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인제군 북면 월학리>
   
 

나는 강원도 인제군 북면 월학리에서 축산업을 하는 육십 대 농부다.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얘기는 우리처럼 늙어가는 이에게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지금 농촌에서 나이 육십은 젊은이에 속한다.

나도 환갑, 진갑을 넘긴 나이에 한우 80여 두를 사육하고 있지만 농촌은 이렇게 늙은이들이 지키고 있는 것이 현실임을 어찌하랴.

요즘 쇠고기 수입협상 타결이니, 장관고시니,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이니, 온 나라가 시끌벅적하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타 들어가는 농민의 마음은 아랑 곳 없이 텔레비전(TV) 채널만 돌리면 거침없이 쏟아지는 말, 말, 말들이 난무한다. 신문지면을 꽉 메운 쇠고기 타령 기사들 모두 짜증나고 분통 터지는 소식들로 더욱 타는 가슴을 옥죄어지고 있는 이때, 그나마 어둡고 캄캄한 축산인의 가슴을 밝혀주고 있는 것이 있다.

국민들의 관심과 성원 담긴 촛불시위가 응어리진 축산인의 가슴을 조금이나마 녹이는 듯 하다. 한참 꿈을 키워가는 중.고등학생부터 성인.장년까지 생명산업과 국민건강을 지키기 위한 목소리를 들으며, 우리 축산인 들의 진정한 뜻에 귀 기울이는 국민들이 있음에 진정 고마움을 전한다.

하루 종일 논과 밭, 축사에서 긴 하루해를 보내고 피곤한 몸을 끌다시피 집에 돌아오면 저녁밥 수저를 놓기가 바쁘게 잠자리에 누워 한잠자고 나면 잠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긴 한숨을 토해내야 하는 답답한 가슴이다.

자고나면 올랐다는 사료 값, 자고나면 하락하는 송아지 값, 큰 소 값 때문이다. 사료 값이 오르면 오른 만큼 소 값도 동반해서 올라야 하고, 사료 값이 내리면 동반해서 소 값도 내려야 형평에 맞는 것 일진데, 모든 것이 외면 당한 채 ‘나 몰라라’ 제멋대로 되어가는 설명이 필요 없는 현실임에랴.
그러나 어찌할까. 손놓고 수수방관 할 수야 없지 않을까. 우리는 그 어렵고 힘들었던 보릿고개, 춥고 배고팠던 시련과 고난을 풀뿌리와 나물죽으로 연명하던 50년, 60년대를 넘긴 세대들이다.

좌절이나 절망은 내 정신 사전엔 없는 말이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런 때일수록 시련을 극복해야 하는 방법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사료 값 절감과 조사료 확보 및 사양기술 개발로 고급육을 생산하여 ‘최고의 쇠고기를 만들어내는 노하우’를 창출해 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우리 국민의 식탁은 안전하고 맛있는 우리 한우가 지키고, 더욱 고급스럽고 맛깔스런 쇠고기를 공급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이 어려운 파고를 어떻게라도 슬기롭게 넘기리라고 나는 다짐을 해 본다.

이것은 말과 다짐만으로 성사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실제로 현실 속으로 뛰어 들어야 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십년 후 아니 백년 후, 더 먼 세월 뒤에 후세들에게 우리 민족의 자존심인 한우의 우수성을 지키고 가꿔, 세계 최고의 쇠고기를 물려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급육 한우의 혈통을 외국 쇠고기에 밀려 사라지는 일이 없도록 보존.계승하는데도 미력하지만 힘을 함께 하고 싶다.

어느 나라 쇠고기와 견주어도 탁월하게 우수한 쇠고기를 자신 있게 세계 시장에 내 놓을 수 있는 그날까지, 나이는 다만 혈륜일 뿐, 의욕과 결과에 장애가 될 수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시련과 어려움을 이기고 최고의 쇠고기를 만들어서 세계우위의 한우의 자존심을 지키고 또한 맛으로 세계를 석권하는 날, 지금 국민의 외침과 성원에도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하며 더 열심히 일하려 한다.

진정 ‘인생은 60부터’ 라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지금부터 황혼의 설계를 이행하기 위하여 더욱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내가 정말 나이가 들어 축사도, 농사도 내 힘으로 할 수 없을 때까지 진정한 땀의 대가로 소중한 황혼을 보낼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 힘으로 25㎏ 사료 한 포대, 건초 한 덩이를 다룰 수 없는 날까지 내 모든 것을 한우에게 바칠 것이다.

바로 지금, 황혼기를 확실하게 보장 받을 수 있는 설계를 한다. 내가 더 나이들이고 노쇠해 모든 일을 포기해야 할 때까지 최선을 다하고, 그 후엔 누군가가 내 목장을 보살필 사람이 꼭 나서리라 생각한다. 그 누군가에게 나의 이 뜨거운 한우사랑의 집념과 사양관리 기술도 전수해 주려고 한다. 그리곤 착하게 자라나고 있는 손자 손녀 일곱 녀석들의 장학사업에 정열을 쏟으려 한다.

재산이나 돈은 많이 가질수록 욕심만 늘어가고, 늘 지키기 위해 불안하다. 잘못하면 뭇 사람들로 하여금 빈축도 살 수 있는 것이 재산과 돈이다. 그러나 후손들에게 마음과 정신적 양식을 머리에 저장하는 지식이야말로 무엇으로도 빈축을 사거나, 도적질 당하는 일은 전혀 없다.

오히려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되도록 길을 열어주려 한다. 그리고 자식들 도움 없이도 노후를 스스로 해결하고 멋지고 존경받는 황혼기를 보내기 위한 모든 것을 실천하기 위하여 더욱 노력을 경주할 것이다. 내일로 미루면 정녕 황혼의 준비도 늦을 테니까 말이다.

손가락 마디가 관절염으로 부어올랐다. 자고나면 주먹도 쥐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이 난국을 극복하기 위하여 조사료 포장을 만들었다. 10월 중순 호밀을 파종하여 다음해 5월 중순에 거둔다. 뒷그루로 미백 찰옥수수를 계약재배 하여 계통출하하고, 옥수수 대는 마르기 전에 담근 먹이를 만들어 먹임으로서 일거양득의 효과를 올리고 있다. 담근 먹이를 임신한 소들에게 먹이면 배합사료도 절약됨은 물론이거니와 건강 상태도 양호해지는 것 같다.

모든 수송아지는 거세하여 일등급이상 고급육이 90%이상 나올 수 있도록 사양관리를 개선하고 우리 강원도의 공동 브랜드인 <하이록 브랜드>의 원칙대로 삼통-정액통일.사료통일.사양관리 원칙대로 하기- 등을 실천해 오면서 ‘고급육 1등급 이상 출현’의 목표치에 거의 도달해 가고 있다.

‘송아지 출산율 100%와 폐사율 0% 달성’을 위하여 청량한 물 공급과 청결한 우사 유지를 생활화하고 있다. 소 궁둥이에 분뇨가 묻지 않도록 청결히 하고 있다. 축사 소독도 매주 1~2회 철저히 하여 각종 질병예방과 해충구제도 철저히 해 소의 불편함을 최소화 하여야 살도 잘 찌고 고급육도 생산된다고 본다.
이런 노력으로 2007년 5월 3일 농협중앙회가 추천하는 축산분야 새농민상을 우리 부부가 받았다. 이 같은 일을 칭찬이라고 나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더욱 열심히 일 하라’는 격려로 생각하고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을 하려고 하고 있다.

나와 아내의 노력을 아는지, 우직하고 정직한 한우들은 꼭 사랑과 정성을 더해 보답해 주고 있다. 이젠 소의 눈망울만 보아도 어디가 불편한지를 읽어낼 만큼 소와의 대화가 이뤄진다고 자부한다.

우리 마을은 농촌체험마을이다. 우리 축사는 한우 체험농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많은 학생들과 도시민들이 실제로 소에게 먹이도 주면서 어떤 환경에서 소들이 자라고 있는지 체험하고, 고급육 생산과정을 돌아보며 긍정적인 인식을 갖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함으로서 브랜드 가치를 창출하는데도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나는 모자라는 축산 전문기술을 한 차원 높이기 위하여 2006년엔 강원대학교 생명과학대학에서 주관한 <CUED 축산 전문과정>을 연수하면서 전국의 이름난 한우 사육농가의 견학과 체험을 통해 나의 방법과 더 좋은 사양기술을 접목함으로서 이해와 실천을 함께 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최고 소라고 자랑하는 <화우 사육 농장>도 방문하여 우리의 사양기술과 비교하여 화우보다 우위의 한우를 만들 수 있는 기술 창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을 현장과 접목하여 이행하므로 명실상부한 최고의 축산인 이 되기 위해 무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아무리 어려운 시련이 닥치더라도 우리 식탁은 우리가 생산한 고급육 쇠고기를 자신 있게 내 놓을 수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 내리라 자신한다.

2008년 5월엔 무항생제 축산 인증까지 획득하여 더욱 안전하고 고급스런 쇠고기 생산농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해썹(HACCP) 인증을 받기 위해 심사가 진행 중이다. 아마 내년에는 인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타날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두수를 늘려 나갈 수는 없지만 각종 융자금 상환과 현상유지를 하면서 매년 10두 씩 늘려 가려고 계획하고 있다. 계획을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선 고급육 만드는 것, 증체율 높이는 것, 도태율 0% 만드는 것, 이 세 가지 방법만이 최선의 방법으로 알고 실천하고 있다.

사료 값 급등과 조사료 확보의 어려움, 사료 가격 상승이란 어렵고 감당하기 힘든 문제가 앞을 가로막고 있다. 걱정하는 것만으로는 해결 될 수 없는 현실을 헤쳐 나가기 위하여 정말 한 푼을 아끼고, 사료 한 알, 건초 한 움큼을 헛되이 버려지지 않게 노력중이다.

지금까지는 조사료의 자가 생산이나 구입으로 일관해 왔지만 수수방관 할 일이 아니어서 낫을 들고 강가 등 풀밭으로 나섰다. 옛날 같으면 남아나지 않던 풀들이 무성히 자라도 그냥 방치되어 있지만, 덥고 힘드니까 누구도 풀을 베서 사료로 삼지 않는다.

3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 속에서 그늘에만 있어도 땀이 흐르는데, 뙤약볕 아래서 풀을 베는 일은 힘들고 고달픈 일이다. 하지만 힘들이지 않고 무엇을 얻겠는가. ‘나는 나니까 할 수 있다’는 독한 생각으로 폭염 속에 풀을 베어봤다.

새벽 5시 전에 일어나 축사관리하고, 아침밥 먹고 풀밭에서 부지런히 풀을 베어 놓았다. 3~4일 건조한 후 썰어 번식우 20두에 급여했다. 하루 고생하면 20두의 소에게 2일을 급여할 수 있다. 금액으로는 6만여 원 밖에 안 되는 작은 돈일지는 모르지만 효과는 크게 나타나리라 믿는다.

온통 땀으로 범벅이던 나를 보고 남들은 ‘이 뜨거운 날 그 짓을 하느냐’고 비아냥대지만 땀의 결과는 소중하리라 확신하기 때문에 남의 눈치 전혀 볼 것 없다고 생각하며 진정한 땀의 가치가 꽃피는 것을 보여주려 한다.

굳은 땅에 물이 고인다고 하지 않는가. 진정한 땀의 결과가 열매 맺어가고 있는 내 축사를 바라보는 남들의 부러운 듯한 눈빛에서 내일의 환희가 꽃피고 있음을 남들은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 지역은 영농규모가 모두 취약하다. 인제군 북면에선 축산규모가 제일 큰 내가 한우 80두 정도이니, 다른 농가들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더욱 넓고 큰 것을 바라볼 수 있는 안목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축산과 관련된 교육 및 연수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이수하면서 식견과 경륜을 넓히고 있다.

나는 지금 이 쇠고기 협상 파동, 사료 값 파동 등이 아무리 힘겨워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노력으로 가득 차 있다. 나의 황혼 설계에 한점의 변경이나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하여 필사의 정신자세로 임하고, 그날을 꽃피우기 위한 밑거름을 착실히 주고 가꾸고 있다. 찬란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사랑하는 소들과 눈 맞춤 하면서 뭉실뭉실하게 살쪄가는 소처럼 내 인생 황혼기도 살쪄가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값진 땀방울의 소중한 결과를 지금 확인하자는 것이 아니다. 멋진 훗날의 황혼에 그날 확인하는 것임을 믿는다.

   
  [최종편집 : 2008/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