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다문리>

   
 

1997년 11월 외환위기(IMF)로 인하여 본의 아니게 나는 이곳 경기도 양평으로 귀농을 했다. 가진 것 이라고는 처와 어린 아들 둘뿐, 빚도 1원 한 장 없었고 가진 돈도 1원 한 장 없었다.

지인의 도움으로 남의 논 5,300㎡(1,600평)을 임차했다. 그해 겨울 친구가 비가림 하우스를 철거하고 자동화 하우스를 신설했다. 철거하고 남은 파이프를 가져다가 3,300㎡(1,000평)의 중고 하우스를 아내와 같이 추운 줄도 모르고 단 둘이서 지었다.

눈보라치는 엄동설한에도 다가올 봄날 따뜻한 하우스 안에서 자라날 채소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한 덕에 2월에는 취나물 씨앗을 파종하였고, 고추.상추 등을 재배했다.

5월의 따뜻한 봄날, 채소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수확하게 되었다. 아내와 둘이서 수확하기에는 벅차 동네 할머니들의 손을 빌려 수확해 서울 경동시장으로 위탁 판매를 보냈다. 원가계산도 없이 우선 돈이 들어온다는 것만으로 기쁨에 젖어 있었다.

상추도 팔고, 꽈리고추도 팔고, 취나물도 팔고…. 들판에 돈 되는 것은 모두 채취하여 판매했다. 그러나 노력한 만큼 소득이 뒤따라주지 않았다.
그렇게 1998년의 농사는 엉터리 농사로 1년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심각하게 ‘돈 되는 농사가 무엇일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1999년 봄, 임차한 땅 5,300㎡에서 노지로 내버려 두었던 나머지 1,980㎡(600평)에 정부 보조사업으로 비가림 하우스를 설치하면서 처음으로 농협에 융자 빚을 지게 됐다. 그렇게 5,300㎡ 전체에 취나물과 야생 참나물을 재배해 연중 생산을 목표로 관리했다. 3월 하순부터는 수확해 시장에 내다 팔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이른 봄철이라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돼 괜찮은 농사라고 생각됐다.

그런데 5월로 접어들면서 채소가 거의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고 가격도 주저앉았다. 그래도 겨울을 제외한 3월~10월까지 산나물을 생산.유통을 하려고 나름대로 공부도 하고 노력도 많이 하였는데 기대만큼 따라 주지 않았다. 나는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 위치한 산채시험장을 방문하여 선생님들께 지도도 받고 씨앗도 공급받았었다.

나는 1990년 4월 1일, 35세의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여 자연히 아이를 늦게 볼 수밖에 없었다. 남의 집에는 다 있는 컴퓨터. 집안의 어려운 사정도 그렇지만 컴퓨터에 대한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해 아이들에게는 ‘중학교에 입학하면 사주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농산물도 인터넷으로 판매할 수 없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어서 2001년에 컴퓨터를 구입하게 됐다.

컴퓨터를 구입한 후 컴퓨터에 대한 지식도 없고 학원 다닐 여유도 없고해서 처음에는 게임하는 용도로만 활용하다 농림부.농촌진흥청.농협 등 농업 관련된 기관을 검색하여 농업정보를 접하게 되면서 2002년 농림부지원사업으로 농업인 홈페이지를 구축하게 됐다.

또 막연하게 홈페이지만 있으면 고객이 찾아와서 농산물을 구매해주는 것으로 알았는데 영 딴판이었다. 그래서 2002년부터 전자상거래 교육 등 농업관련 교육을 열심히 받기로 하고 지금까지 매년 수많은 컴퓨터 교육을 이수하고 있다.

2002년 농지 1만3,200㎡(4,000평)을 추가로 임대하여 모두 1만8,500㎡(5,600평)으로 늘어났다. 1만3,200㎡에는 산나물을 재배하고 5,300㎡에는 찰옥수수와 가을배추와 가을무를 재배했다.
이렇게 하기까지 7,500만원이라는 큰 돈을 융자받아 비가림 하우스와 저온저장시설을 해서 뭔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어디에 문제가 있었는지 농지면적에 비례해 소득은 오르지 않고, 매년 영농자금 등 대출받은 정책자금의 이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생각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자세로 농업관련 교육을 이수하기로 하고 농림수산정보센터에서 전자상거래 교육을 시작으로 새롭게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은 모두 섭렵해 나가기 시작했다.

- 제2기 사이버농업 경영자 과정 수료(농촌진흥청)
- 농촌생활과학 교육 녹색관리개발반 수료(한국농업전문학교)
- 제3기 사이버농업 경영자 과정 수료(농촌진흥청)
- 농산물 전자상거래 운영관리 교육 수료(한국농림수산정보센터)
- 농업경영정보화 리더반 교육 수료(국가전문행정연수원)
- 최고 농업경영자 첨단농업기술 과정 수료(한경대학교)
- 농산물 e비지니스 경영교육 수료(한국농림수산정보센터)
- 한국농촌관광대학 제1기 졸업(한국농촌관광대학)
- 벤처농업과정 수료(농업연수원)
- 벤처농업 심화과정 수료(농업연수원)
- 한국벤처농업대학 5기 졸업(한국벤처농업대학)
- 벤처농업 탑프런티어 스쿨 1기 수료(한국벤처농업포럼)
- 앙평환경농업대학 7기 수료(양평군)
- 농업경영비지니스과정 수료(농촌진흥청)
- 농수산물 마케팅대학 수료(at농수산물 유통공사)
- 농수산 무역대학 5기 수료(농수산무역신문사)

이렇게 많은 과정을 공부하면서 교육비도 연간 500만 원 이상 투자했다. 지금도 교육에 대한 투자는 아끼지 말자는 생각이다. ‘연간 교육비로 부부가 1,000만원 정도는 투자하자. 1,000만원 투자하면 1억원의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교육이수 과정을 소개하다가 앞서 이야기하던 내용으로 돌아가서 1만3,200㎡(4,000평)의 비가림 하우스에 산나물 재배로 홈페이지 등 인터넷에 홍보를 하다 2004년 4월 4일 SBS 방송을 타게 되었다. <모닝와이드- 알찬기찬 찬찬정보>라는 프로그램에 난생 처음 출연하게 되었다.

그러나 연중재배로 소득을 올리기에는 어려운 문제가 많아서 작목을 바꿔야하는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비가림 하우스를 관리할 수 없을 정도로 소득이 따라주지 않았는데 우연하게 기회가 왔다.

2004년 가을 김장용 무를 약 3,000㎡(1,000평)정도 심었는데 무값이 폭락을 하였다. 무는 땅에 묻고 무청을 말려서 시래기로 만들어 인터넷에 판매 글을 올려 보았더니 의외로 잘 팔렸다.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듬해인 2005년부터 1기작에 찰옥수수, 2기작으로 무를 심어서 시래기를 만들기로 하였다. 홈페이지 등 인터넷에 집중 홍보를 하기 시작했고, 교육을 다니면서도 시래기를 열심히 홍보 하였다.

시래기 농업과 함께 농업과 관련된 외부 활동도 열심히 나섰다. 우리 마을은 250여 가구나 되는 상업과 농업이 함께하는 마을로, 귀농인을 이장으로 뽑아주기 어려운 마을이었다. 이장 후보가 3명이나 출마한 치열한 선거 끝에 임기 2년의 이장에 뽑혀 2000년~2005년까지 일했다.

또 한국사이버농업인연합회에서 대표를 맡아 2004년~2006년까지 3년의 임기를 마쳤다. 지금은 농촌진흥청 영농현장모니터 중앙회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양평군사이버농업인연구회장?양평군찰옥수수연구회장을 맡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열심히 활동하고 공부한 덕분에 많은 언론에 홍보되어 농가소득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 방송 출연한 프로그램을 대충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 SBS 모닝와이드(2004. 4. 4) : 알찬기찬 찬찬정보
- MBC 심야스페셜(2005. 5.17) : 흙에 살리라
- SBS 생방송 투데이(2005.11.10) : 우리농산물 대탐험
- MBC 추석특집 다큐(2006.10. 7) : 한국의 산나물
- SBS 모닝와이드(2006.10.13) : 한?중?일 김치 삼국지
- KBS 싱싱일요일(2006.11.26) : 도시탈출 전원을 꿈꾸다
- SBS 모닝와이드(2007. 1. 9) : 박준희 건강 프로젝트
- KBS 싱싱일요일(2007. 6) : 100회 특집
- KBS 6시 내고향(2007.11.20) : 아름다운 귀촌일기
- KBS 싱싱일요일(2007.12.30) : 계절의 보석
- SBS 모닝와이드(2008. 1.15) : 천연 소화제 무
- MBC 화제집중(2008. 1.22) : 신귀농일기
- MBC 9시뉴스(2008. 1.26) : 시래기

텔레비전 방송 외에도 <농민신문>에도 몇 번 소개되었고 <세계일보>, <이코노미스트> 등 신문과 잡지에도 여러 번 소개됐다.
상복도 따라 주었다. 2004년 농업인 홈페이지 경진대회에서 우수상을 시작으로, 2007년 11월에는 농업정보화에 관련한 농림부장관상도 받게 됐다.

2006년부터는 작부체계도 1기작 유기농 봄배추, 2기작 하모니카 찰옥수수, 3기작 무(시래기), 가을배추로 자리매김 하였으며 씨제이(CJ)몰 등을 통해 인터넷과 직거래 판매를 병행해 연간 2억5,000만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

지금까지 나와 아내가 일구던 <동수농원>을 지켜보던 지역농업기술센터의 도움으로 올해에는 영농조합법인 동수농원을 설립하고 찰옥수수 및 시래기를 가공 저장할 수 있는 냉동?냉장시설 등을 건립하여 연중 판매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농업은 생산만으로는 부가가치가 없다. 생산.가공.유통을 함께 할 수 있는 농업인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이므로 항상 생각하고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지역의 많은 농업인 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군수님께 건의하여 전문농업교육 이수 농업인 에게 교육비도 지원할 수 있도록 길을 터놓았다.
아직도 관행농업에 집착하는 농업인이 많다. 이분들을 교육을 통해 생각을 바꾸는 농업인으로, 농사도 돈이 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짧은 경력이지만 귀농해서 자리잡아가고 있는 영농조합법인 동수농원의 대표로 성공사례발표도 많이 다니고 있다. 앞으로도 동수농원의 곽희동.윤정수는 “항상 노력하고 생각을 바꾸는 농업”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농업 경영인(CEO)부부’가 되겠다는 각오다.

2008년 여름, 양평 용문산 아래 동수농원지기 곽희동.윤정수 배상

   
  [최종편집 : 2008/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