2009/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