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생활

아이디
비밀번호

  • 정기구독신청
  • 독자투고
sub21

HOME > 과월호보기 >

고구마홀릭 한영만 씨

공항 인근이라 잊을 만하면 소음이 들려오는데도 조금도 아랑곳 않고 트랙터를 몰며 땅을 질주하는 남자. 전남 무안에서 고구마 농사를 짓는 한영만 씨는 10년 전만 해도 땅이 아닌 청중을 휘어잡던 음악가였다. 농사라는 변주를 거쳐 인생 최종 악장을 향해 나아간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글 원용찬 기자 사진 임승수(사진가), 한영만 제공

황토 위 마에스트로를 꿈꾸다

사진 한영만 씨(54)와 고구마의 인연은 6년 전 시작됐다. 그에게 농사를 가르쳐준 사람을 따라 지금껏 친환경농법만 고수하고 있다. 매년 전쟁을 치르는 잡초에 넌더리를 쳐도 지금의 삶이 좋다 말한다. 제초제 없이 농사를 지으며 땅에 건강을 찾아주는 동안 그의 농사꾼 인생도 피어났기 때문이다.

“제 음악 여정에 지휘봉이 아닌 삽이 들려질 줄 누가 알았을까요?” 무안이 고향인 한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음악인이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도시로 상경했다. 교회 활동을 하다가 음악에 흥미를 붙였다는 그는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신학대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정진한 끝에 번듯한 음악가로 성장했지만 만족하지 않고 공부를 이어갔다. 후학을 가르치다 만난 연변 출신 제자와의 인연으로 중국으로 건너갈 때까지 그의 인생은 흙과는 거리가 멀었다.연변에서 교수로 지낸 지 10년, 중국어와 문화에 익숙해질 무렵 고향에서 다급한 연락이 왔다. 아버지의 건강 문제였다.

“처음 내려왔을 때만 해도 귀농 생각은 없었어요. 6개월만 곁에서 모시고 싶다는 마음이었는데 점차 괜찮아지시는 모습에 눌러앉은 게 어느덧 6년이 지났네요.” [“갑자기 제 삶에 농사가 굴러들어 왔죠”] 애초 계획대로 한씨는 반년을 아버지 간병에 투신했다.벌이가 없어 부인이 시장에 나가 어물전을 열어야 했다.‘무안한’ 세월을 보내던 한씨에게 무안 연꽃축제에 나갈합창단을 맡아달라는 제의가 들어왔고 그곳에서 농사 멘토를 만났다. 하릴없이 놀고 있다는 그에게 해야농장의김기주 씨는 고구마 종자와 함께 자신의 비결을 전해주겠다고 제의해왔다.삽 쥐는 법도, ?랙터 운전하는 법도 제대로 몰랐던 그는무작정 김씨의 농장으로 출근하며 1년 동안 열심히 농사를 배웠다. 고구마 농사는 기계가 없으면 하기 힘든 고된일이다. 한씨는 열정을 다 쏟았다. “고구마 가르쳐달라며찾아오는 사람은 많지만 다들 금방 나가떨어지는데, 너는 대단하다”며 멘토 김씨가 놀랄 정도였다.그렇게 고생하며 익힌 농사지만 한동안은 시행착오가 이어졌다. 남들은 10분이면 해결할 트랙터 조작 문제를 가지고 몇 시간 동안 끙끙대기 일쑤였고, 그러다 보니 불러온 인부들을 그냥 돌려보내는 날도 있었다. 당초 생각했던 기간이 훌쩍 지나고 아버지의 병세가 호전됐다. 한데 이미 벌려놓은 고구마 모종들을 어쩌랴. 결국 농사가 업이 됐다.

[함께 사는 농촌이 좋다] “귀농해서 맞닥뜨리는 장벽이 사람들과의 관계잖아요.

웃으면서 먼저 다가가고, 해드릴 수 있는 건 최대한 해드리고, 자존심을 세우지 않았던 게 주효했죠.” 도시를 거쳐 중국 연변까지 갔던 한씨가 무안으로 내려온 것에 대해 많은 질문들이 따라붙었다. “먼 곳까지 나갔 다 왜 돌아왔을까잉?” 질문에 주뼛거렸던 것도 잠시, 고향에 녹아들기 위해 여기저기 고개를 들이밀었다. 많은 어른들의 농사 참견도 웃으며 받아들였다. 그 말이 옳든 옳지 않든 고맙다는 말과 웃음으로 답했다.

더불어 한씨가 완벽히 동네에 녹아든 방법은 ‘필요한 사람 되기’였다. 마을 지원을 위한 시·도 단위 공모엔 서류 작업이나 발표 업무가 따라붙는다. 마을에서 가장 젊고 배운 사람(?)에 속하는 그에게 주민들은 “자네가 해볼랑가?”라며 손을 벌려왔다. 그렇게 쌓은 관계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요즘도 어디가 말썽이라는 마을 어르신들의 고충을 해결해드리고 대신 ‘어느 고구마가 좋다’ ‘어디 팔아야 한다’는 돈이 되는 정보를 얻어 온단다. “그렇게 농사를 가르쳐주신 분들과 친분을 쌓다가 ‘예당 중창단’을 결성했어요. 의미 있는 활동을 해보자고 시작했는데 반향이 좋아 보람을 느낍니다.” 그가 고향에서 자리 잡은 또 하나의 비결은 음악이다. 고구마 농사는 한여름과 한겨울에 조금 여유가 생긴다. 고구마 농부들은 한여름 잡초들을 정리한 후 나들이를 떠난다. 모 농원의 고구마가 맛이 좋다는 소문에 다 함께 찾아가기도 하고, 진도 등 명승지를 찾기도 한다. 그러다가 사회적인 활동을 하자 제안한 것이 중창단 결성이었다.예당 중창단은 한씨가 보기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지역사회에서는 “아이구 좋다”며 박수 받는 스타다. 군 대회를 통해 첫선을 보인 이들은 노인회관, 큰 비닐하우스 등에서 공연을 펼치며 지역 주민들을 찾아간다. 인기 있는 트로트를 직접 편곡해서 만든 노래에 관중 모두 어깨를 들썩인단다. 그 보람에 농사일로 바쁜 와중에도 선뜻 여러 지역을 누빈다.

[내 삶을 지휘하는 시간] “농사꾼으로서의 삶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어요. 이제는 자연과 함께 살며 음악적 역량까지 키울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있죠.” 한씨는 지금껏 친환경 고구마 재배를 고집하? 있다. 제초제 한 번에 풀이 싹 죽는 방식은 땅에 절대 좋을 수 없다는 신념에서다. 그에게 자연은 먹거리를 내주는 터전이면서 음악적 영감의 기원이기도 하다. 아침에 일어나 종종 해안가를 걷는 한씨에겐 어느 날 문득 밀려온 해무도 좋은 고민거리다. ‘이 서정을 어떻게 하면 음악으로 옮길수 있을까’ 수도 없이 고민을 거듭한단다. “지금 누리는 환경이 제게는 행운이죠. 바람과 흙이 만들어내는 현상을 영혼이 깃든 듯한 음악으로 승화시킨 작품이 많잖아요? 여기서 그런 음악을 하고 싶어요.” 그는 흙 묻은 장화를 신은 채 밭을 삿갔던 그간의 삶이 결코 쉽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고구마 재배 면적을 넓혀갈 계획이다. 좋은 황토 땅을 골라 밭을 꾸미는 농부 한영만의 일상도 계속되고, 한편으로 제쳐뒀던 ‘자연 속음악인’ 한영만의 시간도 다시 흐른다. 최근 목포에서 합창단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는 그는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 농촌을 고대하고 있다. “인생 1악장, 2악장, 그리고 절정을 향해 가고자 한다”는 그의 힘 실린 목소리에, 웅웅 대던 비행기 소리는 온데간데없다.
  • 과월호전체보기
  • 목차
  • 기사전문보기서비스
  • 기사전문pdf보기

월별 월간지 선택

OnClick=

과월호전체보기

  • 구독신청하기
  • 온라인구독결재
  • 구매내역확인
  • 편집/배송문의