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에서 포도농사만 20년 동안 짓고 있다. 지금은 신지식 농업인에 선정될 정도로 농사에 있어서는 박사지만 처음부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수확도 제대로 못하고 농사를 망친 적도 있다. 포도농사 잘 짓는다는 이의 농법을 그대로 따라했는데도 잘되지 않아 ‘포도농사가 쉬운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결과 차츰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게 됐다. 9년 전부터는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짓고, 친환경농산물 품질인증도 받았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제는 포도농사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많이 안다고 자부할 수 있게 됐으며, 판매 부문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됐다. 가락동 도매시장에서는 포도상자의 ‘이원희’라는 이름만 보고도 높은 값을 받을 정도가 됐다.

그러나 매년 되풀이되는 홍수출하로 인한 가격하락은 큰 골칫거리였다. 출하 초기에는 포도값이 10㎏들이 한 상자에 2만5,000원이더라도 출하가 늘수록 1만5,000원, 1만원으로 떨어지며, 물량에 따른 큰 폭의 오르내림도 일년에 서너번씩 되풀이됐다.

‘이런 일을 매년 속수무책으로 겪어야 하는가?’ 하고 고민하던 때 농림부 홈페이지 제작 지원농가로 선정됐고, 1999년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을 시작했다. 홈페이지 개설 이후 2년 동안은 홈페이지가 기대만큼 판매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나고 보니 ‘홈페이지만 개설하면 판매는 저절로 될 것’이라는 안이한 생각에 판매를 위한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탓이다.

우선 ‘내 홈페이지에 고객이 찾아오도록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고, 길던 홈페이지 주소를 간단하게 자연부락 마을 이름을 넣은 ‘모리포도(moripodo.com)’로 바꿨다. 또 인터넷 주소창에 ‘영동포도’라고 입력하면 바로 홈페이지 접속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더불어 고객서비스도 강화했다. 택배비도 고객이 50%만 부담토록 하는 한편 10상자 이상을 주문하면 1상자는 무료로 보내주는 혜택도 제공했다. 최고 품질의 포도만 선별해 판매하고, 포도즙을 덤으로 넣어 고객들에게는 공짜의 기쁨을 주면서 포도즙도 홍보하는 두 가지 효과를 얻었다.

농산물 전자상거래는 장점이 많았다. 택배비는 가락동에 출하할 때의 상·하차비, 운임, 수수료 등을 합친 가격과 비슷해 문제되지 않았으며, 포도값을 정해놓고 주문 후 입금되면 배송했기 때문에 안정된 가격에 안심하고 농산물을 팔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복잡한 유통경로를 거치지 않고 저렴한 값에 좋은 품질의 포도를 집에 앉아서 받을 수 있어 고객에게도 유리한 방법이었다.

농산물 전자상거래의 장점을 몸으로 느끼며 열심히 홈페이지 운영과 관리에 노력을 기울인 결과 차츰 주문량이 늘기 시작했고, 농림부가 주최한 ‘제1회 농업인 홈페이지 경진대회’에서 장려상을 받기도 했다.

농산물 전자상거래를 하다보면 가장 자주 부딪히는 문제는 배송 문제다. 주로 택배회사의 부주의로 포도알이 터져 소비자의 불만을 사는 경우가 많았는데,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택배회사로부터 배상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포도알이 터지지 않게 배송되는 방법을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했다. 고심 끝에 찾아간 옥천포도연구소와 충북도농업기술원으로부터 올해 안에 포도알이 터지지 않는 상자를 개발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렇게 전자상거래가 자리를 잡다보니 이제 혼자만 높은 소득을 올려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전자상거래 하는 것을 지켜보던 마을 주민들 중에는 자신들도 컴퓨터를 배워서 전자상거래를 했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막상 가르쳐줄 테니 배워보라고 하면 이 나이에 컴퓨터는 어떻게 배울 거며, 배워봐야 얼마나 활용하겠느냐며 컴퓨터 앞에 앉기를 대부분 꺼렸다.

그러던 중 지난해 정보화선도자로 선정됐고, 다른 농업인들에게 더욱 열심히 컴퓨터를 가르치겠다고 다짐하면서 정보화의 필요성을 설명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영동군농업기술센터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새해 영농설계 교육’을 통해 12회에 걸쳐 1,230여명의 농업인들에게 사례발표를 했고, 금년에도 7회에 걸쳐 사례발표를 하면서 정보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렇게 하다보니 전화나 전자우편으로 문의를 해오는 농업인들이 많았고, 실제로 36농가에 100회 이상 컴퓨터 기초교육을 하게 됐다.

그렇게 정보화선도자로 활동을 하던 지난해 여름, 갑자기 한국농림수산정보센터로부터 마을에 ‘디지털사랑방’을 설치하면 운영할 수 있겠냐는 문의 전화를 받았다. 당시에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르고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을에 초고속통신망이 들어오지 않아 신청자격이 안 될 상황에 처해진 것이었다. 초고속통신망이 들어와야 컴퓨터를 지원한다는 것인데 한국통신에 몇 번을 신청해도 해당지역이 아니어서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결국 한국통신 영동지점에 직접 찾아가 시설운용과장을 만났지만 거리가 멀어서 설치가 안 되는 지역이라는 이야기만 들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직접 집에 와서 실험을 해달라고 애원한 끝에 직접 테스트를 해보겠다는 답을 듣게 됐다.

이후 한동안 ‘디지털사랑방’에 대한 소식이 없어 포기하고 있었다. ‘전국에 다섯 군데를 설치한다고 했는데 설마 우리 마을에 지원이 되겠는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포기하고 있던 11월께 우리 마을이 선정됐다는 연락이 왔고 12월2일 전국 5군데 중 하나로 ‘디지털사랑방’ 지원이 확정됐다.

이제 모리마을 사람들은 컴퓨터를 배우려고 시간만 있으면 디지털사랑방에 모인다. 처음 컴퓨터를 배우던 이들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아주머니부터 80세의 노인회장까지 모두 손가락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영어의 소문자를 몰라 키보드에 있는 대문자로만 사이트나 전자우편 주소를 써달라던 아주머니들도 이제는 아들이나 손자에게 전자우편을 보내서 컴퓨터를 배운다고 자랑한다. 전자우편으로 손자 손녀의 사진을 받아보면서 ‘세상에 이럴수가’ 하며 기뻐하고 있다.

마을의 한 할아버지는 컴퓨터를 배우면서 기억력이 좋아지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기뻐하고 있다. 컴퓨터를 배운 지 불과 2~3개월 만에 마을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가락동 농산물 시세를 확인하기도 한다. 올해부터는 출향인들이 모리마을의 홈페이지(mori.dbang.or.kr)에서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도록 관리할 계획이다. 마을장터 메뉴에는 주민들이 농사지은 농산물을 올려놓고 출향인 주소록을 만들어 입력 중이다. 이를 통해 개인 홈페이지가 없어도 마을 홈페이지를 이용해 농산물을 제값 받고 팔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농촌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지만 이제 우리 농업인들도 어렵다고만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 어려움을 극복할 방법은 바로 농업 정보화를 통한 판매 방법의 개선에 있다. 이를 위해 우리 농업인 모두가 노력한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O043-743-8796.
   
  [최종편집 : 2004/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