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 컴퓨터를 켜고 '지리산 먹점골 매실농장`이라는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affis.or.kr/∼nods)에 접속하는 것으로 하루를 엽니다. 매실농사를 짓는 우리는 이 홈페이지를 통해 매실을 주문받아 판매하는데, 작년에는 판매량 모두가 전자상거래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그날그날의 주문 내역을 확인하고 고객에게 발송 예정일과 함께 감사의 메일을 보냅니다. 그 다음에는 방명록의 글들을 살펴보고 답장을 올리거나 농업 관련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한 뒤 사이버 농장에서 나와 식사를 하고 현실의 농장으로 향합니다. 오후에는 은행업무를 인터넷뱅킹으로 처리하고 회계프로그램을 통해 농업경영장부를 작성합니다. 이것이 우리 부부의 일과지요.

지금의 우리가 있기까지 모든 것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은 커녕 컴퓨터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나 자신이 전자상거래의 중심에 서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앞서가려는 의욕은 그만큼 더 많은 땀과 노력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인천에서 자란 나는 1986년 농촌총각과 도시처녀와의 결혼을 주선하는 한 단체를 통해 남편을 만나 아름다운 전원생활을 꿈꾸며 결혼해 이곳 하동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우리 마을은 '하늘아래 첫동네`라 불리는 산골 오지로 17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있고, 산을 깎아 만든 다랑논을 경작하면서 밤과 매실을 재배하는 전형적인 산촌이었습니다.

차츰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농촌생활이 내가 동경해온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육체적 노동에 의존하는 농사일은 도시처녀의 환상을 깨뜨리고 나로 하여금 억센 촌부로 거듭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래도 영농지식과 생활정보를 얻을 수 있는 벗이 있었으니 바로 농민신문입니다. 나는 결혼 후부터 지금까지 농민신문을 애독하고 있는데 97년에는 '농민신문 애독상` 수기로 상패를 받기도 했습니다.

우리 매실농장이 산지에 있다보니 어려운 일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길이 포장돼 차량과 경운기를 이용할 수 있지만 당시는 퇴비와 우분을 지게에 지거나 머리에 이고 해발 400m나 되는 산길을 올라야 했습니다. 또 가뭄과 우박 때문에 타격을 입은 해도 있었지요. 어느 해 4월에는 우박이 한 시간 동안이나 쏟아져 막 맺히기 시작한 열매를 떨어뜨리고 잎사귀를 모조리 찢어놓았는데 빈 가지만이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 광경에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내가 굴하지 않고 농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봄이면 어김없이 피어나는 화사한 매화와 6월이면 농장을 온통 새콤한 향기로 채우는 초록의 매실로부터 위안과 희망을 느끼곤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부부는 진주조개가 영롱한 진주를 키워내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듯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해 마침내 초록의 진주인 품질 좋은 매실을 생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10여년 농사를 지으니 매실의 상품성은 높아졌지만 언제나 판로와 가격이 문제였습니다.

출하시기가 되면 매실값은 중간상인에 의해 대패질하듯 깎여나갔고, 생산지에서와 달리 소비지에서의 높은 가격은 또 한번 가슴을 후려쳤습니다. 그래서 부산으로 창원으로 매실을 싣고다니며 직판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남은 것은 지친 몸뚱아리뿐이었지요.

우리 농장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97년의 일입니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어떤 농민이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직거래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귀가 번쩍 열렸어요. '바로 이것이다!`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매실은 예전부터 건강식품으로 인식돼 있고 이웃 일본에서는 매실을 이용한 기능성 식품이 다양하게 개발돼 있기 때문에 홍보만 잘 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 선 것입니다.

여기저기 알아보니 홈페이지 제작 비용이 500만∼600만원이나 된다고 하여 기가 막혔지만 우선 다룰 줄도 모르면서 200만원이 넘는 컴퓨터부터 들여놓았습니다. 시골살림에 웬 컴퓨터냐는 눈초리들을 의식하며 산길을 40분 정도 걸어내려가 버스를 타고 군청, 농업기술센터, 농업진흥원, 경상대 농업정보119 등으로 컴퓨터를 배우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강좌를 들어도 생소한 용어 때문에 돌아서면 잊어버리기 일쑤였고 동네에 컴퓨터를 아는 사람이 없어서 복습을 하다 잘 안되면 물어보고 싶어도 물어볼 데가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컴퓨터 배우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98년 10월에는 수원 농촌진흥청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고 온 남편에 의해 AFFIS라는 한국농림수산정보센터의 사이트를 알게 됐고, 이듬해 2월쯤 AFFIS로 '6,000여평의 매실농사를 짓고 있는데 판로가 없어 인터넷 홈페이지를 개설하려 하나 비용도 많이 들고 홈페이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해 답답하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냈습니다.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이었는데 4일만에 마침 10농가를 선정해 홈페이지를 제작해줄 예정이니 신청하라는 내용의 회신이 왔습니다.

그제서야 빛이 보이는 심정이었지요. 부랴부랴 경남농업진흥원 등을 쫓아다니며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사실 농사를 지으면서도 농림부나 농업진흥원 등의 역할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막상 찾아가보니 생각 이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농업인들이 이러한 곳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우리 농민과는 무관한 곳`이라 생각한 것이 아주 잘못된 판단임을 깨달았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아니면 아직 정보화에 대한 개념이 희박한 때라 그랬는지 10농가에 선정이 됐고 99년 6월 마침내 '지리산 먹점골 매실농장`이라는 간판의 우리 인터넷 홈페이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토록 소원이었던 사이버 농장을 갖게 된 것입니다. 농림부장관의 축하메시지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의 게시판을 통한 격려 속에 홈페이지가 열렸으나 그 해의 고객은 30여명에 불과했습니다. 기대가 너무 큰 탓에 다소 실망도 컸지만, 그래도 해냈다는 자부심만은 대단했지요.

홈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우리는 4가지의 원칙을 세웠습니다. 철저한 품질관리, 리콜 실시, 후불제, 저렴한 가격이 그것입니다.

품질관리는 말할 것도 없이 우리농장의 최우선 으뜸원칙입니다. 철저한 선별은 물론, 고객들을 농장으로 초청해 재배과정을 소개하거나 산나물을 선물해 감동을 안겨드렸습니다. 조금이라도 하자가 있는 물건은 수거비용을 부담해 돌려받고 즉시 새 매실로 보내드리는 리콜도 고객 확보에 큰 도움이 되더군요. 한번은 제 날짜에 배달한 매실이 고객 실수로 자동차 트렁크에 사흘이나 있다가 익어버렸는데, 익은 것은 술 담가먹게 하고 새 매실을 보냈더니 더 많은 고객들을 소개해주었습니다.

후불제는 실시에 앞서 상당히 고심을 했습니다. 물건만 받고 돈을 안보내주면 어떡하느냐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품질에 자신이 있었기에 과감히 시행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또 우리 농장은 전국 공판장의 시세를 면밀히 조사하여 15∼20% 싸게 판매하였습니다.

그리 많지 않은 고객이었지만 반응이 아주 좋았지요. 주문이 들어오면 즉시 배달 예정일을 알려주고 배달 당일에는 미리 전화를 하여 고객이 신선한 매실을 받아볼 수 있게 했더니 농사에 인터넷을 접목한 것만도 놀라운데 서비스까지 만점이라며 좋아했습니다.

또 인터넷으로 구입한 물건이 대개 품질이 떨어지는 것이 많던데 이렇게 좋은 매실을 보내줘서 고맙다는 메일도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홈페이지가 생겼다고 해서 판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어서 지난해에는 홍보에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컴퓨터 검색사이트에 우리 홈페이지를 링크하고 인터넷 동호회에도 가입하여 우리 농장을 알렸습니다. 남편은 서울까지 올라가 명함을 뿌리고 가정에 배달되는 신문에는 우리 농장을 소개한 전단을 끼워 돌렸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던가, 그 결과 지난해에는 매실 수확이 6월에 시작되는데도 5월에 벌써 생산예정량 20t에 대한 예약이 완료되는 기적이 일어났고 주문이 폭주해 이웃 농가의 매실까지 전부 판매를 해주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수익도 공판장을 통해 출하하던 경우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우리 농장의 고객은 현재 1,000여 명이나 됩니다. 꼭 매실을 구입하려는 것이 아니라 매실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매실의 효능 등에 대한 자료를 홈페이지에 올려주고 있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이제 시작이고 아직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지난해 농업인의 날에 지식정보화 영농에 기여한 공로로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습니다. 농림부에 의해 우리 농장의 사례가 '이제는 컴퓨터 영농시대`라는 CD로 제작되어 배포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가 체험한 것을 여러 농업인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 노력합니다. 진주 경상대에 '농업정보화는 농업인 스스로 주도하자`며 만든 농업정보연구회의 운영위원으로 활동을 하고, 농장 견학 개방과 함께 농업기술센터에서 후계자를 교육하며, 여성농업인 정보대학에서 사례발표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우리는 다만 시대의 물결을 약간 앞서 탔을 뿐입니다. 다른 농업인들도 현재의 처지가 어렵다고 해서 좌절만 하지 말고 각자의 영농형태에 맞는 정보화 프로그램을 검토해볼 것을 권합니다. 찾아보면 분명히 길이 있을 것입니다. 이 수기가 우리 농업인들이 길을 찾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최종편집 : 2001/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