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5분만, 딱 5분만 더….』
『빨리 일하러 가야지. 해가 중천에 떴는데 일은 언제 하려고 그래!』
『엄마는 피곤하지도 않아. 제발 이 지긋지긋한 농사일 안하고 살 수는 없어?』
무심코 던진 둘째 아이의 한마디가 순간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내가 이 일을 하고 살아온지가 몇해가 되었는지, 앞으로 언제쯤이면 이 농사일을 그만하고 살 수 있는지를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쫒기듯 하루하루를 살아왔기 때문이다. 돌아볼 기회가 없었다기보다는 어쩌면 돌아보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남편과 나는 한동네에 같이 살았다. 어릴때 소아마비를 앓아 남편은 한쪽 다리를 절었다. 그러나 그러한 신체적 결함은 내게 보이지 않았고 지적인 소양과 끈기있는 모습에 끌려 결국 나는 그를 인생의 동반자로 선택했다.
독학으로 국가고시 1차에 합격하여 온동네를 떠들썩하게 했던 그는 그러나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다. 모친상을 당한지 얼마되지 않아 부친상까지 당했던 것이다. 당장 다섯명이나 되는 동생들의 생계가 문제가 되었다. 이러한 여려움에 처해 있는 그를 보면서 나는 마음적 고통이나마 같이 나누고 싶었다. 우리는 이렇게 하여 결혼을 했다. 비록 축복받지 못한 결혼이긴 했지만….

결혼으로 3년동안이나 친정에 발도 들여놓지 못하는 슬픈 결과를 낳기도 했지만 당시 나로서는 어떠한 어려움도 남편과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남편과 나는 이렇게 힘든 세상살이의 첫발을 내디뎠다. 물려받은 유산이라곤 시골 오두막 한 채와 하답 6백평이 전부였다. 남편만 믿고 시작한 현실은 한치의 양보가 없었다.
이웃사람들은 동생들을 고아원에라도 보내라고 했지만 남편은 굶어 죽더라도 함께 살아야 한다면서 오히려 이웃을 나무랐다. 가진 논이 하답이어서 비가 오는 해는 그런대로 양식 걱정을 덜 수 있었지만 그렇게 못한 해는 양식 걱정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이러한 고통을 나는 희망으로 채우려고 노력했다. 이를 악물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부닥쳐보려고 마음먹었다. 날품팔이·농사일·장시일 등 돈벌이가 될만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찾아나섰다. 처음 장사를 하러 나갔을 때는 말이 입안에서만 뱅뱅 맴돌았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목소리가 골목을 가득 메웠다. 결혼한지 2년쯤 되어 시누이가 시집을 가게 되었다. 가난한 집안에 묶여 있기보다는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나고 싶어했던 시누이는 오빠의 짐을 덜어준다는 생각에서인지 가뿐한 마음으로 떠나갔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속에서 언제나 나늘 눈물짓게 했던 것은 부모님 생각이었다. 시누이가 시집가던 날도 부모님 생각에 눈이 붓도록 혼자 흐느껴 울었다. 부모님이 그토록 반대하시던 결혼. 보란듯이 잘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나의 다짐은 시간이 지날수록 힘겹게 느껴졌다.
그때마다 남편은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태어나는 아이들도 희망이 되었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약간의 논을 샀다. 큰 평수는 아니었지만 토질이 좋아서 수확도 많았다. 큰 시동생은 장가를 갔고 아래 시동생들도 고등학생·중학생이 되었다. 힘들면 힘든대로, 즐거우면 즐거운대로 시간은 나와 관계없이 줄행랑을 쳤다.
어느 봄날, 시집갔던 시누이가 친정 나들이를 왔다.

『아가씨 얼굴이 축이 많이 난 것 같으네요.』
더욱 야위어진 시누이의 모습엔 고생한 흔적이 역력했다.
『고기잡이 한다고 뙤약볕에 온종일 나가 있어서 그렇다 아닙니까? 고생은 되어도 돈은 많이 벌어예.』
그러나 갑자기 찾아온 시누이내외에 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찬 걱정도 걱정이지만 아침에 쌀독을 박박 긁다시피해서 시동생들을 학교에 보낸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생각끝에 옆집에 쌀을 꾸러 갔다. 형편을 잘 아는 옆집 아주머니는 얼른 쌀을 내주었다. 바가지에 담긴 흰쌀을 들고서 대문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시매부가 마루에 걸터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 일을 어쩌나, 바가지에 담긴 하얀 쌀을 내려다보는 순간 내 신세가 너무나 처량하게 느껴졌다. 이대로 들어갈 수 있는 배짱은 나의 몸 어디에도 없었다.
하는수 없이 쑥과 나물로 쌀을 가린 뒤에야 나는 집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시누이 내외가 바가지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 같아 얼른 부엌으로 들어갔다. 학교에 갔던 시동생도 돌아오고 우리는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즐거운 얘기를 주고 받으며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여보, 점포 차린거 아무래도 그만 두어야겠어.』
시누이 내외를 보내고 난 남편이 풀죽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무슨 말이세요. 차린지 얼마됐다고요?』
그동안 모은 돈으로 남편이 예전에 배워 두었던 기술로 읍내에 TV 수리점을 열었다. 그런데 차린지 1년도 되지않아 남편이 이런 말을 하는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읍이라 다 아는 처지에 거의가 외상수리인데다 조그만 부품은 무료로 수리를 해주다보니 점포세 채우기도 어려웠던 것이다. 남편은 더이상 버틴다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러던 중 낮에 다녀간 시누이의 말이 언뜻 떠올랐다.
『요즈음엔 뭔가 새로운걸 해야 성공한다고요. 농촌도 이제 벼농사만 지어선 힘들어요.』
이렇게 하여 우리는 상업작물을 해보기로 계획했다. 그러나 모아놓은 돈이 없었다. 점포를 차린다고 돈을 다 투자하는 바람에 우리집 형편은 원점으로 다시 돌아간 것이다.
둘째를 낳은지 2년이 조금 지나 셋째 아기를 낳았다. 커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다시 이를 악물었다. 봄이면 모내기·논매기로, 시간이 날 때는 날품팔이를 했다. 여름이면 텃밭에 키운 채소를 시장에 내다 팔았고 가을엔 온종일 들판에서 살았다. 겨울철은 돈벌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였다. 하루 하루가 피곤하고 힘든 나날이었지만 항상 따뜻한 마음을 가지로 노력했다.

몇해를 지나 시동생은 해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배를 탔으며, 막내 아가씨는 대학에 진학했다. 큰 아이도 중학생이 되었다. 어린 아이로만 보였던 시동생들이 이제 어엿한 청년이 되었고 투정을 부리던 아이들도 이제는 자기 나름대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나이로 성장했다. 또 농지구입자금을 지원받아 천여평의 논을 마련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든게 이렇게 변해 있었다. 남편은 젊을때 놓쳐버린 공부에 대한 미련을 자식에게 쏟아부었다. 자식농사가 중요하다며 손수 아이들을 지도했다. 같이 읽어가며 이해시켜주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의 성적은 남편의 보살핌 덕분에 날로 향상되었다.
그러나 한동안 남편은 신체적인 스트레스로 신경질적으로 변했다. 일에 대한 의욕도, 삶에 대한 희망도 포기하는듯 했다. 나는 일을 혼자서 묵묵히 해나갔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은 나의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던지 앞으로는 열심히 살아가겠노라고 약속했다.

한편으론 고맙고, 한편으로 너무 야속하여 온종일 눈물을 흘렸다. 그때부터 남편은 더욱 부지런히 농사를 지었다. 항상 책을 기본으로 삼았다. 그래서인지 남들보다 늘 많은 생산량을 올렸다.
우리가 계획했던 딸기농사도 섣불리 시작하지 않았다. 딸기 영농에 관한 서적을 지침으로 궁금한 것은 지도기관에 문의해가면서 차근차근 계획을 수립했다. 새로운 영농정보는 마을 사람들에게 전해주기도 했다. 전래의 방식에서 남편은 항상 새로운 시도를 했다. 이른 새벽 딸기하우스 온도조절을 위해 들로 나가는 남편을 보았다. 딸기 농사는 무엇보다 온도조절이 제일이라면서 하루도 그르지 않았다.
강추위 새벽에 절뚝거리며 나가는 남편의 모습은 나의 마음을 찡하게 만들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그해 우리집 딸기농사는 인근에서는 가장 높은 수익을 올렸다. 이로 인해 94년 6월 우리는 농협에서 선정하는 「새농민상」을 수상했다. 거기에 큰 아이는 교육대학에, 둘째 아이는 한국교원대학에, 셋째 아이는 부산대학에 입학해 우리 부부를 자랑스럽게 해주었다.

『인생은 하루해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구나. 아침에는 이 일을 언제 마칠까 하는 생각에 일이 지겹게 느껴지지만 점심을 먹고나면 이내 해가 져버리는 것과 같이 사람살이도 뭔가 알겠다 싶으면 늙어 쓸모없어지니 말이다. 그러니 먼저 깨달은 자의 인생은 뒤늦게 깨달은 자의 인생보다 더 알차고 보람찬 것이 아니겠니?』아이들과 함께 딸기밭을 김매던 남편이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엄마! 난 농촌에 사는게 너무 좋아. 맑은 공기와 흙냄새, 그리고 인정이 있으니 말이야.』점심을 차려온 둘째가 아침에 했던 말이 마음에 걸렸던지 아양을 떤다.
『그래, 농사일은 풋풋하고 정이 있어서 좋단다. 아버지 말씀처럼 나도 해지기 전에 더 열심히 깨닫고 살테니깐 너희들 말리면 안덴데이.』『하하하.』금방 끓인 쑥국 향기처럼 우리 온가족의 웃음소리가 하우스 안을 가득 메웠다.
   
  [최종편집 : 1995/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