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자연농업에 입문한 지 32년. 자연농업 초창기 나와 몇몇 동료들은 30대의 젊은 나이에 주위의 무시와 편견, 모진 경제적 손실을 겪어가며 실험에 가까웠던 농업방식을 현실적인 가능성을 가진 농업체계로 만들어냈다. 나는 자연농업을 통해 자연을 경외하고 섬기는 힘을 기를 수 있었다.

내가 농업을 천직이라고 생각한 것은 중학교때다.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농사일을 시작했다. 봄배추에 관심을 가졌는데 첫해 내가 하는 걸 보고 한 두분이 따라하더니만 5년차정도가 되어 봄배추가 특수작물로 인정되고 소비도 늘어나자 너도 나도 심기 시작했다. 결국 10여년이 지나니까 특수작물도 아니고 생산비를 빼면 별로 남는 것도 없는 농사가 되고 말았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농사를 짓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전망을 가져야 하고 가격변동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합리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축산에서는 양계를 택했다. 200마리로 시작, 3년정도가 지나면서 500마리로 늘릴 수 있었다.

4H 활동중 서해안 갯벌을 막아 농토를 만든 일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흙 한 리어카를 부으면 다 떠내려가고 또 부어도 떠내려가는 일이 계속되었다. 매서운 추위와 싸우며 12명이 6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작업을 계속했다. 몸이 붓는 등 그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드디어 64년 4월 5만평의 농토를 만들어냈다.

군 제대후 나름대로 새로운 가능성을 찾다가 '생력 다수확 농법(지금의 자연농법)` 연수에 참가했다. 거기서 내 인생의 변화의 계기가 된 조한규 선생을 만났다. 조한규 선생의 자연농업 교육을 통해 내가 찾던 길을 찾았다. 그제서야 내가 서있는 땅인 산 3정보, 밭 4,000평, 논 4,000평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자연농업 연찬 이후 수원 화남농장에서 양계교육과 실습을 받았다. 양계라면 10년이나 되는 경력을 가졌건만 감탄이 절로 나오는 나날이었다. 그곳에서의 자연양계는 닭의 능력을 길러 닭이 알을 낳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다. 정남향의 완전 개방 계사, 태양이 항상 3분의 1정도 내리쪼이고, 계사 내부 온도가 한대·열대·온대로 사계절같이 나뉘어 자연적으로 추위와 더위를 느낄 수 있다. 딱딱한 사료를 줘서 소화능력을 강화시키고, 농업 부산물에서 사람이 못먹는 것을 사료로 이용하며 계절과 지역에 따라 다른 관리법을 개발해서 닭이 성장하고 알을 생산하는데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낸다. 이처럼 일반양계와 자연양계는 닭을 키워 알을 낳는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제외하면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실습후 농업경영에서 내가 택한 방법은 삼각농업이다. 양계를 통해 기본적인 자금의 흐름을 만들고, 계분을 발효시켜 유기질 퇴비로 사용하고, 일부는 한우의 사료에 첨가하기도 한다. 한우를 통해서도 우분을 발효시켜 퇴비에 쓰거나 닭의 사료로 활용한다. 밭·논농사에서 나온 부산물은 닭과 소의 사료, 병아리를 키우는 발열제로 사용해 온도를 맞춰준다. 이들 모두 서로 보완적이어서 생산비를 절감하는 요인이 되지만 이보다 더 큰 이익은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채소·양계·한우·벼, 네가지 구성을 30년 이상 해오고 있지만 어느 한때도 이 네가지가 동시에 폭락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채소가 안좋으면 양계가 좋고, 한우가 안좋으면 쌀농사가 잘 되고, 곡식값이 싸면 축산사료로 이용한다. 즉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는 셈이다.

자연농업은 상대편의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므로 지나친 친절과 간섭은 금물이다. 또 흙을 먼저 살려야 하는데 화학비료를 3년정도 넣지 않고 밑거름으로 계분, 우분을 토착 미생물로 발효시켜 단보당 1t정도 내고 5요소 띄움비를 중거름으로 내고, 작물의 시기에 맞춰 천연녹즙·한방영양제·미네랄액·현미식초 등을 이용하는 자연농업 방식을 활용해야 한다.

채소중에서 제일 주력한 작목은 배추다. 무농약, 무비료로 재배해서 생협, 한살림 등의 사전 주문을 받아 몇농가와 함께 계약재배를 했다. 그런데 갑자기 한파에다 눈이 내려 배추값이 급격히 올라 우리가 계약한 것보다 2∼3배 이상의 가격으로 팔려 나갔다. 결국 나 혼자만 2만포기를 계약대로 출하했다. 돈도 좋지만 약속을 지킨다는 것이 중요한 재산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배추 재배 30년경력의 핵심은 적당한 크기로 키우는 것이다. 너무 크면 질소 과다로 맛이 없고, 작으면 균형이 깨져 맛과 상품가치가 없다. 중간 정도의 적당한 크기가 맛과 상품성 모두에서 좋다.

70년대엔 돈을 모아 한우를 샀다. 농사도 잘 짓고, 새끼도 1년에 한마리씩 낳아주었다. 황소는 팔아 농사비로 쓰고, 암소는 번식우로 기르다보니 6년만에 10마리로 늘었다. 번식우는 너무 잘 먹이면 살이 쪄서 새끼를 잘 낳지 못한다. 운동을 많이 시키고 풀과 거친 사료를 줘서 내부 생식기능을 발달시켜야 한다. 황소비육은 어미소 밑에서 4∼5개월 젖을 먹이면서 네개의 위를 발달시키고, 양을 늘려줘야 한다. 250∼300Kg까지는 비육사료를 주지 말고 300Kg이 지나서부터 줘야 골격이 크고 기틀이 잡혀 고급육의 좋은 소로 600∼700Kg까지 키울 수 있다. 적절한 시기에 비육하고 훈련시켜야 경제적인 사양이 가능하다.

논농사는 이렇다. 벼를 5월25일께 심고 9월10일께 등숙하면 벼베기 15일 전에 호밀과 자운영 씨앗을 뿌려둔다. 3월30일께 1차로 베어 풀사료로 하고, 20일 간격으로 세차례 벤다. 마지막에는 엔실리지를 만들어둔다. 논은 단순히 벼만 재배하는 곳이 아니라 휴면기를 이용하여 초지로 이용 가능하다. 풀뿌리는 땅을 깊이 파고 들어가므로 벼 재배에도 서로가 보완적이다.

녹(풀)사료도 중요하다. 호밀·고구마순·돼지감자순·호박잎·무잎·옥수수·수단그라스·자운영 등은 녹사료로 이용하고 밀·고구마·감자·돼지감자·호박열매 등은 농후사료로 사용한다. 이런 것들은 논과 둑, 산 등 틈만 있으면 심어두는데 이때 주의할 점은 제초제 문제다. 들판의 잡초는 여러가지 농약에 오염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라목손>을 사용한 풀을 먹은 소와 돼지는 유산하게 되고, 닭이 먹으면 점차 폐사할 뿐만 아니라 냄새만 맡아도 난각이 없는 물렁알을 낳게 된다. 풀은 잡초로서 없애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동물에게 살아있는 비타민제다. 자연농업 방식에서는 닭·돼지·소 모두 풀을 전체 사료의 5분의 3정도 쓸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양계는 내가 인생을 바친 분야다. 일반양계를 포함하여 40년간 닭을 기르며 살았다. 일반양계를 할 때 병아리가 들어오면 난로나 가스불을 피워 37∼38도씨를 유지하기 위해 밤잠을 설쳐야 하고 몇번이나 주사를 놓아야 하고 약을 먹이고 사료값 부담에 어려워하며 늘 긴장과 걱정속에서 살아야 했다. 닭이 알을 낳는 것이 아니라 숫제 사람이 알을 낳는 것이었다. 자연양계를 접하게 된 것은 그런 점에서 내게는 사슬에서 해방된 느낌을 갖게 한 일이었다. 자연양계는 병아리때부터 딱딱한 사료와 낮은 온도에서 사육함으로써 적응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기본원리다. 일반양계가 옥수수가루를 사료로 먹이는 습관을 병아리때부터 배우도록 하는 것이라면 자연양계는 처음 오자마자 딱딱한 현미와 대나무 잎을 먹이는 것에서 시작된다. 가스를 이용한 열장치로 병아리 키우기는 37도씨를 유지하게 되면 습도가 떨어져 병아리의 색이 나빠지며 약한 병아리가 된다. 토열방식은 외부 온도보다 7∼8도씨정도만 높은 편이지만 건강한 병아리로 자란다. 이렇게 준비된 병아리는 이후 어떤 사료도 다 먹을 수 있다. 풀·짚·왕겨·낙엽 등 사람이 못먹는 것 중에서 불에 타는 것은 모두 사료로 사용이 가능하다.

자연농업은 자연농업 방식의 계사 모델에 있다. 이 계사의 원리는 남향으로 짓고, 앞뒤를 개방하여 신선한 공기의 흐름이 있게 하고 해의 이동에 따라 계사 전체에 햇빛이 들어와 바닥을 소독하며 계사 내부에도 각 공간마다 온도 차이가 있어 자연스럽게 공간 구분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사람사는 집에 안방, 마루같은 구분이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또 바닥에 깔린 짚·왕겨·톱밥속에서 닭똥은 자연분해되어 냄새가 전혀 나지 않으며 이 속에서 흙목욕을 하고 미생물을 자연스럽게 섭취하게 된다. 기본 식습관과 환경적응 능력, 자연농업 계사, 이 조건에서 닭은 건강하게 자란다. 건강한 체질과 좋은 환경에서 맛있고 좋은 알을 낳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결국 기술보다는 자연을 이용한 합리적인 경영이 중요하고 무엇보다 이런 자연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근본원리와 철학에 눈 떠야 한다. 즉 자연의 순리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농사는 자연에 순응하는 하나의 수련이다.

자연농업을 통해 나는 변화되었다. 내 삶은 행복했고 상대를 이해하는 사랑의 본질을 알게 되었다. 나는 배운 것도, 가진 재산도, 사회적으로 내세울 만한 일을 한 것도 없다. 오직 자연농업의 외길을 걸어왔을 뿐이다.

   
  [최종편집 : 2000/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