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2시부터 농민후계자 총회가 있다면서 남편은 집을 나가고, 아이들도 밖으로 놀러 나간뒤 시부모님마저 노인정에 나가시니 오후의 시골집은 텅비었다. 나는 집에 혼자 남아 무얼할까 궁리 끝에 봄에 뿌릴 씨앗을 고르기로 했다.
몇해째 종자를 갈지 못해 콩과 팥에 잡곡이 마구 섞여 있었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우선 팥씨부터 상위에 펼쳐놓고 빨간팔·파란팥·올팥 등 이것저것 고르다보니 어느덧 해는 지고 시끄러운 아이들 소리가 저녁이 왔음을 알린다.
서둘러 저녁을 지어 상을 보면서 남편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땅거미가 온산 마을을 덮는데도 그이는 오지 않는다.
할수없이 시부모님과 아이들의 저녁상을 올리니 『오늘도 애비는 또 늦는구나. 날씨도 추운데 일찍 오지 않구서』하시며 부모님께서는 걱정을 하신다. 나도 속으로는 걱정이 됐지만 부모님께는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태연한 척하며 『오랜만에 후계자들끼리 만났으니 술한잔 하나보죠 뭐』하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너무 늦어 고르던 씨앗을 치우고 마음을 달래느라 농민신문을 펴들고 있는데, 대문 여닫는 소리와 함께 그제서야 취기가 거나하게 오른 그이가 들어섰다.
『어머니, 저 이제 왔습니다.』
그이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안방문앞에서 한마디 하고는 우리방으로 왔다.
『아니, 왜 이렇게 늦었어요?』
별로 달갑지 않은 눈초리로 그이를 바라보자 『여보, 미안해요. 후계자들과 술 한잔 하다보니 좀 늦었구료』하면서 심각한 얼굴로 옷도 벗지 않은채 털썩 주저앉았다.
『아니. 왜 그래요? 무슨일 있었어요?』
『응, 있었어. 오늘 농토를 모두 복덕방에 내 놓았지. 팔아달라고 말이야.』
『뭐라고요? 논밭을 팔아요? 당신, 지금 정신있어요? 술 취했어요?』
나는 어이가 없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예요. 당장 취소하세요.』
나는 기가 막혀 어쩔줄을 몰라했다.
무엇이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구나 싶었다.
『여보, 오늘이 무슨 날인지 기억하고 있소?』
그이는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무슨 날이라니요? 그건 또 무슨 뜻이에요?』
그러자 남편은 싱긋 웃으며 『오늘이 바로 당신과 계약한 10년이 되는 날이오. 자 이것 말이오』하며 안주머니 깊숙한 곳에서 빛바랜 종이 한 장을 꺼내 놓는 것이었다.
(아차! 그랬었구나) 하는 어느덧 까맣게 잊고 있던 10년전 오늘로 돌아갔다. 결혼하면 10년전 오늘로 돌아갔다. 결혼하면 농사일을 시키지 않고 도회지로 살림을 내준다는 중매장이의 말에 솔깃해서 『예스』했던 것이다. 물론 다른 것은 부족한게 없었다. 시부모님과 시동생이 하나 있을뿐 가족도 단출한데다 그이 또한 밉지 않았고, 농사일만 시키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만족할 수 있을것 같았다.
그런데 그이에겐 직장이 없었다. 그 점이 마음에 걸려 따져 물었다.
『만약에 취직이 안되면 어떡할래요?』
『그렇다면 농사지어야죠.』
『싫어요. 농사짓지 않겠어요. 전 농사일은 아무것도 할줄 몰라요.』
『걱정마세요. 농사를 짓더라도 김양더러 일하라고는 안할테니까.』
대답이 좀 미심쩍었지만 설마했다. 시부모님 말씀도 『걱정마라. 없는 살림에 허리끈 졸라매며 고생고생 공부시킨게 다 저하나 잘돼 힘든 농사일 하지 말라고 한짓이지 무슷 뜻이겠냐』하셨다. 순진하기만 했던 난 그 말씀이 고마웠고 그이 역시 굳이 힘든 농사일을 택하지 않을 것으로 믿고 76년 늦가을에 결혼을 했다. 당시 그인 제대를 10여개월 앞둔 현역군인 이었다.
제대만 하면 어떻게 되겠지하고 신혼휴가를 끝내고 그이가 돌아간 빈방을 혼자 지키며 세월 가기만 기다렸다.
봄은 오고 농사일이 시작됐다. 우리집 농사는 담배 1천2백평과 고추가 조금있고 논이 좀있었다. 여름이 되니 농촌의 일손은 점점 달렸다.
그런데 담배농사란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때만 해도 농기계가 없어 삼복더위에 남자들이 담배잎을 따서 지게로 져오면, 아낙네들은 억센 새끼줄에 한잎한잎 끼우고 그러기를 3백여줄…. 그러다보면 기나긴 여름해도 진다.
밤에는 호롱불을 켜들고 그 많은 담배잎을 건조실 「달대」에 매달아야 한다. 비지땀을 흘리며 작업을 끝내면 보통 밤12시, 저녁상을 치우고 잠자리에 들면 새벽 1시가 넘는다.
이튿날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아침을 지어야 하고, 담배를 찌시는 아버님 밤참은 반드시 밤 12시반에 해드려야 하고 그러기를 1주일동안 계속하면 건조실의 불을 끈다. 건조작업이 끝난 것이다.
무서움을 참고 높은 「달대」에 매달려 담배줄을 떼어 재고 하다보면 아침부터 쉬지않고 해도 새벽2시까지 작업해야 된다. 그 다음날도 늦잠을 잘 수 없다. 또 담배잎을 따야하니까 새벽4시에 아침을 지어야 한다.
잠이 모자라 미칠것 같았다. 그렇다고 낮잠을 잘 수는 더욱 없었다. 그 아픈 몸을 이끌고 담배잎을 따랴, 뒷구루를 심으랴 쉴틈없이 일하시는 시부모님을 보면서 도저히 잘 수도 없었다.
어느덧 가을은 오고 어느날 예비군복을 입은 그이가 온다는 기별도 없이 마당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너무나 반가왔다. 나는 한마디 말도, 한방울의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이제는 그 지긋지긋한 농사일을 하지 않아도 되리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한달이 흘렀다. 그리고 또한달. 어느덧 추수도 끝나가고….
나는 남편을 졸라대기 시작했다. 『시골에서는 절대 살지 않겠노라』고. 시부모님의 성화도 시작됐다. 『어디든지 직장을 잡아서 나가거라. 나는 네가 농사꾼이 되는걸 원치 않는다』고.
하루 이틀 열흘 보름이 가도 그이의 태도는 어찌된 노릇인지 밍밍하기만 했다.
드디어 올것이 왔다. 아버님은 그이를 불러 앉히시고 엄하게 말씀하셨다.
『어서 직장을 잡아서 시골을 떠나거라….』
그런데 이건 또 무슨 뜻밖의 날벼락인가? 무릎을 꿇고 굳은 표정을 짓고 있던 그이의 입에서 청천벽력 같은 대답이 나왔다.
『아버지, 어머니 용서하십시오. 전 죽어도 농사를 짓겠습니다.』
나는 눈앞이 캄캄했다.
그러나 그이의 입에선 『여보, 미안해』 그 한마디뿐. 그리곤 식음을 전폐하고 한숨을 쉬며 자기도 괴로워했다.
나의 눈물도 끝이 날 무렵, 그이는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당신이 원하는대로 집도 짓고 경운기도 사서 당신을 고생시키지 않겠다』고. 그러나 나는 듣지 않았다. 그러자 그이가 고안해낸것이 바로 이 계약서였던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10년, 즉 88년 1월 15일까지 남편 ***은 농군, 아내 김성기는 농군의 아내로서 어떠한 역경이라도 이기고 착실히 농군답게 살 것을 서약함. 만약 어느 한쪽이 이 계약을 어길때는 이혼하기로 함. 1978년 1월 15일>
그리고는 서로 서명날인하고 지장을 찍었다. 그러면서 그인 말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약속은 꼭 지키겠다. 나는 당신이 잘 참아 줄것을 믿는다. 지금 아무것도 없이 도회지에 나가 고생하느니 10년동안 돈벌어 2층집 짓고 시내에 가서 남부럽지 않게 살게 해주겠다.』
나는 차츰 그이의 말에 동감이 갔고, 그렇게 까지 하는 남편에게 더 이상 반항할 용기가 사라졌다.
(그래! 언젠가는 도회지에 가서 멋지게 살아보자. 그날을 위해 나의 청춘을 바치리. 도회지로 시집간 친구들보다 먼저 자가용타고 친정에 가리라.)
나는 이렇게 다짐했다.
그러던 중 우리의 아기가 태어나고 힘겨운 한해가 지났다.
79년도에 그이는 새마을지도자로 뽑혔다. 이 소식이 시부모님께 알려지자 또 한번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시부모님께서는 그이가 농사일에 싫증을 느껴 도회지로 나가겠다고 할 때를 은근히 기다렸는데 그 기대마저 허물어진 것이다.
주민들이 선뜻 응해주지도 않는 새마을사업을 하느라 이리뛰고 저리뛰는 그이의 의지에 나도 어린 것을 업고 들로 밭으로 김을 매고 집안일을 하느라 쉴틈이 없었다.
그러기를 3년, 이제 그이는 가정으로 돌아왔고 여유도 생겨 1천2백평의 사과 과수원도 샀고 논도 늘었다.
나는 무엇하러 농토를 자꾸 사느냐고 말렸다. 일이 지겹지도 않으냐고….
그럴때마다 그인 나를 달랬다.
『팔기 좋은 땅으로 살테니 걱정마라. 88년엔 틀림없이 농사를 집어치울테니 그때까지만 열심히 살자.』
나는 부지런히 일했다. 88년의 그날을 위해서. 물론 생활도 검소했다. 그언젠가 나도 한번 멋지게 살아보려는 꿈을 안고서….
세월은 흘러 82년 어느날 남편은 느닷없이 버려진 야산 6천평을 사들였다.
부모님 산소를 쓰기 위해서란다. 말은 그랬지만 그이의 속뜻은 딴데 있었다.
남편은 추운 겨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야산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잡목을 베고 아카시아 뿌리를 캐고 칡덩굴까지도 모두 캐냈다.
그리고는 그 산에다 밤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3년, 버려졌던 야산은 옥토로 변했다.
이제는 복합영농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다고 그이는 농사법을 바꾸기 시작했다. 벌크 건조기도 들여오고, 고추하우스재배, 고추 촉성재배, 소 비육, 담배농사…. 무엇이든지 돈이 될 수 있을 듯 싶으면 가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면사무소직원이 우리집을 찾아와 그이가 실업고등학교 출신이고 또 의지력도 강하니 농민후계자로 뽑아주겠다며 열심히 잘해보라는 것이었다. 그이는 내심 기뻐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반대했다.
『그런 걸 하면 영원히 시골에서 살아야 한다면서요. 난 그럴 수 없어요. 내가 뼈빠지게 일하는 목적을 몰라서 그래요? 나는 도회지로 갈거예요. 싫어요.』
『아무때고 돈만 갚으면 되는거야. 자금이 없으면 돈을 벌 수 없어….』
그인 또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우린 후계자 자금으로 또 밭 1천여평을 사서 논밭이 과수원을 합쳐 1만2천여평으로 늘어났다.
나는 그이가 농민후계자로 뽑히던 날 뛸듯이 기뻐하던 모습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좋을까! 흙과 더불어 사는 인생이 그렇게나 좋을까!
그는 가끔 술에 취하면 이런 얘기를 했다. 『나는 흙에서 살다가 흙으로 가는 게 소원이야. 흙에서 고생한 나날을 후회하지 않을거야…. 그러나 당신에게 지은 죄가 너무 많아. 내 욕심만 채울 수는 없잖아』라면서 말끝을 흐리곤 했다.
나는 그이의 진심을 알고 있다.
흙을 사랑하는 그 마음, 흙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그이를…. 어찌 내가 감히 그의 굳은 의지를 꺾을 수 있겠는가. 흙을 떠난 인간 지동준은 좌절하고 말 것이다.
나도 그이를 닮다가 점점 흙을 사랑하게 됐다. 10년 계약서는 차츰 잊혀졌고 나의 꿈이 그이의 꿈과 합쳐졌다.
그러나 나의 이같은 변화를 그이 앞에 밝힌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그 계약은 가끔 훌륭한 무기가 돼줬으니까.
그이의 마음이 해이해지면 나는 이렇게 다그쳤다.
『여보, 10년은 너무 길지요? 당신도 지쳤어요. 이제 그만 끝을 냅시다.』
그러면 그이는 금방 정색을 하곤, 『아니야, 길긴…너무 짧다구.』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곤 했던 것이다.
그인 10년을 두고 나를 설득했고 결국 나는 그이 앞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젠 시부모님께서도 아들의 굳센 의지를 격려해 주시고 친구분들께 자랑도 하신다.
이것은 모두 10년동안 쌓아온 그이의 공든 탑이다. 나도 부러울게 없다. 예쁜 손에 매니큐어나 바른 도시 여인도, 도회지의 크나큰 아파트도 부럽지 않다. 나는 이 나라의 농촌을 지켜갈 농민후계자인 남편이 자랑스럽고 농군의 아내란 것이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
그이는 농장주인이 되는 것이 꿈이다. 앞으로 더 많은 야산을 개간해 사과·대추·포도·호도·매실 등 더 많은 과실나무를 심고 더 잘사는 농촌을 이뤄나갈 것이다.
이제는 10년을 계약한 농군의 아내가 아니라 영원한 농군의 아내가 될 것이다.
10여년 동안 지나간 추억이 주마등처럼 흐르는 순간 나는 그이의 순을 꼭 쥐었다.
『여보, 우리 이제 그 계약서 찢어버립니다. 그리고 다시 씁시다. 10년 아니 20년이라고….』
『여보.』
그이는 나를 힘껏 끌어 안았다.
『대근이 아빠, 제가 졌어요. 당신이 이겼어요. 전 영원한 농군의 아내에요.』
『여보, 고마워. 난 당신을 믿었어. 당신은 정말 내 아내요.』
  [최종편집 : 1988/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