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정보화 작은 힘 됐으면…”
   
  봄밤, 따뜻한 스웨터를 걸치고 뜨락에 나와 앉아 하늘을 올려다본다. 봄 하늘 가득 깔린 별들의 유영(遊泳), 볼을 스치는 바람은 정겹고, 붉은 가로등 아래 진달래 목련의 꽃망울이 하나 둘씩 터지기 시작하는 싱그러운 밤이다. 이러한 밤, 나 자신 숨을 쉬면서 살아있음이 이토록 행복할 수 없다.

한때, 사는 게 너무 힘겹고 부담스러워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 이렇게 살아봤자 더 이상 무슨 낙()을 보겠냐는 그런 절망감, 지금보다 더 나쁠 순 없겠다는 아득한 삶의 고통이 힘겨워서 나는 어서어서 시간이 흘러가 버리길, 그리하여 빨리 늙어서 삶에 미련과 집착을 버리게 되기를 그렇게 간절히 원한 적이 있었다.

의식은 있으되 실천하지 못하는 비겁함 때문에 내 젊음은 언제나 거추장스러웠다. 먹고 사는데 그다지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님의 의사에 반하는 일은 별로 하지 않으면서, 80년대 험난한 대학 생활을 모범생으로, 장학생으로 착실히 영위해 가는 그저 그런 여대생이었다. 넉넉한 용돈으로 뒤처지진 않을 만큼 멋을 부리고, 만나는 사람들의 성격대로 적당히 비위를 맞추며 살아가지만, 혼자 남는 시간에는 자신의 그 적당함이 너무나 싫고 비굴하게 느껴져서 호시탐탐 도피처를 찾고 있는 모순 덩어리, 그게 바로 나였다.

대학 시절, 지금의 남편은 나와는 정반대의 사람이었다. 항상 맨 앞에 서서 집회를 계획하고, 또 행동으로 보이던 그의 모습은 자못 인상적이었다. 부러웠다. 그의 행동력, 그의 지도력, 그의 독립적인 사고방식과 지치지 않는 투쟁성이 부러웠다. 언제나 그는 신념에 차 있었고, 자신의 안온한 삶을 꿈꾸기보다 대중과 더불어 사는 삶을 꿈꾸었다. 그래서 졸업 후의 진로를 자신이 태어난 곳, 이곳 농촌에서 농민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농사꾼의 길을 택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정이었을 게다. 그의 그런 모습들이 내 안에 잠재워 있던 행동력을 일깨워주었다. 비겁함과 적당함을 버리고 나는 그의 옆에서 다시 태어나기로 했다.

신혼 초, 다 쓰러져가는 농가 하나를 차지하고, 땅을 일구고 닭과 개를 키우며 그림 같은 한때를 살았다. 그는 민주 투사에서 순박한 농부로, 나는 방송작가에서 농부의 아내로 진로를 바꿔 흙을 벗삼아 열심히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오이도 따고, 고추도 따며 몸은 고달파도 마음은 넉넉한 한때를 살았다. 그러나 현실은 참으로 냉혹한 법, 달콤한 신혼은 그리 오래 가질 않았다. 아이가 들어서면서 어느덧 마음에 욕심이 생겼던 것인지도 모른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면 꿈꿀수록 삶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땅은 거짓이 없다고 누가 말했던가. 어느 해에는 한여름의 저온현상으로 냉해 입은 알갱이 없는 쭉정이 나락이 불태워졌고, 또 어떤 해에는 고추값 폭락으로 미처 따내지 못한 고추들이 하우스 가득 말라 죽었다. 오이며, 감자며 풋고추며 그 어느 것도 효자 노릇을 한 것은 없었다. 농사가 잘되면 가격이 폭락하고, 가격이 좋으면 건질 것이 없었다. 비료값이며 농약값이며 인건비며 자재비며 모든 것이 빚으로 남아, 농사는 지으면 지을수록 손해가 되었다.

하얗던 얼굴에는 기미와 주근깨가 덕지덕지 내려앉았고, 곱고 가늘던 손마디는 관절이 불거지고 거칠어져 상처만이 남았다. 윤기가 찰랑찰랑 흐르던 머리카락은 수세미마냥 푸석거리고 마음은 황폐해져만 갔다. 경제적으로 쪼들리면서 나는 웃음을 잃고 성격마저 편협해져갔다.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게 되었고,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만 보게 되었다. 농촌 사회에 뿌리깊게 존재하는 남성우월론, 여성의 발언권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 알게 모르게 그런 보수적인 사고방식에 남편은 동화되어 가고 있었고 그런 그의 이중적인 면모 때문에 나는 내 선택을 후회하게 되었다.

강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쩌면 그가 그리도 무책임하게 느껴지는지 옆에서 그를 지켜보는 것은 더욱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한 번 생긴 불신감은 계속 꼬리를 물었고, 그와 헤어지고 싶다는 유혹이 고개를 쳐들었다.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이혼하자는 소리가 나왔다. 한 번 입 밖으로 나온 그 소리는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었지만 그는 흠칫 굵은 눈썹을 한 번 꿈틀거렸을 뿐 별달리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딱히 앞날의 비전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무작정 그에게서, 그리고 그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도망가고 싶었다. 삶의 바닥까지 추락해 버린 내 존재의 의미를 다시 찾고 싶었다. 오로지 농사를 지어 승부를 보겠다던 생각을 버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다시 시작했다.

농사철이 끝나는 가을이면 이 학교 저 학교로 다니면서 기간제 강사를 나가기 시작했다. 가족과 헤어지지 않고 오순도순 사는 것이 결혼 후 우리 부부의 인생 목표였지만, 그조차도 확신이 없어져 버렸고,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하며 임용고시를 준비했다.

하지만 과연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인지 확신이 서질 않았다. 내가 이렇게 남편의 뜻을 꺾어도 되는 건지, 내 선택을 포기해도 되는 건지 갈등은 점점 거세게 일었다. 게다가 십오년이란 시간 동안 여성 농민으로 살아오면서 내게 생긴 투지와 끈기도 이대로 물러서면 안된다는 오기를 심어주었다.

나는 이곳 농촌에서 살아남아야만 했고, 그러한 생존의 이유 때문에 내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와 나의 갈등이 싹트기 시작한 건 경제적 어려움 때문이기도 했지만 내 안의 불확실성 때문이기도 했다. 헤어지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삶에 대한 회의와 절망감도 버렸다. 끝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해 버렸던 화해의 실마리는 마음을 고쳐먹으면서부터 그렇게 찾아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에 대한 그와 나의 사랑이 다시 우리들을 하나로 묶어주었다. 우리들이 세상에 내어 놓은 아이들은 조금씩 자라고 있었고, 우리 삶을 이어주는 소중한 연결고리였다. 그런 아이들이 바라고 있는 화목한 가정, 돈은 비록 많지 않지만 엄마, 아빠가 서로 위해주고 사랑해주는 모습을 보여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내색을 하지 않았을 뿐, 그 또한 나와의 화해를 절실히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내 감정에만 사로잡혀 그를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었다. 그가 겪었을 좌절과 절망을 보지 않고, 떠나겠다는 말로 그를 가장 힘들게 했고, 외롭게 했다는 것도 깨달았다. 결혼 후 1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간 후에야 우린 비로소 ‘부부’라는 단어의 의미를 깨닫고 진정한 부모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농사일에 지친 그에게 시원한 보리물과 냉커피를 타다 주고, 굳어진 근육들을 풀어 주었다. 가끔은 아이들 앞에서 상추쌈을 싸서 입에 넣어주고 가벼운 입맞춤을 주고받기도 하였다. 아이들은 놀려댔지만 그래도 그런 우리 부부의 모습을 덩달아 즐거워했다.

나는 임용고시 보는 것을 완전히 그만두었다. 그리고 우리 지역에서 남편처럼 학생운동을 하다가 농민운동으로 돌아서 들어온 후배 몇을 모아 학원을 시작했다. 도시지역처럼 변변한 학원 하나 없이 배우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아이들을 위해 설립한 학원이었다. 정부에서 약간의 운영비만 지원해 준다면 무료로 운영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오전에는 농사일을 거들고, 오후에는 학원에 나가 밤늦게까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바쁘고 정신없는 나날이지만 마음은 평안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온 가족이 둘러 앉아 일상의 소소함을 늘어놓으며 맛난 저녁을 함께 하는 시간은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었다. 나는 가족을 떠나지도, 그 또한 농사일을 접지 않아도 되는 해결책을 우리 모두 노력하여 찾은 것이다.

낮에, 파랗게 잘 마른 시래기를 걷어다가 마당 한 쪽에 가마솥을 걸고 푹 삶았다. 하룻밤 제물에 우려서 여러 번 헹구고 국을 끓이고 나물로 볶았더니 저녁 식탁이 푸짐했다. 왕후장상의 밥상 부럽지 않은 저녁이었다. 문득 우리들 삶은 이런 시래기와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각박하고 힘들어서 부서져버릴 것 같지만 물을 만나면 제 몸집의 열 배로 부푸는 것처럼 서로 대화하고 노력하면 삶의 가치를 수십 배로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어느 새 그가 내 등 뒤에 다가와 차가운 맥주 한 캔을 건넨다. 봄 밤, 시원한 맥주가 목구멍을 차갑게 훑으며 피곤에 지친 내 온 몸에 퍼져가고, 그와 나는 오래된 연인처럼 그렇게 나란히 앉아 팔짱을 끼고 밤하늘을 바라본다. O033-436-5085.

   
  [최종편집 : 2004/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